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over politics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을 통해 버리게 된 기대와 가지게 된 소망이 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읽고 쓴 문장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도 버리게 된 기대와 소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의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관심을 갖었던 사회문제를 조사하고 인터뷰며 단순히 조사와 인터뷰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관심에 스스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답할 수 있으며, 문답을 통해 반성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기를 바랐다.
사람이 말하는 문장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타인에게 배워서 쓰는 문장이 있다면 본인의 삶에서 쌓아온 문장도 있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무게가 사뭇 다르다. 단순한 생리 교육, 베리어프리, 탈북인 속의 문제가 아닌 본인의 초경 경험을 떠올리며 편부 가정의 초경 교육 속의 문제를 파악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들의 문화여가 생활을 위해서 수많은 부모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가깝고도 먼 북한이탈주민 분들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말은 공허하지 않고 충실히 쌓여갔다.
그러한 문장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문답으로 만들어지고 쌓인다. 어떤 질문이든 많이 듣고 대답하다 보면 사람의 내면에 자연히 스민다. 그렇게 스민 질문은 대체로 인생을 크게 바꿔놓는다. 아산프론티어유스 과정 속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떤 때는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이기도 했으며 과정 자체에 임하는 본인의 지속가능성이기도 했다. 답을 이어나가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스며들었다.
상반기를 가득 채워주었던 프로그램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회의를 마치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걸으며 상념이 밀려왔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계속해나가지?' 이런 생각을 할 때 보통 우리는 먼 곳이나 특별한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뒤돌아봤다.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남아있지는 않았나. 갱년기와 관련되었던 문제는 보고서도 쓰고, 모임도 만들어 드리는 등 정말 많은 해결책을 떠올리고 실행했다. 그러나 정작 사회문제 탐색의 시작에 있었던 북한이탈주민 분들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관련한 문제는 문제와 해결책 역시 시작점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흔히 인생에서의 기회는 3번 온다고 한다. 일생일대의 기회는 3번 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기회로 연결되는 수많은 기회들은 하루에도 3번씩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 속에서 간절함의 농도가 짙어질 때, 기회의 빈도도 함께 높아진다. 이번에 ‘Liberty in North Korea’에서 일하게 된 우연도 그렇게 왔다. 나의 시작점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던 와중, 같은 팀을 하던 친한 친구가 마침 그곳에서 일을 했었고 마침 그곳에서 우리가 인터뷰를 했었고 마침 오랜만에 인턴을 뽑았고 그것을 내게 공유해주었다.
원래는 2학기에 이러한 고민을 갖고 불편한(?) 복학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마침 속에서 기회가 와서 직감적으로 '여기는, 여기만 지원해보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류와 면접을 거쳐 함께 일하게 되었다. 계획을 세우는 계획을 하는 것을 좋아할 정도의 계획파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우연을 가장하며 찾아온 기회에 나의 계획은 계속 행복하게 질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위에 전하자 '어쩌다 갑자기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되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갑자기는 아니었다. 1월에 이곳에서 인터뷰를 한 이후에 계속해서 이 'Liberty in North Korea'라는 기관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북한이탈주민 분들의 문제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북한'이라는 단어보다 그 단어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지원을 했으며 일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떠올리면 주로 위와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고 한다. '김정은', '독재', '핵'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주를 이룬다. 매스컴이 이러한 단어들에 주목할 때 생기는 그늘로 인해 정작 북한에 사는 2500만명의 사람들과 우리 주변에 사는 많은 북한이탈주민 분들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이전에도 그랬으나 여전히 통일에 대해서 떠올릴 때 특별히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쪽에 크게 마음이 기울지는 않는다. 이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지 타산을 따지는 것은 더더욱 싫다. 다만 그러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단어들의 나열 이전에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의 흐름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인턴으로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적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