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제가

'영원한 가객(歌客)' 故김광석의 '불행아'를 듣고

by 변민욱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한 편이 있다. 응답하라 제작진이 만든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이 글은 그 드라마보다는 그곳에 스치듯 흘러나온 하나의 노래에 관한 글이다. 바로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의 '불행아'다.


https://www.youtube.com/watch?v=e92Q6rdS3Ao


드라마 속 장발장 이주형(강승윤)은 아버지처럼 따랐던 장기수(김민철/최무성 분)에게 그의 인생 주제가(主題歌)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인생에서 자신을 자신있게 행운아라 부를 수 있을까. 그만의 인생 주제가가 아니었고, 감빵 속 그들의 인생 주제가였으며, 우리네 인생 주제가이지 않을까.


나는 이 노래를 이 드라마로부터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부터 처음 들었었다. 퇴근하시며 약간의 음주를 그날 하루와 함께 곁들이신 아버지의 주(酒)제가였다. 어렸던 나는 이게 무슨 노래이고 의미가 내표되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말이 있듯 그때는 또 몰랐다. 내가 이런 곳에서 당직을 서다 당신이 부르시던 노래를 부여잡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될 것을, 그리고 그날의 감정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줄은.


저 하늘에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처 없이 높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 삼아가며
눈앞에 떠오는 옛 추억 아~ 그리워라
소나기 퍼붓는 거리를 나 홀로 외로이 걸으며
그리운 부모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깊고 맑고 파란 무언가를
찾아 떠돌이 품팔이 마냥
친구 하나 찾아와 주지 않는
이곳에 별을 보며 울먹이네
이 거리 저고리 헤매다 잠자리는 어느 곳일까
지팡이 짚고 절룩거려도 어디엔 듯 이끌리리까
그리운 부모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김광석의 '불행아'


이 노래에서 그는 '그리운 부모형제 다정한 옛 친구'를 볼 수 없는 처지에 처해있다. 이들이 너무 아스라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멀찍이서나마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뿐 만은 아닌 듯하다. 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는 듯하다. 굳이 이별과 사별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내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부모와 형제들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친구들은 그때 꾸웠던 꿈보다 무서운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들도 나도 너무 변해버렸다. 옛 기억과 그 감정은 남아있지만 지금 다시 그들을 만나도 과거 기억의 유사품일 뿐, 아니 현재의 또 다른 순정품일 뿐이다. 자신이 그렸던 그때 그 사람과 그 느낌은 아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문제라 그저 가슴만 태울 수 밖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구운몽'에서 최인훈은 "추억이 없는 인간은 얼어 죽는다"라고 했다. 그래도 또 그런 추억을 회상하며, 이런 노래에 위로를 받으며 그 덕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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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는 별을 보고 그만 울먹인다. 우리가 별을 볼 때는 지상에서 더 이상 위로를 받지 못할 때다. 그렇게 우리는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 '쓸쓸함'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천상의 별에게 위로를 받는다. 별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머나먼 곳에서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했다. 지상의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를 때부터 울고 웃으며, 위로받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았다.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성선 시인의 '사랑하는 별 하나'


이 가객 또한 별을 보며 그런 다짐을 했었나 보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누군가 반드시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라 말했었다. 그의 생애를 보면 형식은 행복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슬픔에 가까웠을 테지만 그는 비애를 벗 삼아 희망을 노래하며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정말 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읽는 노래는 들으면 그냥 '눈물'이 먼저 난다. 그의 노래가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그 감정의 진정성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 그의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글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담고 있다. 마치 고전(古典) 한편을 '한 줄 요약'한 것을 읽은 느낌이다. 고전은 세대를, 시대를 아우르는 교훈을 주면서도 또 각자 마음속에는 다르게 적힌다. 그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한 고전과 닮아있으며, 우리네 삶 속에서 고전이 되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는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그 어린 나이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넣고 써보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이제는 사랑에 달관한 줄 알았던 어른이 어제보다 좀 더 커진 듯한 방에서 떠나간 사랑을 그리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등병의 편지'도 입대할 때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라는 마지막 구절은 입대할 때 들어도 막막함 속 뭉클함을 주지만, 전역할 때도, 그 이후 새 출발을 하는 그 누구에게나 어울릴 듯하다.


'서른 즈음에'는 스물 즈음에, 마흔 즈음에 듣더라도 명곡이다. 특히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중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과 겹치며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아홉 수를 맞으며 이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 들으면 '바쁘게 달려오느라 내가 놓친 건 없었나'를 떠올르게 한다. 나로서는 이맘때쯤 들으며 나이가 들 수록 그리워할 것들과 이별하는 게 점점 많구나 깨닫게 하는 노래다.


이 '불행아' 역시 당신의 주제가가 될 수 있도록 가객은 끝으로 네 번이나 반복하며 각기 다른 목소리로 노래한다. '묻혀갈 나의 인생아'라고. 그렇게 나와 당신의 인생도 언젠간 흙 속으로 묻혀갈 것이다. 이게 벗어날 수 없는 순리이기 때문에 노래를 듣고 나서 이 부분을 흥얼거리며 약간의 자조 섞인 미소 짓기도 하고, 허무해 울기도 하는 것이다.


짐짓 허무해지려 할 때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이야기가 당신을 달래줄 것이다. 인생은 사실 즐거운 소풍이라고, 날이 저물면 하늘로 돌아가야 되는 거라고. 즐겁게 보내면 그뿐이다. 사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우리의 삶 속의 가치도 변할 테지만 인생은 소풍이라는 것이 유일하게 명확한 진리이며, 탄생하며 하늘과 맺은 잊지 말아야 할 맹약(盟約)이자 다짐이라고 생각한다.


입대할 때는 '이등병의 편지'를 띄워주고 사회의 불의에 저항할 때는 '광야에서'를 외치며,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며 '서른 즈음에'를 부르다 사랑에 아파할 때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을 알려주다 절망 속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노래했던 그의 22주기가 다음 달이다. 우연하게 듣게 된 노래로 글을 쓰다 떠올리게된 그를 조금 일찍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