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삶

by 쿼카의 하루

침대에서 일어나 누웠던 자리를 정리하고 이불을 갠다. 그건 아침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그저 하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나는 이불을 개고 구석 자리에 놓은 뒤 침대가에 걸터 앉아 눈을 감는다. 머릿속이 꿈결처럼 조용히 방황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내가 좋아하는 기도문 한 문장을 암송한다. 이 행동들은 그저 '아침 루틴'이라는 시쳇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나다운,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

나다운 아침 루틴을 마치면 금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활기가 내게 느껴진다. 이 기쁨이 밤까지 지속된다면 그건 매우 감사해야할 일이다. 다만 나는 개운한 기분을 누리기 위해서 아침 루틴이라고 묶을 수 있는 행동들을 늘리는 일에 더욱 집중하기도 한다. 화장실 문을 열고 세수를 하고, 느릿한 손길로 턱과 인중에 난 수염을 면도한다. 양치질을 한다. 뒤척이며 자느라 붕뜬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말린다. 루틴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금세 그 순간을 놓친다. 바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만큼은 루틴이라 명명하는 단어의 효력은 미약해진다. 이제부터는 자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습관의 흐름보다는 억지로 해내고야 마는 의지력이 필요해진다.

가끔은 이런 의지력이 필요한 순간에 현실과 동 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일상과 일상의 틈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 이동하는 틈 사이에서 일탈을 꿈꾸곤 하지만, 결국 히터의 온기에 꾸벅 졸던 출근 버스에서 내려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여행을 꿈꾸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다음 일상을 이끌어나가는 나밖에는 아무도 없다. 사실 그 일상 속에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알기에. 집이 있고, 침대가 있다는 걸 알기에 다소 거친 세상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집중한다. 마침내 잠에 들고 새로운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은 당연한 기쁨이자 꼭 감사해야만 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어쩌면 아침 루틴처럼 내가 정말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들보다는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은 게 세상일 것이다.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것들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출근, 서류 작성, 회의, 업무 전화를 응대하고 이메일에 답장하는 일은 처리해도 계속 채워지는 화수분같다. 집안일이나 치과에 가는 일이나 은행 업무를 보는 일들도 귀찮기는 매한가지이다. 심지어 옷을 사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잡아놓은 약속이나 독서모임에는 가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떨 땐 집밖으로 발을 떼기가 힘들다. 아침 루틴은 해야만 한다는 마음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어 자연스레 실행으로 이어지지만, 아침 루틴 이외의 시간들은 안해도 된다는 안일한 마음 그리고 더 하고 싶은 게임과 유튜브 쇼츠, SNS 소비라는 행동들에 대한 유혹이 무질서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문제의 연속같은 삶에서 처방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냥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모순 투성이기 때문에 그냥 한다는 것은 이런 무질서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책이 된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걱정의 형태를 띄게 된다. 어떨 땐 그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쫓기듯이 결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머릿속에 1분짜리 타이머 하나를 심어놓는 게 나아 보일 때도 있다. 어떤 일을 아침 루틴처럼 자연스럽게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냥 하자. 만약 싫어도 해야 한다면 그건 생각이라는 독소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그냥 하자.

일상과 일상은 처음에 느슨하게 늘어지듯 동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틈이 있고, 그 틈 사이에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그냥 하는 삶'이 반복된다면 달라진다. 처음엔 '그냥 하자'라는 생각을 억지로 떠올려야 될 만큼 느슨하게 이어져 있지만, 나중엔 일정이라는 점들이 삶의 이정표들을 이루듯이 단단하게 결속하게 된다.

청소년과 20대의 삶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라는 느슨하게 나열된 점들을 이어서 거대한 화살표를 만드는 시간이다. 인생의 전반을 거대한 하루로 봤을 때, 그 20대의 시간들은 아침에 해당하고, 가치관의 점들을 이어 화살표를 만드는 가치관 형성의 시기들은 아침 루틴을 짜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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