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상하지 않습니다

여섯 개의 공모전에 광탈했습니다

by 쿼카의 하루

결국 준비했던 6개의 공모전에 모두 탈락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설마 하는 마음과 함께 그렇게 거부하고 거부하던 고배를 마신 것이다. 나는 떨어졌지만 혹시나 같은 공모전에 응모해서 수상한 사람이 주변에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익명 단톡방에 한 줄을 띄웠다.


"공모전 발표 났네요. 혹시 수상하신 분 있나요?"


얼마되지 않아 파란색 고양이 캐릭터 '네오'가 그려진 프로필을 단 익명의 유저가 답변했다.


"저는 수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귀엽지만 왠지 모르게 슬픈 그런 '웃픈' 드립에 눈물을 흘리는 이모지를 달아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그래, 이렇게라도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 것이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유명한 격언이다. 이 격언은 어느정도의 진실도 함유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생각보다 이 문장을 읽고 좌절과 열패감은 혼자서 겪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운다면 왜 혼자 울어야 할까? 이를 갈고 벽을 쳐야 한다면 왜 혼자서 방문을 걸어 닫고 분개하야 할까? 그런 슬픔과 화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슬픔의 씨앗을 뿌려서 기쁨으로 거두겠다는 말도 그렇다. 말은 쉽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의 씨앗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뿌려주는 위로와 격려의 씨앗 정도로야 가능할지도 모를 정도이다. 슬픔 자체가 힘이되고 분노 자체가 동기가 된다는 말은 성공만을 좇는 자기계발서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지,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에세이에서야 나오기 쉽지 않다. 슬픔과 화는 자고로 친구나 가족이 식탁이나 차를 앞에 두고 함께 하는 것이 맞다. 그 말들이 누구를 우울하고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런 감정들도 솔직히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게 훨씬 낫다.


슬픈 일보다 위로가 될 문장이 많아도 살아가기 힘든 게 세상이다. 그런 문장이 아무리 차고 넘쳐봐야 번아웃이 횡행하는 이 사회에서 읽히거나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위로하는 문장, 자위하는 단어들이 아무리 발에 채여 걸리적 거릴 정도로 많다고 하더라도, 그게 한 음절이라도 마음에 닿는 것에 감사해야할 세상이 우리가 발 딛는 곳이다.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마음에 닿을 만큼 섬세하다면 그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인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털끝에라도 닿는다면? 그만큼 축복받을 일이 없다. 귀에 듣기에 좋은 위로를 건네는 책이나 영화라고 안 좋은 평을 내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 역시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는 싸구려나 B급 감성의 작품으로도 눈물을 삼키며 위로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가치가 있다. 조악한 실력과 생각보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문장력, 눈에 띌 정도는 아닌 소재 선택 능력으로 써내려간 내 열 편 정도의 글들도 물론일 것이다. 공모전에서는 선택받지 못했지만, 그건 그들의 눈에 들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새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맞추기는 하늘에 별을 따듯 천운이 주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모든 성공에서는 그렇듯 역시 공모전에도 운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런 동기가 이미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도전하고 도전하다보면, 언젠가는 별을 딸 정도로 기쁜 일이 내게도 일어나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즐겁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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