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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Nov 06. 2020

[귤로벌스터디] - 당신의 현재 속도는 얼마입니까?

리부트를 위한 "일단 멈춤!"


0. 들어가며


지난 상반기, 아프유를 끝내며 프로그램 담당자님께서 단원 모두에게 주신 책이 있었다. 바로 '리부트'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에 쓰인 '리더를 위한 회복력 수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끝맺음으로는 아쉬운 책이다. 자기 개발서는 별로인데···' 그와 더불어 나는 '리더'라는 단어는 자기 계발 도서에서도 진부하다고 느낄뿐더러 회복 조금 더 친숙하게 이야기하면 힐링은 나에게 가장 빠르게 어떤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단어다. 이 둘의 조합이었으니 기대도 하지 않았으며 바로 책장으로 직행했다.


앞선 판단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이 책은 끝맺음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책모임인 '귤로벌스터디'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책이 돼주었으며, 힐링이 아닌 진짜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책의 말미에서는 나도 모르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여백에 필기하고 있었다. 나아가, 책 모임에서 내 마음 깊은 곳에 담겼던 경험을 공유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도 위험하지만 이와 동일하게 책에게도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의 위험성과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제 되는지 깨달으며 감사하면서도 겸손해지는 경험이었다. 위 책은 조직에 대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에게도 적용할 여지가 많았다.




1. 오레오는 당신에게는 완벽한 마약이에요


당신의 마약은 무엇인가요?


하지만 2002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달 만에 내가 자살의 문턱까지 갔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 자체의 공허함 때문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레몬 사탕을 가지고 있는 데도 여전히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p. 47-48)


자신도 챙기지 않은 체 숨 가쁘게 어떤 프로젝트를 하다가 끝을 내면 성취감은 짧고 공허함은 길게 온다. 나의 이야기다. 일상이 무던히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한 두 번 겪으면 내 나름의 보호 기재로 바로 뒤에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렇지 못하면, 갑자기 인터넷에서 강좌를 찾는다. 요즘은 어떤 게 또 대세지? 그로스 마케팅? 이제라도 코딩을 배워야 하나? 자격증은 뭐가 있지?


 그 과정에는 '왜'라는 물음이 없고 '나'라는 주어가 없다.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면 나만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느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오 맞아 맞아!"라고 손뼉을 치며 공감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요즘은 뭐 하는 거 없어?" 이 물음은 나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될수록 더 나은 리더가 된다. 위대한 리더들은 위축되지 않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은 배고픔과 다스려지지 않은 충동을 자기 연민과 이해로 변환시킨다. 그럼으로써 우리 역시 같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우리 조직을 성장과 자아실현의 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 신성한 의무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이끌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당신도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하게 된다. (p.57)

공포나 두려움이 조직과 공동체를 변화시킨 근사한 아이디어나 혁신을 만든 사례가 있다면 말해보세요. (p.104)


조직과 공동체는 결국 사람의 집합이다. 공포나 두려움이 개인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례가 있을까? 공포와 두려움이 극단의 감정이기 때문에 효과도 잠시 극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뿐이며 부작용이 더 크다. 최근 일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연을 들었을 때도 느꼈다. 일을 자신의 존재 의미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놓쳐버리기도 놓아버리기도 쉽다. 이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나 멋져 보이는 우상향의 길이 이별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던 그곳에 마침내 도달하면, 당신은 완전히 혼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약에 손이 간다.


저자에게는 오후에 먹는 '오레오'였다. 범죄에 이르는 마약은 뉴스에 나오는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겠으나 자신을 망치는 마약은 그렇게까지 극단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나는 "저는 완전 카페인 중독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중독이라고 진단하면서도 되려 커피를 마시는 양이 점진적으로 늘었다. 우리가 흔하게 이야기하는 '단 게 땡긴다'라는 말도 위험 신호의 일종일 것이다.


또한 '살림'을 할 시간이 없기에 방이 정말 너저분해 졌다. 그럼에도 치울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계속해서 방 정리를 미뤘다. 방이 너저분해진만큼 미루고 미룬 만큼 나 자신 역시 너저분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컴퓨터를 복원하듯 잘못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급적 멀리. 어렸을 때 누구나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잊은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친절함에 대하여




우리는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라고 물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게 된 후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내 목적은 뭐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후 나이 들며 얻은 지혜가 뼛속 깊이 배이면 아마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내가 친절했던가?" (200)



소셜 섹터에 있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어린 시절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서 다양한 사람과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가치를 추구할 때 좋은 사람이 되는구나'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위에서는 아마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와 "내 목적은 뭐지"에 해당하는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영혼을 갈아' 프로젝트를 팀원들과 함께 하고 난 뒤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 적은 없었다. "내가 친절했던가?" 책을 읽으며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했다. 스스로도 일을 잘하는 사람, 팀워크가 뛰어난 사람들도 과정 중에 번뜩이지만 친절했던 사람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전자의 사람들이 '일잘러'처럼 성과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후자의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진정한 근성을 보여주는 리더는 팀의 목적을 믿고, 팀이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팀이 추구하는 목적이 이 세상에 유의미한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진정한 근성이란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팀이 계속 더 멀리 달려 나가도록 힘을 불어넣는 것이다. (248)


개인적으로 근성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근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당하는 사람을 혹사시키며 미화시키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공을 이뤄내지 못한 근성은 미련함이 되곤 했다. 성공만을 바라봤기에 그 이외의 곳은 목적지가 아니며 모두 실패가 되었다. 그러나 과정 중에 실패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실망의 두려움을 인정하면 계속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더 멀리 계속'이 아니라 '계속 더 멀리' 말이다.


평정심이란 나무가 죽어버린다 해도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성스러운 위로를 믿게 되는 공간이다(262)


그러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의미가 가치 있다는 가정 하에 과정 역시 건강해야 한다. 달리고 있더라도 마음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맹자의 부동심처럼 심지어 나의 나무가 죽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나무와 다르고 그렇기에 내가 괜찮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단단한 마음이다.  스스로가 단단하기에 이는 허름한 위로가 아니다.


책처럼 마음 역시 그저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다!'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삶 역시 읽는 것이다. 책에서 인물과 상황, 문장에서 사용한 접속사와 어미 등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읽어내듯 마음 역시 찬찬히 읽어내며 그렇게 나를 만나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려면 본인에게 우선 친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하고 있나 역시 다음과 같이 바꿔 물으면 된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친절했는가?' 그것이 자연히 내 마음이 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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