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저번에 한 시인의 낭독회에 갔을 때였다. 시인의 독자분 중 한 분이 물었다. "시인님이 생각하시는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론은 결국 자기 자신이 배낭처럼 짊고 갈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내게 이 질문이 떠나가지 않았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교환학생 생활을 '유학'으로 명명하기는 싫었다. 그렇다면 너무 삶이 척박해질 것 같았기에,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직 나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걷기 위해서.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을까. 아직 섣부른 욕심이다. 글을 적으면서 가장 두려웠던 생각과 걱정은 그 한 걸음이었다. 돌이켜보면 내딛는 시도도 무서웠으며 주저하는 순간에는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돌아서던,
인천공항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고 있고 그러할 테지만, 가장 설레던 기분은 그곳에서 느꼈다. 매일 나에게 다른 언어로 인사를 건네며 떠나던 사람들, 내가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기억할 사람들을 떠나보낸 그곳에서, 그렇게 매일 하루를 마치고는 꼭 돌아오던 그곳에서 한 걸음 내디뎠다. 티켓을 받는 순간부터 걱정도 되었지만 이상한 기분 좋음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손을 흔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서있던 공간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인사를 건넬 사람은 없었지만 생애 가장 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렇게 긴 작별 인사를 서로에게 했음에도 한 아이는 그곳에 남아 내가 없는 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좋은 여행에 대한 정의는 한 가지로 수렴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욕심부리지 않고 단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여행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배운 만큼만 딱 그만큼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여행을 돌아봤을 때 '좋은 여행'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공항에서 회상을 하면서 눈을 떠보니 허브 공항 조호루 바루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한 아이가 에스컬레이터를 반대로 타고 있는 게 아닌가. 말레이시아에서는 저렇게 타는 건가 싶었는데 아이의 부모님이 얼른 아이를 다그쳤다. 큰일 난다고. 회상을 하고 있었어서 그런지 그 장면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무서워 엄마손을 놓지 않으려다 엄마는 타지 않았고 나는 점점 밑으로 가는 형국이 됐다. 엄마도 당황했는지 서로의 손이 흩어졌다. 나중에 혼이 나면서도 억울했다. 나를 왜 떠나보내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뒤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는 '풍파는 진전하는 자의 벗이다'와 같은 멋진 비유가 아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막상 모두 지우겠냐고 당신이 묻는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만약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삶이 있다면 그는 정말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산 것이다. 또한 뒤로 걸어보면 알겠지만 (운동회 때 기억을 떠올려 보자!) 막상 뒤를 보면서도 앞을 보고 싶어 하며, 넘어질까 점점 시야가 좁아지다 결국 땅까지 떨어진다. 땅을 바라보면 앞은 약간 보이지만 내딛는 발 주위가 전부다. 그만큼이 우리가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시야의 폭이다.
만약 뒤를 바라볼 작정이라면 그냥 서서 그곳에서 우두커니 한동안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과 동시에 미래는 현재의 걸음을 착실히 하는 것으로 걱정을 대신하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지금 내딛는 걸음이 걱정보다 나를 멀리 가게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떠나오던 지점에서 한 걸음 내딛으며 떠나가고 있었다. 약간의 스콜을 동반하며 노숙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