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와 글

스물두 번째 글을 쓰며

by 변민욱
이제 두 개의 머리가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배는 평형을 되찾았다. 하지만 배에 걸리는 부담은 아주 크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한쪽에 로크의 머리를 들면 그쪽으로 기울어지지만, 반대쪽에 칸트의 머리를 들면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거솨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게 평형을 유지해도 당신은 심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드른 언제나 그런 식으로 배의 균형을 잡는다. 오 , 어리석은 자여! 그 머리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라. 그러면 똑바로 가볍게 물 위에 뜰 수 있을 것이다. (모 비딕 中)


내 글과 죽도는 언제나 무거웠다. 잠시 쉬고 있지만 재작년 나는 검도에 푹 빠져 있었다. 어릴 적 포기했던 기억을 다시 쓰고 싶었다. 대학에 와서는 무엇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자기개발서의 주언공처럼 '비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가 내 이야기이길 바랐다.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지만 자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생각은 그 절실함만큼의 가치를 행위에 부여해 무게를 더하곤 한다. 검도에서 유효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기검체 일치(氣劍體一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검은 늘 무거워 몸을 뒤따라랐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오히려 나는 잘하지 못했다.


나에게 힘을 빼라는 조언만큼 힘이 드는 조언은 없었다. 같은 조언을 나는 올해에도 듣는다. 글에서도 나는 힘을 덜어내지 못한다. 이 또한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단어를 탐냈고 좋은 문장을 탐했다. 더 잘해보려는 데서 나온 순수한 욕심이었다. 순수했던 나는 사전이라는 언어의 정원에서 초면인 단어에게 서로 잘 모르지만 나 좀 도와달라 부탁했다. 그러곤 덥석 손을 잡고 내 글로 이끌었다. 서로가 처음인 단어들이 모여 문장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렇게 쓰인 글은 내가 봐도 낯설었다.


탐은 힘을 불러들인다. 그러나그 힘은 틀어진 힘이다. 검도에서도 힘이 들어가면 자세가 흐트러졌다. 내 글은 힘을 스스로도 당해내지 못해 자주 산만해졌다. 정돈된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선 펜을 쥘 악력도 필요했지만 그 글을 쥘만한 필력도 필요하다. 전자의 힘은 넘쳤어도 후자의 힘은 늘 부족했다. 책도 글도 압도하지 못하며 썼다. 완급(緩急) 조절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급하게 전력을 다해 글을 몰아세웠다. 그러곤 늘 후반부에서 글은 스스로 힘을 잃었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글을 짊어지고 몰아세웠던 글의 반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가벼워지려면 버려야 한다. 주체하지 못하는 최선은 억제보단 방향을 조금 틀면 된다. 참신함은 현학적 단어와 수사(rhetoric)보다는 깊은 감상에서 나오곤 했다. 깊은 글은 감싸는 문장이 투박하더라도 투박한 것 나름의 울림을 준다. 반면 빈약한 글을 미사여구로 여미어봐도 과포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더 깊이 쓰려는 노력은 더 깊이 읽으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이후에 쓸 때는 주제와 글을 장악해야 한다. 책과 글 무게에 끌려다니지 않고 너무 무겁다면 가볍게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독자는 작가 탓을 할 수 있다. 어려운 책이라면 작가에게 기댈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누구의 탓으로도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다. 홀로 백색 공포로 나를 압도하려는 종이와 겨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낼 때 글 한 편이 탄생한다.


최근 글에서 나는 소통과 공감을 적었다. 저번 글 '모비 딕에서 몰락의 윤리 읽어내기'를 올리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다른 주제를 적어보니 오히려 더 잘 보였다. 정작 내 글에서도 소통과 공감은 적었다. 고민을 이제야 시작한다. 저번 글도 다 담을 수 없으니 내가 담을 수 있는 내용만 썼다. 앞으로는 욕심을 조금씩 버리고 힘을 빼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다. 그래야 또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듯하다. 쓰다 보니 반성문처럼 써버렸다. 하지만 그보단 쓸 글을 맞이하는 내 지원동기 및 포부다.


여기까지가 내 글이 겪은 나에 기인한 문제점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창 밖을 보니 사회도 똑같이 최선의 최면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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