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되풀이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by 변민욱


1. 시인의 말


나는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있고,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증오와 의심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많은 것을 만났고 그것들을 좋아했으며, 그러한 일들이 모여 이 시집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에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이 시집을 묶으며 자주 한 생각이었다.

2019 가을



책을 읽으며 기대가 되지만 좋아하지 못할 문장이 있고 좋아할 수 있지만 기대가 되지 않는 문장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좋아하면서도 기대가 되는 문장들을 만난다. 독자로서 가장 큰 행복이자 행운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들에게 조심스럽게 기대며 기다렸다고 말을 건넨다. 이런 문장은 되도록 쉬이 만나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하루 만에 배송이 되는 세상이지만 되려 불편해지려 노력한다. 그렇게 조금 힘들게 기다렸던 문장을 만나면 더 반갑고 더 마음을 주게 된다. 기다렸던 작가를 만나는 나만의 조금 이상한 방법이다. 그렇게 다시 황인찬 시인을 만났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그는 시에서 그렇게 위력적이거나 강렬한 단어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읽다 보면 깨끗한 강물의 표면을 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게나 긴장도 크게 없이 비워낸 시. 그러나 어느새 시집을 닫을 때쯤이면 한 없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시를 기다렸던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구절 중 하나는 바로 시인의 말이었다.


"나는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고,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런 시인의 솔직한 고백에는 제 아무리 내공이 쌓여 있는 독자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쌓여 있을수록 겸허해진다. 특히나 이런 고백을 황인찬 시인이 하고 있다니. 의외성은 오랜 여운을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전과는 발전하면서도 조금은 달라진 시의 결 속에서 어렴풋이 이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고백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이 시집은 증오와 의심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 그에게 증오와 의심은 생각과 말의 방식이었을 수는 있으나 써 내려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만났고, 그것들을 좋아했으며, 그러한 일들이 모여 이 시집을 만들 수 있었다." 시인도 변하겠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 역시 변한다. 내가 어릴 적 세상은 행복하게 살거나 꿈을 이루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지금의 세상과는 온도차가 있다. 지금 세상은 절박하게 살아남아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반목하는 와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우리로서 살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게 아직 '많은 것'이기 때문에 세상은 버티는 중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 기록하려 애쓴다.


누군가에게는 글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진일 수도 있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기록의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소중하고도 절박하게 붙들어 내일을 또 마주한다. 시인에게는 그 기록의 방식이 시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것에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는 감사의 인사에 뭉클해지면서도 독자로서 더 깊은 감사를 보낸다.


글을 쓰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렇게나 소중한 가치를 함부로 하는 느낌이어서 반감이 들었다. 그러나 곱씹으며 읽다 보면 수긍하게 된다. 정말 사랑은 아무에게나 줘버려도 된다. 몸이 불편하여 횡단보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할아버지에게나, 지하철 역의 추위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나, 이 순간에도 열심히 도서관에서도 책장을 넘기며 더 큰 세상을 마주하려는 학생들에게나. 정말 아무에게나 줘도 된다. 그래야 우리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을 위한 되풀이'다.



오랜만에 글을 적어 봅니다. 인사 대신 좋은 소식을 전해봅니다. 좋은 프로그램에 합격하여서 올해에는 동기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저를 뽑아준 회사가 출판 쪽과 관련된 곳이라니. 문학이란 내용은 자소서에 일절 담지도 않았는데 신기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들도 적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22.jpg 요즘 사진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글 쓸 때 배경에 대한 부담이 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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