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JTBC 전체관람가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보고
스완의 심장은 질투로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의 눈을 파내고 싶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쯤은 뒤돌아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자······. 나를 죽인 여자입니다."
미장센의 거장 이명세 감독의 단편영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다. 영화 속 대사는 많지 않다. 단편영화를 통해서 이명세 감독은 '영화는 출생부터 영화(映畫)였으며 그것이 숙명(宿命)이자 구원임'을 철저히 증명한다. 그는 인물의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미장센의 대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장면 연출과 시각적 효과에 최선을 기한다.
주제는 '데이트 폭력'이다. 하지만 그는 주제를 소재로 바꾼다. 이내 데이트 폭력도 우리네 사랑 속 한 장면이 아니냐라고 묻는다. 영화 속 대답은 없다. 다만 그 질문은 나에게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남겼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한순간에 빠진다. 떨어지는 캐리어를 필사적으로 잡아내는 남자를 보고, 남자는 그 여자를 보고 충동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우연인가 운명인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일까 운명을 가장한 우연일까. 그렇게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캐리어 안을 보고는 남자가 도망친다.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이명세 감독은 이 생각을 만드는 내내 했다고 한다.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는 캐리어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겨져있을까. 나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캐리어 속 거울을 본 남자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 적나라한 자기 모습과 마주한다. 평소 상상하는 도덕적 자아가 파괴된 나의 모습이다. 첫눈에 반한 듯한 이번 사랑도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충동에 의해서 나는 너를 욕망할 뿐이다. 사랑은 타자를 아는 것에 대한 치명적인 유혹일 뿐이다.
서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서로의 모습은 세이렌이다. 서로를 치명적으로 부르며 죽음으로 이끈다. 다만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와 그가 다른 것은 오디세우스는 승리했지만 그는 패배했다는 점이며, 영화 속에는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그 사랑의 구현도 끝나지만 현실에는 비극적인 종언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다.
커튼 속으로 도망치며 화면이 전환된다. "커튼을 걷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커튼을 걷어내야 내막이 보이고 진정한 모습이 보인다. 그대 커튼을 걷어라. 여자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부르며 놀이동산으로 향한다. 남자는 여전히 도망치고 여자는 그를 쫓는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회전목마 장면에서 집약된다.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 속에서 회전목마는 영원히 추억만큼이나 아름답게 돌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추억의 공간 속 회전목마의 불이 깜빡깜빡거리며 그만 점멸되고 만다. 빛 속에서 그 둘은 아름답게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불이 꺼지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듯 달려든다. 남자가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다. 오이디푸스가 보여주었듯 오히려 운명의 실현은 그러한 도망침 속에서 구현된다. 이 장면 속 빛은 사랑을 뜻하고 그림자는 내면의 그릇된 욕망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빛 속에 있는 모습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일까?
이명세 감독은 이미 영화 '개그맨'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한낱 꿈속의 꿈인가 꿈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 이번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듯 하다. 조금 바꿔적는다 "우리가 보는 사랑이라는 것이 현실 속의 사랑인가 사랑 속의 현실처럼 보이는 것인가"
역설적으로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서는 빛을 없애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도덕과 같은 빛에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은 빛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로 인해서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을 실제처럼 지각하며 내재된 욕망과 충동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인간은 빛으로 가득 찬 사랑 속에서 서서히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을 먹고 있음을, 자신도 서서히 그 그림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망각한다.
사람의 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냉엄한 질서 속에서 사랑(愛)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겨우 헤집고 들어가자면 병의 범주에 속할 듯하다. 증명은 간단하다. 사랑은 그 어떤 병보다 후유증이 길지 않은가. 이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부질없이 공(空)한 인생을 사랑이라는 색(色)은 칠해나갈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한다. 욕망은 욕망 앞에서만 평등해지며 더 큰 욕망에게만 길을 비켜준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여자의 캐리어만 덩그러니 남은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빛나는 햇살처럼,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아니면 기도처럼 왔던가,
말해다오
R.M 릴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