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시급을 중심으로 노동 경제가 돌아간다. 이제 MZ 세대를 비롯한 사람들은 일터에서 남아있는 한 시간마다 가치를 매기고 싶어한다. 한 시간을 일하면 만원 언저리의 최저시급을 받는 사람, 그리고 이만원이나 삼만원을 받는 소위 생산성 높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일한 한 시간은 스타벅스에서 사먹는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의 값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훨씬 많다. 내가 땀흘려 일한 시간 만큼의 가치가 정량적으로 수치화되는 것은 좋지만, 어떻게 보면 노동이란 나를 팔거나 혹은 빌리는 일이나 다름없을 수 있다. 노동이 나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분을 파는 일로 본다면 꽤나 비인간적이다.
나의 능력과 지식 그리고 직업적 숙련도에서 오는 노동 시간을 판다는 점에서 시급을 매긴다는 것은 효율적이기도 하고, 냉정하기도 하다.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치 중에 가장 손쉬운 것은 아마 노동이거나 무형의 재화 즉, 서비스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을 팔거나 빌려주고, 대가를 지불 받는다. 노동이나 서비스만큼 깔끔한 것은 별로 없다. 계약 내용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특별히 분쟁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시간당 금액으로 환산이 가능하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인정이라는 요소만 없었다면 경제는 훨씬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을 할 때 나의 노동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빌려준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효율성을 차치하고, 더욱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나를 너끈히 대여해주어야 한다. 내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돼 있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일터에서 일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믿는 사람들이나 존경하는 상사에게 나를 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를 빌리고 빌려주는 세상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 서로에게 발 디딜틈을 조금씩 내어주는 만원 지하철 안을 생각해보아도 좋다. 노동이 무형의 자산으로 여겨지고 그에 대한 대가가 빈틈없이 규정되는 세상도 최악은 아니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서 일정한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대전제이다. 그러나 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 나를 빌려주는 대가로 받는 임차금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직장이 한번 쓰고 버리는 껌이나 일회용 면도기가 아니라 월세방이나 푸드트럭, 붕어빵 노점의 기계처럼 나를 잠깐 빌려주고, 오히려 녹슬거나 낡지 않게 관리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가치있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은 타인을 소유하거나 빌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색안경을 끼거나, 뿌연 지문이 묻은 렌즈 앞을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빌려주고, 누군가는 나에게 공간 한 켠을 내어준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이 곳에서 누려야하는 특권이며 감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