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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2. 2024

출근길, 지하철

직장인 레미제라블 上

  이번 역은 동대문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지하철 차내에 울린다. 나는 몹시 피곤한 상태로 세모낳고 새파란 손잡이를 잡고 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듯이 손을 굳게, 엄지까지 말아서 잡아본다. 놀랍게도, 나는 회사에 다닌 지 3년이 됐다. 나는 중소 규모의 모 기업이라고 하는 우리 회사의 밥줄을 쥐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우리 회사는 나의 밥줄이자 돈줄을 틀어 쥐고 놓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이곳의 충실한 졸개 노릇을 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막함과 동시에 허심탄회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3년이 지나는구나.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서른여섯달이 지나가는구나. 서른 여섯 번의 월급을 탔고, 그 정도의 댓가를 가혹한 노동을 하며 살아낸 셈이구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정장을 빼입고, 스마트폰을 텅빈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도 흔들거리는 몸으로 회사에 도착하면 해야할 일들을 생각해본다. 가만히 있어보자, 다른 부서에 질문할 것들이 있고, 클라이언트에게 업무상 전화를 돌려야 되는 것도 있다. 낮에는 회의에 가야 되고, 오늘도 정신없이 살아낼 것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쉬어진다. 차라리 앞 사람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멍때리는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역은 시청역 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번 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탄 열차에 올라탔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일 것이다. 출근길이 싫지만, 출근을 해야하는 이 몸. 이번 생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를 탈출할 수 있을까. 충실한 일꾼이자 노예로써 모두가 엄숙한 표정을 하며 열차안으로 올라타는 것이다. 5년 내에는 아니 10년 내에는 나에게 자유가 있을까. 그렇게 한칸 한칸 멀어지지는 않고 도착하는 곳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였다.


  왼쪽 자리에는 등산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있다. 땅을 짚고 다닐 수 있는 스틱에 손을 받치고 점잖게 앉아계신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옷을 걸친 캡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있다. 직장인이 아닌 그들은 평일인 오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억지로 의연한 표정을 하고 각각 이어폰을 끼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뉴스를 읽으며 출근하는 우리들과는 조금 달라보인다. 그들은 자유로워보인다. 그들은 몸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입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깥 풍경이 펼쳐진 창문 너머를 본다. 7시 반의 서울에는 해가 뜬지 얼마 안됐다. 따뜻하고 충만한 기운이 태양으로부터 지하철 열차 안을 뚫고 들어온다. 이제야 해가 뜬다. 해가 밝은 기운을 전해주듯이, 나도 회사 동료들에게 그랬으면 한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내 업무에 대한 한 명 분의 처리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단순한 것은 좋은 것이니까. 


  한강의 거대한 단면이 드러난다. 저 멀리 너머의 대교에서 차들이 꽉 들어차있다. 바람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것 같다. 그곳을 향해 간다. 그곳은 내가, 우리가 일해야 할 곳이다. 그 곳에서 우리의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들이 있다. 강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을 약간 부시게 하는 빛들이 있다.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봐도 그것들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똑같은 풍경이다. 시대에 맞지 않게 종이 신문을 보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도 보인다. 챙이 있는 중절모를 썼고, 금테 안경을 썼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듯이, 주름 지긋한 이마가 눈에 띈다. 그 세월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을지, 그런 세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계실 것 같아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사실 미친 사람 취급 당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


  이윽고, 내가 내려할 역이 도착하고 왼쪽 문이 열린다. 나는 문밖으로 한발자국 디뎌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고 싶지만, 중력에 의해 무거운 발을 지면에 닿게 한다. 오늘도 시작이다. 지하철과 함께한 출근길은, 꽉 찬 승객들에 의해 불편하고, 막막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서서히 멈추고 출발하는 지하철은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것 같다는 착각을 준다. 오늘도 싸워서 이겨내야겠지. 수많은 승객과 풍경들을 마주치고, 눈에 담고, 눈에 담자마자 머릿속에서 비워냈던 것처럼, 오늘 하루도 그런 하루겠지. 아마 그런 곳을 회사라고 하고, 그런 생활을 직장인이라고 할 것이다.





메인 사진 출처 : 김효정(Insta@and.olp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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