"그런데 서영아"
태석은 서영을 불렀다.
"턴테이블을 통해 듣는거랑 보통 음원으로 듣는 거랑 뭐가 달라?"
태석은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질문을 건넸다. 서영은 그 말을 듣고 약간 정색하더니 진지하게 대꾸한다.
"당연히 다르지. 음식으로 따지면 밀키트하고 배달음식이 다른 거랑 같은 거야. 같은 떡볶이를 먹더라도, 밀키트로 하면 요리하는 재미도 있고 더 맛있잖아"
서영이 주장하자, 태석은 농담삼아서 나름 소신 있는 말을 꺼냈다. 나는 배달음식이 더 맛있던데,
"그래도, 조미료 많이 안 써서 건강에도 좋아"
태석은 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랍장에서 꺼낸 것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애플사의 유명한 태블릿 PC부터 해서, 아이팟이나 워크맨같은 오래된 골동품들, 그리고 벌써 유행이 한물 간 디지털 카메라나 MP3 플레이어도 있었다. 서영은 눈을 반짝이며 구경했다.
"내가 아날로그한 감성을 좋아해서. 예전에 쓰던 것 중에 단종되지 않은 걸로 다시 사서 모으니까 이렇게 꽤 많아졌어"
태석은 다른 서랍에 있는 것도 보여준다. 최신 태블릿 PC가 여러 개였고, 노트북과 스마트 워치도 있었다.
"내가 애플을 좋아하기도 하고, 하나 하나 성능이나 특징이 조금씩 달라서 보너스 들어오는 달이면 하나씩 구했지"
꽤 많이 모았네. 서영은 태석이 설명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말했다. 태블릿과 노트북은 인치별로 정렬되어 있어서 보기에도 꽤 좋았다. 태석은 설명한다.
"전자기기를 모으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하나씩 생길 때마다 뭔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아"
"나 노트북으로 노래 하나 틀어봐도 돼?"
그럼, 태석이 대답하자 서영은 노트북을 꺼내서 전원을 켜고 음악을 재생했다. Spin Doctors의 Two Princes였다. 다소 밝고 춤추기에 어울릴법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태석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런 음악 좋아했어? 러닝할 때 들어. 서영은 변명하듯 말했다.
"나 그러면, 워크맨 한번 들어봐도 돼?"
서영은 태석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태석은 워크맨을 꺼내, 이어폰과 연결한 뒤에 서영에게 건넨다. 그리고 비틀즈의 EP 앨범을 재생한다. 얼마간 듣다가 서영은 태석에게 말한다.
"이거 들으니까 귀가 생각보다 먹먹해졌어. 나는 lp로 들을 때가 훨씬 좋은 것 같은데"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이 없어서 그건 좀 어렵네"
태석은 조금 곤란하다는듯이 말했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있는 서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나한테 없는 앨범이야"
서영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 리듬을 타면서 말했다. 이거 갖고 싶어. 태석은 일어나서 이야기한다. 카세트 테이프정도는 줄 수 있어. 나는 잘 안 듣거든. 서영은 계속 음악을 듣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태석은 부엌으로 가서 방금 사온 부대찌개 밀키트를 개봉하고, 재료를 손질한 뒤에 요리하기 위해서 가스레인지를 점화한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금광아파트 107동 5층에서는 창밖으로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아직 번지지는 않았지만, 꽤 큰 규모의 화재인 것 같았다. 501호에서 시작된 불은 얼마 뒤에 강한 서풍으로 인해 502호로 번지고 있었다. 조금 더 늦었다면 다른 층도 무사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대한 불이 501호에 있던 가구들을 집어 삼켰다. 침대, 장롱, 책상, 서랍장, 벽지를 모두 까맣게 그을리고 소멸시켰고, 책과 옷과 음식들을 모두 형체도 남아있지 않게 만들었다. 소방관은 투입한 지 2시간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정확한 화재의 원인은 조사해봐야 한다는 말을 방송국의 뉴스는 보도했다.
금광아파트에서는 최근 두 가지의 이슈가 있었다. 107동 5층에서 발생했던 화재 사건과 최근 들어 많아진 고양이의 개체수이다. 어떤 주민에 따르면 고양이가 5층 창문 안으로 들어가 화재를 유발하는 어떤 일을 벌였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이야기였지만 그 가설에 대해서 강하게 조사를 요청하는 주민이 있었다. 그래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두 현안에 대해서 경찰은 면밀히 조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바탕 소란에 불과한 일이었고, 두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두 가지 이슈가 동시에 터져나오다보니, 영신은 자신의 입지에 대한 큰 걱정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금광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에서도 큰 난색을 표하며, 두 사건에 대한 책임을 경비원인 영신에게 씌웠다. 결국, 영신은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초까지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금광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고양이의 개체수 증가와 화재 사건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영신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최근 영신의 무성의한 민원 응대에 대한 일을 핑계삼아 더욱 책임을 돌렸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