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기다리는 밤

[페낭은 처음이라] 치앙마이에 다녀왔습니다.

by 변민욱
호수 위로 석양이 집니다. 벤치에 앉아서 밤이 올 때까지 밤을 기다립니다.


별들이 못다핀 밤을 지새웁니다. 어렸을 적 돌을 던진 바다가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나를 자비 없이 지워냈기에, 꿈이 꿈으로 적히는 파랑을 바라보고서야 몇 마디를 적어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바다에서 다르게 밀려올 때까지 파도를 백지처럼 까맣게 바라봤야 했습니다. 발끝에 이르러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속에서 추억이 추억의 껍질이 되어 나의 꿈에 옮아갔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신발 한 짝이 내딛지 못한 악몽의 보폭. 밤을 건너뛰는 음표의 호흡. 밤 위로 무너지던 밤을 호수 위로 내뱉습니다. 달 위로 밤이 흐릅니다. 산소가 부족한 물고기들이 하나로 뒤섞이며 물을 벗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악몽 속에서 부표처럼 떠다니는 나의 꿈을 적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걸려야 했습니다. 당신이 살아나가지 못한 꿈에서 홀로 잠에서 깨기를 여러 날 바라기도 했습니다.


마주 보는 거울 속에서 나를 마주했을 때처럼 추억을 추억하는 그림자 속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럴 때면 기억은 설명하지 못할 문장들이 가득했던 일기를 설명해야 했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과 멀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했습니다.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을, 당신과 대화했던 밤을 셀 손가락이 부족해 오늘도 밤이 끝나지 않습니다. 밤을 기다렸지만 밤이 오지 않습니다. 기다렸기 때문에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신발 '한 짝'이 주위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을 불안하게 압도합니다. 이미지의 크기와 위력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호흡대로라면 어제 마쳤어야 할 글을 오늘 비워냅니다. 어제는 아름다운 글을 한국어로는 적지 못하는 날이었어서, 더욱이 어떤 슬픈 글도 슬프다 생각이 들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와 여전히 사이에서 저는 푸르게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잊지 못할그날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