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며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다.
글쓰기의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무척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자극적인 동영상과 화려한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글'이 설 자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신문 기사 하나도 글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찾아보는 시대에 누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컨텐츠를 찾아 읽을까. 사실 어떤 환멸을 느낀다는 나부터가 이미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제목을 대려면 한참 기억을 되짚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접한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작가 대 독자로 만나며 좋은 질의 컨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감성 #힐링 따위의 해시태그나 세련된 사진, 캘리그래피를 동원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글에 집중하는 플랫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많은 기대감을 품게 했다. 한동안 나는 브런치에 들어와 다양한 글들을 탐독하며, 퍽 자주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브런치를 작가로서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여태껏 나는 아이디조차 만들지 않고, 브런치를 소위 "눈팅"만 해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첫째는 귀찮음이었다. 브런치에서는 유독 글을 '전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힘을 빼고 일기처럼 편하게 쓰는 글도 더러 보였지만, 대부분의 글이 작가의 필력을 어필하며 가독성과 심미성을 높이기 위해 글 외적인 요소도 신경을 쓰는 듯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이유와도 같은데, 나는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할 때 조금 모멸감이 든다. (라는 변명을 일삼으며 대충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또, 매거진의 형태로 어떤 일관된 주제를 잡은 채 연재하듯 글을 올리는 것에서도 부담을 느꼈다. 정기적으로 글을 올려야 한다고 누가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뭔가 그래야 할 것 같달까. 그것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글을 올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계속 받을 것 같았다.
둘째는 이미 '본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팔로우 500명 남짓한 작은 페이스북 페이지, "인용구"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문득 글들을 모아두면 나중에 찾아 읽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 페이지를 만들었다. 요즘은 페이스북의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당시로서는 주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였기 때문에 접근성 좋은 블로그 정도로 이용한 셈이다. 그 후로 일기와 시답잖은 시들을 올리다 보니 어느새 내 본래 계정보다 많은 팔로워가 생겨버렸다. 꽤 오래 활동을 하다 보니 나름 팬을 자처하는 분들도 생기고 애착도 많이 생긴 탓에, 플랫폼을 이동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벌써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백세 인생이라고 따져도 4분의 1이 지나간 것이다. 재작년 즈음에, 학부를 졸업하는 나에게 선물로 책 한 권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꿨었다. '인용구 페이지에 글도 많이 모아두었으니, 적당히 편집해서 제본소에 갖다 주면 내 이름 적힌 책을 받아 들 수 있겠구나, ' 생각하며 아예 펀딩을 받아 구독자 몇 명에게 선물을 해볼까 부푼 망상도 해보았다. 그런데 막상 글들을 모아보니 짜임새가 부족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틀을 만들고 필요한 원고를 모아보기로 생각만 하며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어느새 2년 차 대학원생이 되었다. 아뿔싸, 귀차니즘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출간'은 못 해보겠구나 싶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설은 막 지났겠다, 신년 목표로 올해는 좀 짜임 있게 글을 모아보려고 한다.
확실히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릴 때보다는 훨씬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예쁜 썸네일을 만들어야 할 것 같고, 매거진은 어떻게 구성할지, 한 꼭지 글의 분량은 어느 정도가 좋을지. 벌써 귀찮음이 치밀어 오르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기왕 하는 거, 잘 가꿔보고 싶다. 꾸밈없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도록 잘 꾸며주고 싶다. 구독자 0명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블로그를 한다는 생각으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글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전자책 한 권 부터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열정으로 각오를 다지며 허공에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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