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시해지기로 했다.

나의 시시했던 9월의 버릇

by 변민욱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릴 거예요!


1.jpg "이건 제 삶의 전부입니다"

버릇이다. 사소한 것과 여백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그래서 소설보다 시집을 조금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좋아하는 시집 서점의 주인이 신간을 내셨다길래 '고민은 만남만 늦출 뿐!'이라고 생각하며 다음날 친구와 방문을 했다. 버릇이다. 그 서점 속에서 수많은 시집을 마주하면 행복하고 괴로운 고민에 빠진다. 그때마다 예전에 국제교류학생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친구를 떠올린다. 오설록에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세요"를 외쳤던 그 친구. 그 친구처럼 시집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사고 싶다. 버릇이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갖지 못한 책들을 그린다. 그러려고 하니 지갑은 고민이 깊어지게 만들고 좁은 자취방은 시름은 더한다.


버릇이다.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한두 시간 동안 시집을 살핀다. 아마 글을 쓸 때보다 시를 더 애정 어리지만 날카롭게 보는 시간이다. 처음 이런 천국에는 처음 와본 친구가 '시집을 내가 잘 몰라서..'라고 고민을 한다. 시는 오히려 모른다 생각할 때 더 재밌고 더 잘 알 수 있는 묘한 특질이 있다. 저번에 선물을 했던 허수경 시인과 결이 비슷하지만 또 다르고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책을 추천해줬다. 그런 과정을 시인분께서는 읽으셨나 보다. 결제를 할 때 주인 분이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미소로 말씀해주신다. "김소연 시인의 시집을 추천해주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버릇이다. 김소연 선생님의 시집은 아끼면서 주저하지는 않는 책이다. 여간해서는 상대에게 실패하지 않는 패다. "네! 서로 시집을 한 권씩 추천해줬어요."라고 답했다. 시인 분은 바코드를 찍으시며 "그런데도 좋은 시집을 잘 추천해주셨네요"라고 대답해주셨다. 뿌듯했다. 묘한 행복감이 교차하면서 말이다. 무언가 돈과 시집을 바꾼 것이 그 이상의 것을 주고받은 기분이었다.


요즘 일하는 곳에서 함께 했던 시간보다 함께할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복이다. 마주치는 인연들이 우연이라는 이름을 빌려 무게를 더한다. 그게 겹겹이 쌓여 행복이 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이 된다. 최근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엇이 민욱님을 살아가게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마시고 있던 커피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이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커피랑 시집이요." 뒤이어 이야기했다. "그런 사소함이 우리를 살릴 거예요"라고. 명랑하게. 마치 명랑함이 어떤 것, 어떤 것에도 저항이 될 수 있다는 톤으로. 웃으면서. 이 문단의 첫 문장을 증명해주는 순간은 다름이 아닌 이렇게 웃음이 늘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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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까지 가져간 커피와 커피노트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해보는 삶을 살고 있다. 주말에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새로운 커피 맛집인 카페를 찾아내 시집을 읽는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시집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한다.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살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행위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좋아하는 사람과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그 둘이 겹쳐지는 시간은?' 이런 생각을 정리하며 내게 깃들어 있는 버릇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방청소를 미룬다면, 일기를 쓰고 있지 않다면 '왜 미루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또는 어떤 노래를 듣고 있을까? 이런 순간에 나는 가장 먼 타자가 된 것만 같다. 그렇게 삶의 찾은 사소한 문제는 종종 심각한 문제이다. 방청소를 계속 미룬다면 귀찮은 것이 아니라 일상의 균형이 깨진 것일 수도, 일기를 쓰고 있지 않다면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록할 만한 순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들을 별개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울도 그러하고 행복도 그러하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중요한 것이 된다.


8월의 끝에 서있을 때에는 많이 두려웠다. 영화 벌새의 유명한 대사를 내가 하게 될까 봐.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여러 사회문제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 두려웠다. 얼마 전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분들과 고성 통일전망대에 다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곳에서 북한을 본 순간도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아니다. 돌아오며 고속도로에서 한강 너머의 서울을 바라볼 때였다. 한 참가자 분이 나직이 "두만강에서 중국을 보면 딱 이 정도 거리고 이런 느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유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모르겠지만 한 달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보람이 한순간에 다가왔던 순간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이곳에 있게 한다. 있던 곳보다는 늘 있어야 할 곳에. 행복하고 또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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