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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Dec 06. 2020

[Li:Fe] 나의 에고(Ego)와 잘 인사하기  

내 작은 서랍 속의 에고 

1. 신화가 된 에고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마침내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개척자이자 수상록으로 유명한 계몽주의자 몽테뉴는 천장 들보에 위 문장을 새겨놨다고 한다. 종교 분열로 인한 극한 대립으로 프랑스 전체가  비극에 휘말렸던 시기에 그의 들보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이 뜨고 졌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위 문장을 보고 흠칫하게 되는가? 이는 아직까지도 위 문장의 유효함에서 오는 파동이다. '롤모델'이라는 단어를 나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롤모델'조차 없는 사회는 나에 국한하지 않는 비극이다. 올해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금욕주의자로 태어나서 쾌락주의자로 죽는다'는 문장에서 빠진 주어는 국가이지만 이 문장은 비단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뜨고 지는 별들을 보며,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오른다. 정상(頂上)에 이르러 굴려온 돌이 다시 떨어지는. 신화는 그를 인간 중 가장 뛰어나고 현명하고 신중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 에고(Ego)를 다스리지 못해 영원한 처벌을 상징하는 존재로 기록된다. 에고란 무엇인가? 프로이트 혹은 정신분석학에서 기인한 에고가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포괄적인 합리적인 효용을 훌쩍 뛰어넘어 그 누구(무엇) 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에고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자신감이나 재능의 범주를 초월하는 우월감이나 확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고자 한다. 나의 에고는 무엇인가?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까? 



2. 독이 든 성배, 에고(Ego) 



겉으로 보이는 조건들은 늘 사람을 현혹시킨다. 권위를 가진다는 것과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같지 않다. 어떤 것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과 올바른 존재라는 것 역시 동일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감동적인 존재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실험 설계 과정]

3일 동안 에고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에고는 한계 상황에서 드러날 거라 생각해 에고의 폭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카페인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카페인은 내게 하나의 의식이다. 나는 출근하고 천천히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그날의 나의 톤과 감정을 출근의 상태로 조율한다. 그러나 실험이 이어지며 카페인은 에고를 잘 감싸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에고를 지탱하고 있었을까? 그 순간 커피를 마시면서 쓰고 있던 다음날 계획이 보였다. 실험의 난이도를 확 높이기로 했다. '계획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업무를 하고 또 살아갈까?' 



[실험 과정]

나의 에고가 계획에 의지하기보다는 의존해왔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험을 끝낸 지금도 우두커니 멍하니 문만을 바라본 짧지 않은 순간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쉬는 날을 빼고 거의 매일 세웠던 계획 없이 살아야 했다. '뭐부터 해야 하지?' 결정도 내리지 못했는데 업무는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획이 없으니 모든 업무가 갑작스럽고 새로웠다. 다급해진 에고는 빠르게 폭발을 했다. 계획이라는 틀조차 없어지니 에고는 더 빠르게 나를 잠식해나갔다. 에고는 철저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을 더 오래 집중해서 진행했다. 그 사이에 들어오는 다른 모든 것들은 방해에 불과했다. 이와 더불어 기준이 사라지니 모든 업무에 Yes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업무를 다 하고 나서야 이번 주에 진행할 중요한 발표자료를 만드는 나를 발견했다. 


