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ty in North Korea? 거기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고
" 희영이는 어머니의 파란 모자를 씌워주면 잠이 잘 온다. 아마 어머니가 항상 곁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희영이는 그녀에게 이번 생의 유일한 기쁨이다. 희영이의 어머니는 탈북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많지 않다.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하면 붙잡힌다. 중국 남자들에게 개나 돼지처럼 팔려간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믿는다. 그들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녀는 또다시 다른 남자에게 팔려간다. 그녀는 희영이와 자유를 위해 이제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한다. 링크를 통해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몇 달 뒤에 그녀는 건강한 아들은 낳았다. 그리고 여전히 희영이와 다시 만날 함께 자유를 누릴 날을 기다린다. "
(https://youtu.be/vs-7ufYdcJs)
LiNK에 다니면 장점이 있다! 일하는 곳을 이야기할 때마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다. 이전에 인턴을 했던 피치마켓은 사람들이 잘은 모르지만 설명은 어렵지 않았다. "피치마켓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야"라고 말하면 다들 "오! 그렇구나"라고 말했다. 그럼 이후에는 왜 '피치'+'마켓'인지 묻고 답하는 문답으로 이어졌다. 아산프론티어유스 역시 아산나눔재단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하면 되었다. 또한 듣는 상대방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 좋은 곳에서 일하네!" "좋은 활동이네!"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LiNK'는 매우 다르다. 우선 '링크'라고 말하면 모른다. 기대어 설명할 곳도 없다. 서서히 설명의 과정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처음부터 능숙하게 풀네임을 찬찬히 소개를 시작한다. 대다수가 Liberty in···할 때까지는 반쯤 잠기었던 주변 사람의 눈이 North Korea···하는 순간 놀란 듯 번쩍 뜨인다. '이 두 단어가 그렇게나 안 어울리나?'를 생각하는 동안 적막을 깨고 그럼 이제 대화가 시작된다. 위의 두 기관보다는 훨씬 더 조심스러워하며, "아.. 이런 것도 물어봐도 되나... 거기도 막 대북전단 보내고 그런 곳이야?" 우선 말씀드린다. 물어봐도 된다. 그리고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구성원들은 통일에 대한 특정 견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LiNK라는 단체로서는 특정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왜일까?
LiNK는 북한 주민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전 세계적 운동이자 국제 비정부단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듣고 놀랐지만 시작점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2004년 재미 교포 학생들의 북한 주민을 위한 학생 운동으로 시작했다. 이후 2010년부터는 탈북 난민 구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2년에는 서울에도 사무소를 열어서 초기 정착을 돕고 또 협력하며 북한을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LiNK의 비전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북한 사람들의 자유다. 인턴을 하며, 많은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만난다. 그들도 우리처럼 각기 다른 빛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한 빛나는 분들과 LiNK는 꿈을 꾼다. 북한에서의 인위적인 제약을 벗어나 전 세계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잠재력을 펼치는 꿈을. 그런 꿈의 가능성은 북한에서부터도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 속에서도 그들은 '장마당' 등으로 대표되는 변화들을 서서히 그러나 스스로 일으키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유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LiNK와 함께 우리의 생애 동안에 자유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은 절박하게 믿고 묻는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탈북이라고 하면 두만강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중국으로 탈출하는 모습만 떠올렸다. 북한에서 남한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들은 먼 길을 돌아서 와야 한다.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그 긴 여정의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많은 북한이탈주민 분들에게는 오히려 두만강을 건너는 것은 악몽의 초입에 불과할 때도 있다. 아직 자유를 향해서는 가야 할 길이 수천 킬로 미터가 남아 있다.
그렇기에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도 아직 자유는 없다. 중국에서의 강제 북송과 착취, 인신매매 또 신분 상의 약점을 악용하는 브로커들의 협박과 폭력에 시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LiNK는 한시라도 빨리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비용과 조건 없이 탈출 과정을 함께 한다. LiNK는 우선 안전하게 쉴 곳과 먹을 것을 드린다. 그리고 전 세계가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드린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며 그 여정과 앞으로의 삶을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응원을 하고 있음을.
북한이탈주민들은 정착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인식론과 존재론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엄청난 어려움을 떠올리지 말자. 우리가 해외에 갔을 때를 떠올려보자. 교환학생의 경험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낯선 공항에 내려 낯선 언어에 둘러싸였을 때의 어려움. 그러한 어려움부터 시작해보자. 차별은 보통 그런 사소한 문제에서 우리의 경계에서 발생하니까. 그런 초기의 어려움이 해결되지 못하면 이후의 삶에도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LiNK에서는 PR(post resettelment) 팀이 첫걸음을 돕는다.
초기 정착 환영회뿐만 아니라 명절에는 고향에 못 가시는 북한이탈주민 분들과 LiNK 직원 분들의 함께 모여서 행사도 한다. 또한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열지 못했지만 북한이탈주민, 외국인 청년, 남한의 청년 모두 함께 모여 캠프를 진행하며 공통의 관심사인 북한에 대한 문제를 정의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또한 사회적 자아효능감을 느끼실 수 있도록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서 LiNK는 궁극적으로 CTN(Change The Narrative)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사회 맥락 속에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한국 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LiNK는 전 세계적인 활동이다. 16개 국의 290여 개의 동아리가 참여하고 있으며, Rescue팀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구출 자금을 모금하는 이외에도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학생들이 모금한 누적액은 7억 원 이상이며, 이를 통해서 231명의 탈북 난민을 한국으로 안전하게 모셔올 수 있었다.
처음 'Liberty in North Korea'(*이하 LiNK)를 들었을 때, 어려운 두 단어가 함께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Liberty(자유)란 무엇이며 North Korea란 또 무엇일까. 아마 인턴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이다. 경제 용어 중에 자유재라는 단어가 있다. 인간의 욕망에 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만큼의 양을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게 공급되어 있는 재화를 말한다. 그러나 자유는 자유재일까? 그런 곳보다 그렇지 않을 곳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한 예시를 우리는 가깝고도 멀게 알고 있다. 바로 북한이다. 나는 지금 LiNK와 함께 앞선 문장이 과거형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지금 내가 하는 업무는 크게 'Advocacy Fellow'라는 프로그램의 지원을 맡고 있다. 이와 동시에 PR(Public Relations)의 업무도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당신과 만나고 있다. 나의 업무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연스럽게 많이 소개해드릴 예정이다. 4명의 펠로우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다양한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그 속에서의 변화를 찬찬히 앞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LiNK에 대해서 더 궁금하시다면,
https://www.facebook.com/libertyinnk/
https://libertyinnorth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