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한 우리의 답
"그냥 파견직이니까요. 지구 궤도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의 인공위성들이 있는데, 회사들이 일일이 관리하기 귀찮으니 위성 관리 업체에 떠넘긴 거죠. 워낙 여러 궤도를 다니다 보니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 정거장에 있지만. 일주일쯤 뒤엔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한때 슬렌포니아는 우리에게 가까운 우주였는데, 웜홀 항법이 도입되면서 순식간에 '먼 우주'가 되어버렸다네."
"안나 씨의 노후를 저희 회사에서 지원해드리겠다고 합니다. 정거장을 시한 내에 폐기하지 않아서 매년 연방에서 징수하는 벌금이 늘고 있어요. 그 퀴퀴한 냉동 수면 100년이고 200년이고 더 기다리실 겁니까? 어차피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은 오지 않아요. 저희 제안을 따라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