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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l 12. 2022

풍랑, 바람과 파도를 만나다.

강릉 주문진 유랑기


1. 風, 바람


    화요일까지 휴가를 내고 강원도 주문진으로 여행을 왔다. 며칠 전에 먼저 가 계셨던 부모님이 일요일 오전 7시 버스를 예매해 주셨는데, 첫차 시간이 이래저래 애매해서 새벽 4시부터 자전거를 타고 대전 복합터미널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니 미련한 짓이었지만 그때는 '이미 여행은 시작됐어' 하며 신나게 자전거를 탔던 것 같다. (벌써 돌아가는 길이 막막하다.) 터미널 맥도날드에서 아침 먹으면 딱 완벽하겠다 생각했는데, 이 자식들 오전 7시부터 영업하더라. 맥도날드는 24시간 하는 것이 국룰인데. 심지어 터미널이면 솔직히 24시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넌 나를 배신했어. 괘씸해서 근처에 있는 버거킹과 바람을 피웠다. 와퍼 3종류 3900원에 판매 중. 참고하세요.


    대전에서 강릉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에서 꿀잠을 자고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주한 휴가지의 날씨는 "여름이었다,"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비가 올 듯 안 올 듯, 비인 곳 없이 구름이 가득했다. 오히려 좋아, 시원한 게 장땡이다. 부모님이 일출을 보자며 새벽같이 깨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해돋이가 유명한 건 주문진이 아니고 정동진이잖아요? 저는 밀린 잠이나 많이 자고 싶습니다. 터미널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기분이 좋았다. 짧은 글을 써서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나중에 올린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뒤에 "바람은 멈추지 않아서 바람이다."라는 말까지 덧붙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람은 멈추면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멈추지 않아서 바람이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앞까지만 쓰면 조금 씁쓸한 체념의 느낌인데 뒤는 수긍, 인정의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바람은 자유로워서 바람이다. 바람을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내 것이 아닌 것들, 그들은 내 것이 아니어서 더 아름답다.


    바람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람은 간직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오기를, 그치지 않기를. 끝이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한 시간을 혼자 간직하는 것이다.



2. 浪, 파도


    였을 때, 바다파도였다. 숙소 위치가 좋아서 창문만 열어도 파돗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바닷소리를 들으며 어느 대학 시각디자인학과의 졸업작품 도록을 읽었다. 제목이 마침 "너울"이었다. 너울은 파도의 순우리말 단어이다. 파도가 한자어인 것, 알고 계셨습니까? 波濤. 물을 뜻하는 삼수 변(氵) 자를 공통으로 쓰면서, 가죽 피(皮), 목숨 수(壽) 자를 붙여 만든 단어더라. 파도는 바다의 껍질이요 숨이다, 이렇게 이해하니 금방 외워졌다. "너울"은 구성부터 내용까지 참 좋았다. 가끔씩 펼쳐봐야지.

떠나는 날 날씨가 딱 좋아져서 한 장 찍었다.

    바다 근처로 여행은 매년 갔던 것 같은데, 실제로 몸을 담근 것은 되게 오랜만이었다. 해변에 의자를 펴고 앉아서 아이들 노는 것을 보다가 나도 옷을 갈아입고 첨벙첨벙 들어갔다. 꼬맹이들이랑 물놀이를 한 건 아니고, 혼자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가서 헤엄도 치며 놀았다. 그냥 시원한 물속에서 부력과 조력을 느끼기만 해도 재밌었다. 파도는 sine파처럼 보이지만, 매질의 운동은 원운동에 가깝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자리에서 말 그대로 '달님과 밀당하며 웨이브를 타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즐거웠는지. 소금물이라고 수영장보다 몸이 더 잘 뜨나 그것도 확인해봤지만 큰 차이는 못 느꼈다. 생각보다 물이 안 짠가? 하면서 맛도 봤는데 소금한테 속음. zzㅏ.


    아, 이런 식으로 자꾸 이과 자아랑 문과 자아가 번갈아가면서 "인용" (cite/quote) 하는 게 웃겼다. 맥주 거품 같은 포말(泡沫)을 보다가 바닷물의 염분 농도랑 맥주의 알코올 농도를 formal하게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든가, 수평선의 곡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지 관찰하다가 여기서 수평선은 水자를 쓰나? 같은 생각을 한다든가. 이런 다른 농담(濃淡)의 농담(弄談) 따먹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더 즐거웠을 텐데. 코드 맞는 친구가 그래서 참 귀하다. 잠깐, 여기서 코드는 code인가, chord인가.. (제발 그만해)




    …이렇게 날 것의 글을 쓰게 된 것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바다의 매력 때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5200원이나 하는 비싼 카페에 앉은 김에, 멋진 경치를 보며 이번 여행에 대한 글을 하나 남기고 싶었다.

    2층에 앉았는데 창밖으로 물방울이 튀길래 비바람이 몰아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비가 아니고 바닷물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물알갱이가 높은 곳까지 닿는 것이었다. 거센 바람과 물결. "풍랑"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근데 풍랑 뜻은 아는데 한자로 쓰질 못하겠는 거다. 파도(波濤)를 찾아본 것처럼, '물결 랑'도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보았다. 浪. 다시 삼수 변(氵) 자에 어질(좋을) 량(良) 자를 쓰더라. 또 내멋대로 해석을 해봤다.


     사람이 (人) 건강하려면 (良) 잘 먹어야 하고 (食), 물이 (水) 건강하려면 (良) 잘 흘러야 한다 (浪).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바다가 썩지 않은 이유는 쉴 새 없이 흐르며 숨을 쉬기 때문이다. 파도로, 구름으로, 비로, 물결로. 언제나 변화하며 이동하는 것이 바다이기에, 늘 같은 자리에서 온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먹는 것도 중요한데,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몸을 움직여 관절이 녹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적으로도, 나는 평정심을 믿지 않는다. 동요없이 고요해도 괜찮은 것은 부처의 마음처럼 맑고 완성된 마음이나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우리처럼 조금씩 때묻고 불완전한 마음은 가끔씩 이런저런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인 채로 가만히 있으면 침잠한다고. 우울증 온다고. 가끔 희로애락이 찾아와야 한다. 시련이라도 좋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시간은 성장의 시간이고 회복의 시간이다. 마음에 파도가  , 부서지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안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있었는지를 깨닫는 시간으로 생각하자. 언젠가 풍파는 잠잠해질 이다. 마르지 않은 마음은 바다처럼 다시 생명을 품을 것이다.


    ...그냥 이번 여행도, 어떻게 보면 유랑(流浪)이니까. 새로운 장소에 몸과 마음을 노출 시키며, 바람과 파도 맞으며 새로고침(refresh) 했다~ 참 재미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글의 톤이 너무 들쭉날쭉한 감이 없잖다. 아 몰라, 원래 여행 후기는 보고 느낀 것 그냥 다 적기만 하면 되는 거임. 아, 그리고 마지막 날 먹은 장치찜이 정말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주문진 시장 근처 월성식당. 맛있었어.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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