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년은 여기서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Liberty in North Korea(이하 링크)에서 'Advocacy Fellows 프로그램(이하 AF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인턴이다. 이곳에서 나는 북한에서 온 청년분들과 함께 이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전한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뭐가 다를 수 있을까?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핵 미사일 실험과 독제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아닐까? 그렇다. 내가 링크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또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나 '모란봉 클럽'에 나온 분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앞선 담론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북한은 김정은의 독재로 인해서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곳이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와 이렇게 경제력, 자유로움, 삶의 질, 기대 수명 등이 차이나는 곳은 없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 (Daron Acemoglu)는 『총. 균. 쇠』의 자연 결정론에 반박을 하며, 국가의 운명은 정치체제와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근거로 한반도를 예시로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 온 분들이 그리워하는 부분도 있다. 식당에 가면 (북한에도 식당이 있다!) 모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PC방에 갇혀 있는 우리와 달리 친구들과 학교 끝나고 함께 놀았던 기억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통일에 대한 그런 생각도 옆으로 조금 미뤄두고 말이다. 북한에서의 건강기능식품을 남한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분의 탈북 브로커의 삶과 일본의 무패 챔피언을 데뷔 전에서 깨부쉈던 파이터 분의 데뷔 전과 중국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전하고 싶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뒤이어 학교 조회 시간에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이야기했던 분의 학교 생활과 이미지 컨설턴트로 이후 자기만의 회사를 그려나가고 있는 분이 전하는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인턴으로 이분들과 함께 어제를 돌아보며 내일을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좀 의아해했어야 했다. 우리는 북한 관련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북한 사람들이 참여한 경우를 거의 듣거나 본 적이 없다. 한국에 대해, 서울에 대해 혹은 제주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한국, 서울, 제주도 사람 없는 것과 같다. 그 자리를 군대 혹은 정보기관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대신했다. 동시에 그분들의 사는 이야기가 담겨야 할 곳에는 또다시 'Rocket man' 혹은 'Nuclear' 등이 담겼다. 그래서 우리는 담겨야 할 이야기를 담겨야 할 곳에 담았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미국의 링크의 본사뿐만 아니라 대학교, 안보기관까지 돌아다니며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AF 프로그램의 2기였던 펠로우님 중 한 분은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나 미국의 NGA(national geospatial-intelligence agency)를 방문했던 사례는 내게 특별하게 들렸다. 이곳은 미국의 안보기관 중에서도 인공위성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기관인데 이곳에서 24시간 내내 북한을 관찰하는 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들도 24시간 내내 북한을 위성으로 바라보지만 실제 북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그분들에게도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문답을 주고받았다. 매일 보는 차가웠던 사진과 데이터에 숨결이 닿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는 정말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AF 프로그램 역시 모두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국내에서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고 가다듬고 전하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폴앤마크와 함께 한다. 폴앤마크 분들은 대표적으로 '세바시 강연'을 하는 분들의 스피치를 코칭해주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참가하신 분들이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렇게 나온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다. 이것도 그냥 하지 않는다! 4MAT분석을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해서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피치를 만들어나간다. '스피치, 그거 타고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조금 신기했던 과정이었다.
AF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있다. 나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밸류 카드를 뽑으며 내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카드는 다름이 아닌 용기였다.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 그렇게 살아왔다기보다는 앞으로 삶의 지향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4MAT 분석에서는 조금은 극단적인 2 유형으로 논리와 분석을 중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역시 비평은 성격에 잘 맞아서 잘 써왔던 것 같다. 그러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또한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도 사람은 논리를 통해 이해는 할지언정 공감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를 쓰며 개발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용기와 함께.
추석을 앞두고는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강원도를 오가며 했던 대화 몇 개를 꺼내본다. 고성의 통일 전망대에서는 금강산이 보였다. 나는 여러분들 "북에 계실 때 금강산을 가보셨던 적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가 본 분이 없었다. 북한에서 금강산을 가려면 우선 이동할 때 드는 비용과 동시에 직위 혹은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통 당에 기여를 많이 한 기업에서 연수를 할 때 혹은 농촌에서 한 해 수확한 것을 당에 바쳐서 간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의 설악산 혹은 한라산 같은 곳이 아니었다.
이와 더불어 돌아오며, 나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거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강 너머로 서울의 밤을 빛이 수놓는 것을 보며 링크의 스태프 분들과 서울의 야경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한 펠로우가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북한에서 중국을 보면 딱 이런 느낌이었어요. 여기는 진짜 깜깜하고 저기는 저렇게 밝고요." 거리에 대해서도 "딱 저만큼처럼 느껴져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건널 수 있을 것처럼 보여요"라고 말씀해주셨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함도 들었지만 그곳에서 아직 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도, 북한의 사람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적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을 링크에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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