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가 아니지만
부곡
폐업한 온천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물은 끊기고
불은 꺼지고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말한고 눈을 감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 p 31-32
시인의 1부 제목을 글을 여는 제목으로 가져와봅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지만의 뒤에는 어떤 문장이 올까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감정의 끝이 슬픔을 내재한다면 모든 상태의 끝은 고독입니다. 최근 시인들이 '우리'라는 단어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면 황인찬 시인은 이제 미래를 바라보며 '고독'에 대해 적어 내려갑니다. 우리는 미래의 조금 이전으로 그러나 현재도 아닌 시점으로 가봅니다. "폐업한 온천에/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와 같은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요.
아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도 피로감을 여실히 느낄 때일 것입니다. 더욱이 어렸을 때 들어갔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라면요.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소연 시인 다른 시에도 썼듯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 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불귀 2)"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면 저는 문득 학교 옆 사람들이 다 떠나고 아무도 없는 재개발 단지의 골목에서 이상한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는 합니다. 특히나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물은 끊기고/불은 꺼지고 "와 같은 상태에서요.
낯선 사람을 쫓는 개의 짖는 소리가 오히려 반기는 소리처럼 들리는 곳입니다. 아직 누군가 떠나지 않았을 것 같기도, 떠나간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그 시간의 사이로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마치 센과 치히로에서 봤던 것처럼 이 골목의 끝에는, 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그러나 같은 세상이 열릴 것 같기도 하고요.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라고 말하며 시인은 "너"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면서 기이한 시점을 만들어냅니다. 청자인 자신이 듣고 서술하는 세상이기도 하면서도 화자를 "너"라고 지칭하며 독자를 참여시킴과 동시에 시인은 너와 나의 사이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세계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됩니다.
눈을 감고 바라본 세상도 그때의 온천과 유사합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으며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린 상태입니다.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을 통해서 그들이 오래전에 떠났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의 여백을 한껏 늘리지 않고"아이들이 있었던 세상"이라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은 그렇게 위력적인 단어의 사용과 구체적인 상황이 아닌, 오묘한 시간의 궤적 속 모호하지 않으면서도 어렴풋한 느낌을 주는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시간'이 오롯이 버텨야 하는 성질의 것이 될 때 세상은 지옥에 가장 가까워질 것입니다.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고요와 고독을 즐기면서도 어느 순간 이 정적 속의 자신이 두려워집니다. 이때 사람은 영원을 잠시 엿보고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두려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 견딘다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생각하면/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라는 이중적인 감정도 들게 됩니다. 이제 세상은 밝고 행복하고 긍정적인 것이 아닌 자신이 고독 속에서 버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사람들이 많았다" 시인은 눈을 뜹니다. 더 이상 눈 앞에는 "폐업한 온천"도 아이들이 모두 떠나가버린 공원도 없습니다. 다만 막막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있고 또 있습니다. 오히려 고독이 그리워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 속이지만 이 시의 1부 제목처럼 이것은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며 현재입니다.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저는 이 마지막이 시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함부로 감정을 발설해내지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이어가며"너무 많았다"라고 시를 맺습니다. 그렇게 양보한 감정의 풍경은 독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혼란', '막막함', '괴리감'을 떠올릴 수도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느껴봤던 사람이라면 '외로움', '고독'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하나 혹은 한 차원의 감정의 폭을 그려내려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이 모든 감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미지와 풍경으로 그려내는 시의 잠재력이자 위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