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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23. 2024

LP의 매력

LP 초심자가 오늘도 어김없이 LP판을 꺼내드는 이유는

  lp를 재생시키는 장치인 턴테이블에 12인치짜리 lp를 꺼내 올려 둔다.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데, 턴테이블 중간에 뭉뚝한 쇠막대가 크기에 맞게 들어가서 고정된다. 턴테이블 위의 투명한 아크릴 덮개를 닫고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lp는 회전하기 시작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이다. 그 옆의 카트리지가 느린 속도로 공중으로 약간 들린다. 그 다음, 역시 천천히 옆으로 이동하다가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는 듯이 lp의 바깥쪽 비닐판 위에 안착한다. 카트리지는 lp 위에 질주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관성에 의해 가만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트리지는 회전하는 lp의 소리골을 긁으며 미세한 공기의 진동을 내기 시작한다. 트랙 위를 느긋하게 질주하는 레이싱 자동차처럼 기분좋은 마찰음을 내며 경쾌하게 lp 위를 미끄러져간다. 이윽고 4개의 트랙이 흘러나온 뒤에 카트리지는 원위치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덮개를 열고 lp판을 과감한 동작으로 뒤집어 다시 위의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디지털 형식으로 녹음된 소리를 아날로그의 형식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lp는 음악을 녹음하기 이전의 형태인 아날로그로 재현해내서 소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주파수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음향기기는 아주 높고, 아주 낮은 주파수를 깎아서 사람의 귀가 인식할 수 있는 파장만 남겨놓는다. 그래서 디지털 방식인 cd는 차가운 느낌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공장의 기성품과 같은 소리가 난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방식인 lp는 수작업을 가미한 일종의 수제품과 같은 느낌으로 소리에서 따뜻하고 듣기 편한 감성을 간직하고 있다.


  같은 음악을 다루기 쉽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들으면 더 편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어차피 귀로 인식하기 어려운 주파수라면 그 차이가 아날로그이든 디지털이든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실제로 차이는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실재하긴 하나, 미세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턴테이블과 lp는 리스너들에게 최근의 방식들이 주지 않는 문화의 주체로써 느끼는 감정들을 선물해준다. 비유하자면 배달음식과 밀키트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cd와 스트리밍 서비스와 같은 기존의 방법들을 이용할 때는 그저 문화를 향유하는 객체로써 다소 수동적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턴테이블을 통해 들을 때 우리에게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유심히 지켜볼 기회가 제공된다. 비록 실제 음악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아주 간소한 과정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lp의 바깥쪽 끝부터 안쪽 끝까지 빠짐없이 귀기울면서 음원 제작자들의 창작 의도와 방향성을 날 것 그대로 흡수한다. 이것 역시 문화의 주체로서 우리가 그 음반에 대해서 진정성있게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는데 큰 도움이 된다.


  lp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소장하는 기쁨이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손에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수집하고 남겨놓을 수 있을 때 기쁨은 두 배가 된다. 그것은 왜 아직도 사람들이 cd, lp, dvd, 종이책, 폴라로이드를 찾는지에 대한 이유이고, 수많은 수집광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다만 lp는 공급하는 수량이 비교적 많지 않아서 가격은 높게 책정되어 있다. 만약 비싼 가격을 감안하고 lp를 수집하는 길에 들어선다면, 희소성이 있는 중고 lp들의 가격 상승 효과를 노리는 재테크에도 손을 뻗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매달 들어오는 월급 통장의 잔고에는 조금 부담이 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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