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 대한 우리의 답

by 변민욱

1. 우우우린


SF소설에 책장을 내어준 적이 별로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진보한 미래 시점에 관한 서술은 발생한 시간의 격차만큼이나 미학적으로 빈틈이 많았고, 소설 내에서 서술되는 문제들 역시 타협의 냄새가 나는 동어반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초엽의 소설은 달랐습니다. 다음은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안나와 남자가 만나며 남자가 안나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정거장이 처음이라는 말에 안나가 "직원인데 그럴 수 있나?"라고 묻자 남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그냥 파견직이니까요. 지구 궤도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의 인공위성들이 있는데, 회사들이 일일이 관리하기 귀찮으니 위성 관리 업체에 떠넘긴 거죠. 워낙 여러 궤도를 다니다 보니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 정거장에 있지만. 일주일쯤 뒤엔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소설의 시점은 먼 미래지만 작가는 현재 시점의 문제를 떠안으며 갑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 상상 그림 그리기를 하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연필을 굴리며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야'라고 생각했던 기술의 역시 대다수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자율주행, 날아다니는 자동차, 인공지능 등. 우리가 그리던 미래는 다가왔지만 우리가 그리던 방식으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작가 역시 현재의 문제를 떠안으며 갑니다. 먼 미래에도 파견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또한 방식도 여전합니다. 위험을 도급하며 불안정을 공급합니다.


두 인물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안나가 이곳에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있던 이유가 밝혀집니다. 안나는 "제3행성에 남편과 아들이 있거든"이라고 털어놓습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자는 행성을 통채로 암기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제3행성'을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후에 안나는 자신이 '딥 프리징' 기술을 연구하던 연구원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딥 프리징' 기술은 인류를 먼 우주로 나아가게 하며 더욱 진보시켜줄 기술이었습니다.


기술 개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늘 한 발짝 차이입니다. '딥 프리징' 기술 개발 성공을 목전에 두고 또 다른 혁명적인 기술이 발견됩니다. "자네도 아마 그다음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을 거야. 우주 개척 시대의 2차 혁명이라고 불리던 것 말일세." 이후 연구에 대한 관심과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은 대폭 삭감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안나에게 찾아옵니다. 이를 발표하는 컨퍼런스날과 슬렌포니아(제3행성)행 우주선이 마지막 출항날이 겹친 것입니다. 남자가 들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오가던 행성과 교류를 끊을 수 있냐고 되묻는 말에 안나는 다음과 답합니다.

"한때 슬렌포니아는 우리에게 가까운 우주였는데, 웜홀 항법이 도입되면서 순식간에 '먼 우주'가 되어버렸다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논리를 낳습니다. 경제적으로 월등한 웜홀 항법이 도입되면서 슬렌포니아와의 거리의 절대치는 동일하지만 상대적으로 '먼 우주'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연방은 이 노선을 없애버립니다.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일까요. '먼 우주'는 과거에도 있었으며, 현재에도 있고 또한 미래에도 벌어질 이야기입니다. 과거 폐광이 되며 함께 '먼 우주'가 되었던 탄광촌, 댐이 개발되며 수몰되었던 마을들, '먼 우주'란 우주처럼 머나먼 것이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해 합리성에서 열등해져 버려지고 잊혔던 수많은 빛났던 것들의 우주일 것입니다. 그리고 빛났던 것들은 늘 잔상을 남깁니다.









2. 기다린 만큼 더,


안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정상 제때 떠나지 못해 남아있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생이별을 겪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과거의 방식에 대해 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 경제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방식만을 사용했던 것이 연방 아닌가." 경제적 가치의 논리는 현재 가장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층위의 것들을 경제가 추산하고 보상을 하려 하면 그러한 합리성에도 오류가 발생합니다. 우주 연방은 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티켓을 주지만 이에 대한 동의어가 언제가 되어도 떠날 기약이 없다는 말임을 깨닫는 데는 많으 시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답답하게 듣던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자신은 안나를 지구로 돌려보내고 이곳을 철거하러 온 사람임을. "이곳은 이미 100년 전에 폐쇄되었어요." 미래에도 재개발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철거 계고장', '난장이'는 존재합니다. 기술 발전의 뒤로 남겨진 이들에게 애틋한 시선을 가지면서도 이들에게 경제논리로 낙원을 약속하는 장면은 묘하게 우리 난쏘공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안나 씨의 노후를 저희 회사에서 지원해드리겠다고 합니다. 정거장을 시한 내에 폐기하지 않아서 매년 연방에서 징수하는 벌금이 늘고 있어요. 그 퀴퀴한 냉동 수면 100년이고 200년이고 더 기다리실 겁니까? 어차피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은 오지 않아요. 저희 제안을 따라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회사는 다시 안나에게 경제논리를 꺼내 듭니다. 그러나 이는 섣부른 논리였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없는 지구는 안나에게 더 이상 지구가 아니었고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풍족한 노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은 의미를 사는 동물입니다. 아무도 없는 지구에서 풍족하게 사느니 안나에게는 초라하지만 가족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곳에서의 기다림이 더 풍요로웠을 것입니다. 비록 끝이 없는 기다림이더라도요. 안나는 우주를 뛰어넘은 헤어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헤어짐은 적어도 같은 하늘에, 행성에 대기를 공유했다고요. 그렇지만 이제는 같은 우주에 있다는 위안조차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기대는 그보다 더 빨리 발전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설의 시점에서도 인간은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구기술은 다른 신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이에 대한 관심과 기대 역시 기술의 그것보다 빠릅니다. 소설에서도 우주가 허락해준 것은 고작 또 다른 기술의 발견일 뿐입니다. 이것은 도약일까요? 도약이라면, 우리가 매번 딛고 올라가는 것과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3.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소설의 끝에서 안나는 얼마 가지도 못할 것 같은 낡아빠진 셔틀을 타고 아득히 먼 슬렌포니아로 향합니다. 남자는 방조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이를 그저 바라봅니다. 마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듯' 떠나는 안나를 그 누구도 윤리적으로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모한 행동일까요? 합리적으로는 무모할 수 있지만 위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것이 감쌀 수 없는 논리를 봤습니다. 안나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며 떠났습니다. 무모했던 것은 오히려 안나를 설득하려 했던 그 남자이며 그 회사이며 경제적 논리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음에도 저마다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떠나는 안나를 보며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별이 아닌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이유는, 감동하는 이유는 단순히 끝만 반짝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별똥별이 대기권과 마찰을 하며 타면서 이어지는 꼬리, 그 움직임과 이어짐을 보며 우리는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느낍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술 발전의 꼬리가 남겨진 이들을 남긴다면, 우리의 꼬리에는 무엇이 남겨져야 할까요? 당신이 낡은 셔틀을 타면서도 도달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이런 소설의 제목을 보면 괜스레 문장을 이어 보고 싶습니다. 마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뻔하디 뻔한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임을 답하면서도요.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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