에고의 만행(?)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친구와 공유하기 위한 화요일 회고를 통해 밝혀졌다. 위처럼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부분 역시 존재했다. Yes를 외쳤던 지난 3일간 내 업무의 다양성이 증가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일상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깨달았다. 나의 에고는 계획을 매번 움켜쥐며 '나는 이것을 원한다/원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____이다. 나는 이때 이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이 실험의 결과 중 하나도 계획은 효율적인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획이라는, 효율이라는 어른스러움 속에서 에고는 줄곧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실험 후 느낀 점]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분업은 필수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자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조직은 뛰어난 개인보다 뛰어난 팀원을 바란다. 지금 링크에서 진행하는 일도 개인이 가능한 일은 없다. 목표와 비전이 거대할수록, 바라는 임팩트가 클수록 좋은 팀원이 될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이 실험을 통해서 에고 중심의 업무 진행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역시 돌아보셨으면 좋겠다. 특히나 '계획 중독' 이시라면. 내가 혹시 지금까지 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홀로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계획에 여백을 만들기로 했다. 그 여백에 누구와 함께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또한 내가 계획에 의지하고 있는지, 혹은 의존하고 있는지 역시 자주 돌아보기로 하였다. 




3. 에고-에고 나누기 


 [Ego Mapping]

'우리'가 생각한 에(라이)고(집스러운 것!)

책을 읽은 후 에고에 대한 생각과 실험 결과를 나눴다. 첫 과정은 에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나, 우리, 범인, 위인에게 에고란?'을 주제로 맵핑을 진행했다. 공유해 준 생각 하나하나 공감이 갔다. 특히나 에고는 방치해 둘 경우 분명히 "나중에 후회할 지점"이 될 것이다. 또한 나는 에고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대해 보이는 국가, 위대해 보이는 기업, 단체, 조직 역시 모두 사람이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고가 집합적으로는 어떤 형태로 발현할지 역시 몹시 궁금해졌다. 



[기대 & 아쉬움]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비슷한 사람을 떠올렸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 혹은 '성공의 길에서 작은 실패를 마주한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사람과 시점에 대해 공유를 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의 아쉬운 점이 떠올랐다. 이 책은 다양한 인물의 사례가 모여있다. 그렇기에 깊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달리는 사람이 멈추는 경우는 거울을 마주하거나 혹은 깊은 구덩이를 봤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거울이라기에는 너무 좁고 일부만을 비추는 거울이다. 또한 구덩이의 깊이 역시 너무 얕았다. 



[나누기]
'서로의 폭발지점은 무엇인가?'가 이 책을 열었던 질문이라면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는 이 책을 닫으면서 떠올렸던 질문이다. 또한 공유한다면 '언제' 알아차리고 공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팀과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직은 다양한 형태로 직원들의 어려운 점을 듣고자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매우 만족'이다. 우리는 조직과 팀 내에서 정말 '매우 만족'하며 일하고 살아갈까? 우리의 '에고 나누기'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앞으로 더 깊게 레퍼런스를 찾아가며 논의해보기로 매듭을 지었다. 




4. 글을 마치며 


저자는 말한다. "에고는 또한 시간을 들여 스스로 성장시키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랜 배움 속에서 모호함이나 역설과 씨름한 후에야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곳에 가닿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깨달음, 지속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겸손만이 우리를 거기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에고는 그런 인내를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약점으로 보고 패배자의 태도라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이미 우리 안에는 이미 충분한 재능과 능력이 있다고 속삭이며 자기만의 상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에고는 사람을 성장과 성숙시키는 게 아닌 괴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신이 파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신은 그에게 유망한 인재라고 말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 역시 '소년등과 일불행(少年登科 一不幸)'이라는 말을 하였다. 겸손과 도덕적 경험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에고가 빚어내는 성공은 너무나 쉽게 부서지며 추락이 예정되어 있는 비극이다. 맹자(孟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다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이고 깊이를 더한다면 앞선 문장이 될 것이다. 


결론을 맺자. 에고가 지식을 쌓아줄 수는 있더라도 지혜를 쌓아줄 수는 없다. 일에서 필요한 건 지식 일지 모르겠으나 삶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지혜였다는 점을 우리는 뒤늦게 그리고 뼈 아프게 배운다. 책을 읽으면서 에고와 나 자신이 스스로 이별(離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고와 해야 하는 인사는 굳은 마음으로 이 길이 아니고선 안 되리라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낸 더해진 작별(作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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