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피어나는 모든 것들의 꽃말은 그리움

by 인용구

올 봄


사랑을 잃고 나는 쓸 수도 없었네


개나리 만발하는 그날이 왔건만

벚꽃 나리는 길 위에 내 설움 벗고 싶어도

흰 목련 같던 시절 이제 더는 몽연하네


올봄,

피어나는 모든 것들의 꽃말은 그리움이고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후회는

분향소 밖 담배 연기처럼 덧없어라


잘 있거라, 유서에 적으려던 이름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지난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다. 아홉수는 원래 재수가 없다지만, 내 청춘의 마무리는 좀 가혹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 시발점이었던 사건은 변명의 여지없는 나의 잘못이었으니, 혹자는 그 겨울을 업보라고 부를 테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건의 후폭풍은 끝나지 않는 여진처럼 나를 수차례 무너지게 했다. 붕괴와 재건을 반복하는 시간 동안 글도 많이 썼다. 나를 구원하려 썼던 문장들조차 변명이나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보일까봐 어디에도 내비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그 사건을, 이 글을 비목 삼아 과거로 묻을 수 있는 시점이 온 것 같다.


사실 3월까지도 어떤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도 죽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떠올리면 꼭 그것이 죽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따지자면 그것이 나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에 가깝다. 연말에 소용돌이치던 일련의 감정들을 순서대로 복기해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에 우스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재미없는 만우절 농담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몰래카메라 같은 상황이 현실임을 깨닫고는, 한편으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잘못은 했다지만 그 정도 무례는 너도 나한테 몇 번 범했던 것 같은데, 너무 가혹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미안함은 진심이었기에,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소용이 없었다. 그의 요구에 모두 따르기로 했다. 무력감과 함께 슬픔이 찾아왔다. 고백하면 그때는 조금의 자기연민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이 관계의 죽음을, 그것이 동반한 무수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애도는 그 후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나의 업보였으므로, 자기연민조차 스스로에게 계속 허락할 순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깊은 슬픔, 그것은 '애도'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이유를 롤랑 바르트가 본인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애도 일기 Journal de deuil>라는 책에서 발견했다.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 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 1977.11.05.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 나의 슬픔 역시 그 지점에 있었다. 내 마음속에 거실 같던 존재가 일순간 뜯겨 나간 느낌이었다. 방문을 열면 휑덩그렁한 겨울이 나를 기다렸다.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을 비롯해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더는 사랑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왔다.


영화배우 앤드류 가필드 역시 자신의 작고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Grief is the manifestation of unexpressed love that has nowhere to go anymore."
(애도란 더이상 갈 곳 없는, 표현되지 못한 사랑의 발현이다.)

결국 나의 슬픔의 근원에는 못다한 사랑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래, 냉정하게 나의 미래와 안위만 생각한다면 나는 나를 더 적극적으로 변호할 수도 있었다. 죄책감이나 그리움처럼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은 흐르는 시간에 놓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갈 곳 잃은 내 사랑을 빈 집에 가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실, 아직도 많이 사랑한다. 다시 연결될 수 있을 거란 미련한 기대도 이젠 없지만, 여전히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안녕을 바란다. 내가 먼저 님들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함께할 때도 종종 실망을 주던 여러분이었을지라도, 님들을 사랑하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거든. 그렇다면 이 슬픔도, 사랑의 흔적도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제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나 영원히 슬프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롤랑 바르트의 책에 이런 구절도 있었다.

슬픔을 내보이지 말기(혹은 적어도 슬픔에 흔들리지 않기).
그 대신 슬픔 안에 내포되어 있는 사랑의 관계와 그것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거리낌 없이 주장하기.
- 1977.11.18.

나의 영원한 슬픔은 나의 몫으로 두어야 한다. 슬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랑의 관계가 있다. 사랑의 권리를 허락한 이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람으로 남아준 그들을 사랑하며 나는 다시 행복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겨울에 머무를 수는 없기에,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다음 계절을 맞이하기로 했다. 올봄에도 꽃을 선물하는 고마운 나무 같은 이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잘 가꿔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궁상도 여기까지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덧없는 후회나 죄책감도 이제는 그만이다.


나는 한때 유서에 네 이름을 적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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