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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23. 2024

새로운 문화활동, LP와 턴테이블

LP 입문자가 전하는 LP 반전 후기

  턴테이블을 샀다. 내가 사기엔 가격이 꽤 비쌌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던 레코드판과 턴테이블은 나의 이상 그 자체였다. 오래전 초등학생때 축음기같은 장치로 cd보다는 크고 까만 동그란 판모양의 어떤 것을 돌리는 장면을 봤었는데 아마 영화였던 것 같다. 그 영화의 한 배우는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카트리지가 지직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영화 내용상 음악이 배우의 강렬한 감정을 일깨웠던 것이었고, 나는 그 감정에 어렴풋하지만 깊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턴테이블은 마치 그때부터 감정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상징적인 장치로 인식하게 됐다. 시간이 가고 턴테이블과 lp판의 희소성과 높은 가격 때문에 점차 시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 꿈같은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내 인생에서 꽤 익숙한 일이었고, 나는 언젠가부터 해볼만한 것은 다 했다는 판단이 서게 됐다. 이어폰, 헤드폰, 스피커, cd와 cd플레이어,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거기에다 직접 좋아하는 가수의 단독 콘서트에 가는 것까지 해봤는데, 역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인게 듣기도 편하고 마음에도 들었다. 사실 디지털 장치인 cd플레이어까지 시도해봤을 때 투자한 돈에 비해 음악 감상하는 데 있어 전혀 좋은 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실망했던 차였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cd도 여러 장 사고, cd플레이어를 싸지 않은 값에 들였는데 한 두번 쓰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에서 연초라서 받은 복지포인트로 어제 턴테이블을 큰맘먹고 질러봤다. 놀랍게도 하루만에 배송이 왔다. 들뜬 마음에 바로 lp판을 파는 곳을 검색했다. 일단 지역명과 'lp'라고 검색하니 문자 그대로 아무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lp 전용매장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lp판을 교보문고같은 대형서점에서도 판매한다는 걸 손품을 팔아 알아내고, 주변 대형서점과 중고서점까지 전화를 돌리거나 가까이 있는 건 찾아가봤다. 두 군데는 lp를 아예 취급하지 않는단다. 한 군데는 팔긴 하는데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책방 점원의 말이었다. 꽤 많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lp라는 매체가 그렇게 좋다면 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서점에도 구비해 놓지 않는걸까. 사실은 소수의 사람들만 손을 대는 재테크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복잡하고 실망스러운 심정으로 lp판을 취급하기는 한다는 서점으로 향했다. 온라인으로 구할 수는 있겠지만, 얼마 안가서 cd플레이어같이 안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라 빨리 무슨 음반이라도 사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 서점은 가장 가까운 서점이었지만 지하철로 이동해야 할만큼 멀었다. 점점 기가 빨리는 느낌으로 서점에 도착했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던 밴드 Queen의 'Bohemian Rhapsody'라는 앨범을 찾았고 비싼 값에 결제까지 완료해서 손에 넣었다. 생각보다 부피가 꽤 나갔다. 이걸 가지고 집까지 가는 길에 생각했다. '기대 하나도 안되고 가격만 엄청 비싸구나. 만약 취미로 들인다고 해도 거덜나기 딱 좋겠다'



  집에 돌아와서 한겨울날에 진땀을 빼면서 턴테이블을 설치하고 까만 lp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카트리지가 서서히 옆으로 움직이며 비닐판 위에서 올라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의 그 장면 같았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많이 살아보지도 않은 8,9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향수라고 할수는 없지만, 정말 그 옛날로 돌아가서 이 음악을 처음 듣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해야하나. 영화의 그 장면처럼 흐느끼듯 울 정도는 아니지만, 소비한 돈들을 생각해봐도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멋진 음악 감상의 시간이었다. 그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그 느낌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겼다는 마음에 아주 충만한 저녁이다. 심지어 같이 듣고 있던 부모님도 잘 샀다고 칭찬하시니 이보다 감개무량할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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