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의 하루 Jan 23. 2024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를 읽고 나서

  한 철학자를 위한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먼저, 쇼펜하우어는 우울한 철학자였다. 그의 저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에서 그가 말하는 행복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은 본연의 의미로 행복할 수 없다. 그저 고통을 피하는 것이 곧 행복에 가까워 지는 지름길이고, 그것이 곧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행복론의 대전제가 '행복할 수 없다'라는 게 이상하지만,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일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어른이 되면서 알아가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행복을 수치로 환산했을 때 마이너스를 깔고 들어가서 0에 가까워지는 노력만을 기울이는 일이라면 대체 왜 살아가는 건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쇼펜하우어하면 염세주의를 떠올리는 것 같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고독한 천재이다. 그는 학자로써 무명시절이 길어서 명성을 뒤늦게 얻은 사람이며, 그 영향인지, 그의 책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 고독함, 사색의 유익을 강조하고, 사교, 연애, 사랑, 우정이 얼마나 생각보다 무가치한지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 천재, 즉 지성이 있는 사람은 왜 고독할 수 밖에 없고, 고독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책에서 죽 이어진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참신한 그의 말들에 수긍이 가면서도, 그가 얼마나 고독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게 될 정도이다.



  그의 책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핵심으로 꼽은 것은 고통과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다. 그의 행복론 철학에서는 고통과 지루함 두 개의 커다란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와 함께 방법으로 꼽은 것이 여러 개 있다. 타인을 믿지 않기, 지성 갖추기(정확히는 갖추고 태어나기), 여가 시간을 정신 활동으로 채우기, 그리고 무언가를 완성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마지막의 완성품 만들기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의 능력은 어딘가에 사용되기를 바라고 그 사용의 성과를 어떻게든 보고 싶어한다. 여기서 가장 큰 만족은 무언가를 '한다'는 관점이다. 바구니를 만들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다. 자신의 손에서 매일 성장하고 마침내 완성에 도달하는 작품을 보면 직접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예술품이나 글뿐만 아니라 단순한 수작업도 해당된다. 물론 작품이 수준이 높을수록 향락도 커진다. 이 점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중요하고 위대하며 촘촘한 작업을 수행할 능력을 자각한 재능 있는 사람이다.


『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책을 쓰거나 바구니를 만드는 일. 그가 본래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여서일 수도 있겠지만 쇼펜하우어와 같이 행복이라는 상태의 기준이 높은 자가 한 말로써 무척이나 신뢰가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라고 했다. 그가 제시한 행복의 두 가지 방해 요소인 고통과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꽤 일리가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그것을 진행하고 있는 순간 능력을 발휘하여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고 나서도, 흠이 없고 장점을 살린 더 나은 결과물을 향한 의지가 저절로 생긴다면 그것에 몰입하는 일은 인생 전반에 걸쳐 계속될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또한 살아가면서 세상은 그러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례적인 관심'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한 재료들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일단의 지루함이라는 문제가 해결되고 세상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을 키워나갈 수 있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일반적이고 의지적인 측면의 지성' 이외에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지성을 지니게 된다고 설명한다. 당장 하루를 먹고 살아가는 소시민이 아니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로 쇼펜하우어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이라는 무대의 '배우'로만이 아니라 '관객'으로서의 역할도 맡게 된다는 뜻이다. 공연을 가보면 가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관객들을 부러워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무대에 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관객의 자리에 여러번 서봐야 언젠가는 위대한 작품의 한 가운데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LP의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