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찾아 집을 어슬렁거리는 얼룩말

기다림에 관하여

by 쿼카의 하루


결과를 기다리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정말 나는 기다려야 했을까? 기다리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지 생각해본다. 하염없이 고개를 빼고 턱을 내민다. 그리고 턱을 괸다. 기다리고 있는 나는 기다림 그 자체였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내 시간의 존재의 목적 중 하나이다.

그렇다. 나는 그 무슨 일이든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식판을 들고 서서 남긴 음식이 없는지 검사 받는 긴 줄을 서는, 마치 어느 도시의 초등학교 학생처럼. 도저히 재미있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기다림은 내 삶의 존재 방식 중 하나였다.

아니, 정말 기다려야 했을까? 그런 대기 시간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또한 내 삶이 굴러가는 방식이다. 곱씹고 반추하여 물기 섞인 죽처럼 된 나의 생각은 어딘가로 다시 붙어버렸다. 그건 마치, 인공적인 향이 나는 자일리톨 껌과도 같다. 입 속에서 던지듯 뱉어졌고,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모서리에 붙은 껌은 처치곤란이겠지. 나는 적당한 위치로 껌을 뱉어야 했다.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지 여부를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 없다. 그것이, 기다림의 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사실 그것이 먼저 생각났다 - 이를테면 기다림은 직장 생활이요,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건 대기를 위한 대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 시간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아니 사실은, 그것을 유독 싫어한다는 점이 내가 발견하는 거의 유일하게 반짝이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장생활은 사실 즐겁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이야기,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사건에 휘말렸을 것이라는 소문, 이 말들은 네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무시로 일관된 상사의 행동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는 자질구레한 언어. 그런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으며 기다릴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동물원같다. 내가 사육사인 척 하는 침팬지로 보이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래도 유난히 반짝이는 기쁨은 지금 나는, 기다림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알기에, 나는 기다리지 않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맞다. 사육사가 아니라서 맞춤 제작된 옷을 입고 교육을 받는 침팬지. 동물원을 떠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떠나는 배에 탑승한 얼룩말. 그것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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