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권을 행하는 것도 자유냐 그럼 너와 같은 속도로 죽어갈내 자유는 이제 평생 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나의 자유는
언젠가 네가 섰던 높이에서
언젠가 네가 누운 곳을 내려다본다
초크 아웃라인*은 지워졌지만
포ㄱㅐㅆ던 그림자는 여전히
그 위로 여전히 꼬물거리는 정다각형
가여워
*초크 아웃라인(chalk outline): 범죄 현장에서 시신 및 증거의 위치와 모양을 표시하기 위해 임시로 그리는 윤곽선
문학의 뜨락의 봄학기 마지막 정모에 들고 갔던 글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쓰는 시의 구조라던가, 틀이 너무 고정된 느낌을 받았다. 매번 비슷한 글만 쓰니까 주제도 표현 방식도 뻣뻣해지는데, 몇 시간씩 퇴고까지 거치니 글이 어딘가에 수렴한달까. 그 위치가 global optima는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한 번 스타일을 바꿔보았다. 그런데 어떤가요, 좋아졌나? 잘 모르겠고 달라졌나?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글 쓰는 건 어렵네요.
뭔가 작자의 변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길게 써봤습니다. 시는 함축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전달력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고민을 하며 시를 퇴고하다 보면 결국 글이 짧아져서 4~6연쯤의, 행도 모두 엇비슷한 길이의 무언가가 만들어졌단 말이죠. 그런데 시집을 읽다 보면 막 두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도 있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시도 있고. 그런 것들이 또 좋은 부분이 있어서 일단 여과 없이 이어봤어요. 운율감이 연마다 꼭 통일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행갈이도 좀 과감하게 해 봤고요. 시에는 잘 넣지 않았던 비속어도, 영단어도 넣어봤습니다. 말장난은 약간 아이덴티티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귀여워-가여워 라던가, 포ㄱㅐㅆ던 이 부분은 포갰던/포기했던 둘 다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서 , 뜨락에 들고 갈 때는 포갰던 처럼 쓰고, 포기했던으로 낭송했습니다. 둘 다 좀 뇌절?이지만요. 반응이 별로인 부분은 나중에 버리려고 했는데, 아냐 그냥 골만 기록하지 말고 슛도 남겨보자, 하고 두기로 했습니다.
글의 주제는 문체에 비해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살, 그중에서도 투신자살을 한 사람의 주변인 관점에서 쓰인 글인데요. 사실 그 직전의 정모에서 부회장님이 같은 소재의 글을 쓴 것을 보고, 전부터 갖고 있던 이미지/생각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 제목인데요, 소설가에 대한 깊은 존중과는 별개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쩐지 질색을 하게 되는 구간이 있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술자리에서는 무기처럼 사용하면서도. 누군가가 그렇게 스스로를 저버린다고 상상하면 지랄 말라고 외치고 싶어집니다. 죽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밉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인데, 그런 건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나 가능한 것이잖아요. 나를 얽매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그건 자유... 도 맞지만... 도피잖아요. 무책임이잖아요. 사실 자유, 권리, 이런 말은 너무 어렵습니다. <자유론> 아직 못 읽었다구요. 아무튼, 자유롭고 싶어서 자살을 한다, 이런 거 나는 용서가 안 됩니다. 고인에겐 못 할 말이지만,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필 나는 또 이공계 인간이어서, "자유낙하"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력을 제외한 어떤 힘도 받지 않고 운동하는 상태. 자유낙하는 낭만적입니다. 오로지 존재(질량) 간의 이끌림에 충실한 상태니까요.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대기가 존재하는 지구에서 우리는 자유낙하를 할 수 없습니다. 공기의 저항을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면적)의 몫입니다. 무시할 정도라지만 부력도 받구요. 말하자면 "당신 빈자리의 무게"입니다. 좋든 싫든, 세상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우리는 결코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겠지만 당신은 세상 속에서 이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몰랐겠지만 당신은 이미 그만큼의 책임을, 압력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작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떨어지는 동안에, 처박히기 직전에. 당신은 종단속도에 도달하였을까요. 당신이 홀로 느꼈던 무게는, 남겨질 우리가 느끼게 될 허전함에 비해 너무 컸던 걸까요. 내가 당신을 위로, 할 수는 없었을까요. 조금만 더 천천히 떨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냥 같은 속도로, 매일 함께 죽어갔으면 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SF 소설 제목 / 무한한 우주에 무한한 존재가 서로를 향해 자유낙하 한다면 그 궁극의 종단속도는 광속 아닐까요.
글에서 사실 앞의 두 연은 어떻게 보면 도입부를 맡고 있는 내용이라 지워도 됐습니다. 마지막 연도 같이 날려도 됐고요. 근데 귀여워-가여워 같은 유치한 말장난까지 넣으면서 꼬물거리는 정다각형을 넣고 싶었던 이유는 결국은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삶을 저버렸던 이 지독한 별 위에, 여전히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들이 있어. 그 모습이 참 귀엽고, 가엽고. 그런 연민을 담고 싶었다-입니다.
작변도 아주 자유분방하다... 지저분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P.S.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용서가 안 된다니, 비겁하다니, 이런 말 하는 것도 참 내 속 편한 일이다 싶어서 정정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자살을 그 사람의 자유였다고,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내던졌던 상황에 대해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을 맥락 상 저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점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