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싱어게인 2>의 한 무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무명가수 43호로 나왔던 김현성 씨와 심사위원 분들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에서도 밝히지만 김현성 씨는 성대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노래 더불어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서 가수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에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싱어게인을 통해서 '비운의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으시다고 말씀해주셨다. 인지도 혹은 다음 활동을 위해서가 아닌 실패한 가수로 기억되지 않고 싶어 나오셨다는 점이 인상이 깊었고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심사위원 분들은 손을 모으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모은 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음에서부터 조금씩 음이 불안정하더니, 노래 특유의 고음 파트에서 는 성대결절이 완전히 낫지 않았음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무너진 성대 새로 무뎌지지 않았던 마음이 노래로 나오고 있었다.
영상은 짧았지만 감동은 길게 이어졌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기회를 붙잡는다는 것은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최선은 개별적이지만 최선을 다해본 모두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노래가 끝나자 심사위원 중 한 분이셨던 가수 규현 씨 역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모두가 심사를 쉽사리 이어가지 못했다. 평가를 할 수 있는 무대였을까. 김현성 씨는 정말 혼신을 다한 무대였고 노래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최근의 기회가 주어졌던 여러 심사의 자리에 겹쳐 나는 다시 생각해봤다. 잘한 심사란 무엇일까. 화려한 미사여구나 깊은 철학적 견해가 필요할까. 그보다는 오히려 이에 우선하여 공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참가자들에게 좋은 멘토 혹은 동행자가 되어드리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심사란 결국 합격과 불합격과 상관없이 이를 준비한 사람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가닿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심사위원이라는 단어보다는 '멘토'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혹은 남용하는 멘토라는 말의 출처는 『오디세이아』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설 때 그는 어렸던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을 그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에게 부탁한다. 그의 ‘멘토링’으로 인해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귀향했을 때 그의 아들은 장성할 수 있었다.
이후에 점차 멘토르라는 고유명사는 ‘아버지 같은 스승(father-like teacher)’을 뜻하기도 했고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친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도 이 이야기는 종종 인용되었다. 멘토르처럼 도움을 주는 역할을 ‘멘토(mentor)’라고 부리고 도움을 받는 자를 ‘멘티(mentee)라 부른다.
그러나 오디세이아 역시 여느 고대 그리스 책처럼 단편적 인용은 많이 되지만 완독을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책이라 놓치는 부분이 있다. 군대 진중문고로 마침 이 책이 있어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사실 멘토르는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텔레마코스의 위대한 항해를 떠나도록 이야기를 한 것도 멘토르의 모습이었던 여신 아테나였다.
신화 속에서 이러한 변신의 형태는 상징적이다. 텔레마코스의 시선에서 보자면 아테나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만약 아테나가 타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아테나 본인의 모습보다도 어쩌면 멘토르의 모습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멘토를 움직였던 것은 결국 아버지와 멘토르가 함께 했던 시간, 자신과 멘트로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쌓아갔던 신뢰의 힘이다. 지혜의 여신이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난 장면을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지식의 형태와 그의 지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신뢰이며 나를 잘 아는 사람이고, 내 편인 그런 사람만이 나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모험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의 모습을 한 아테나는 꼭 해야 할 말의 대부분은 네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이 함께 가겠다고 결정을 돕는다. 멘토르, 즉 멘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이러한 말은 얼마나 가볍고 책임 없이 들릴까.
다시 싱어게인으로 돌아온다. 김현성 씨의 무대가 끝나고 심사평도 종료될 즈음에 작사가 김이나 씨는 그동안의 힘들고 슬픔 마음은 우리(심사위원)에게 모두 주고 이후에 다시 무대에서 뵙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말을 통해서 나는 서로에게 쌓인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전 글에서 시간의 농도를 압축적으로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의 ‘노력’만이 아닌 결국 함께 하는 시간에서의 태도와 내면의 마음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소셜 섹터에서는 유난히 이 '멘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멘토'가 절실한 영역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금까지 무수한 멘토 분들을 만나고 멘토링을 받았었다. 또한 이제 다시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또다시 멘토링을 하게 될 것이며 지금도 진행 중인 멘토링이 있다. 신뢰는 무게와 결부된 단어이다. 그러나 나의 무게를 쌓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의 무게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를 돌아보며, 최근 읽은 강혜빈 시인의 팔레트 속의 시인의 말을 빌려 다짐과 함께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