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을 굽다가 돌아본 한 해
달력을 나는 봅니다. 어느새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매년 나는 놀라곤 합니다. 종이 한 장이 사람을 이토록 애상에 젖게 할 수 있다니. 역시 현대 문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시간인가 봅니다.
당신은 내게 붕어빵 한 개를 줍니다. 그러면서 올 한 해가 모두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니 나는 이내 실망합니다. 실망하지 말라며 이야기를 당신은 시작합니다. "어떤 나라에선 왕국이 몰락했어. 촛불과 노래가 왕을 폐위시키고 혁명을 이루어냈어." 그날 광장으로 돌아간 듯 당신은 미소를 짓습니다. 왕은 심판을 받으면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라고 분개했다고 합니다. 왕국을 세운 그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건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같은 역설인지 나는 묻습니다. 정치에 대해 네가 뭘 아냐고 시덥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당신은 웃습니다. 그게 냉소인지 조소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안도와 희망에 찬 웃음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흐드러진 벚꽃은 왕국을 묻으며 흩날렸다고 합니다. 당신은 말을 이어나갑니다. "눈물은 몇 년 동안 멈추지 못해 배는 수면 위로 솟아올랐어. 세월은 부식되더라도 기억은 선연(鮮然)해질 거야." 맞습니다. 아물지 않은 기억은 그 기억만 남고 오히려 다른 기억들이 마모돼 갈 겁니다. 잊히지도 않을 테지만 망각해서도 안될 겁니다. 반복돼야 할 역사는 무엇인지 우둔한 나는 잘 모르겠지만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는 되풀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가 반복되면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나는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은 "네가 역사에 대해서 뭘 아느냐"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 나라에선 이젠 동(東)과 서(西)가 대립하다 청년과 노인이 싸운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인간은 모두 늙기 때문에 그들도 언젠가 늙을 겁니다. 오랜만에 맞는 말 한다며 당신은 소리 없이 웃습니다. 그런 당신의 웃음은 공허하면서도 다의적입니다. 나와 당신의 운명을 담은 웃음으리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벚꽃을 더위가 떨궈냅니다. "한 청년이 새장에 갇히자. 죽음의 백조가 나래를 펼쳐 보였어."당신은 말합니다. 파랑새는 어디 갔는지 나는 묻습니다. 별안간 바보 같은 질문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당신은 짓습니다. "파랑새는 원래 평화시장에 흰 비둘기였어. 그걸 네가 줘패면 파랑새가 되는 거야."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파랑새는 여기 동화에만 있나 봅니다. "죽음의 백조는 오늘도 피를 연소하며 죽음을 낳으러 공중에서 발레를 출거야" 당신은 말을 보탭니다. 죽음의 백조가 하늘을 나는 동안 땅에선 벌레를 죽이는 약이 파동을 일으켜 수많은 달걀이 묻혔다고 합니다. 벌레는 잡는 약이라니. 그런 것도 약이냐며 붕어빵의 모순을 하나 더 찾아서 놀랍니다. 그 약의 장래희망은 사람을 잡는 약일 거라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도 해가지지 않는 마을에 사는 닭이 낳은 증오와 분노를 나는 먹습니다.
그 사이 나무도 더위를 먹었는지 볼이 발그레집니다. 그 밑에선 소년과 소녀가 싸우며 커갑니다. 애들끼리 원래 장난도 치는 거라며 나는 당신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에 당신은 "그게 그냥 장난이면, 네 인생도 운명의 장난이야"라 대답합니다. 그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임을 나는 깨닫습니다.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나는 그 둘 다 믿지 못합니다. 인간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겁니다.
"새장에서 사람이 뛰어내려 왔어. 폭죽 때문에 살 수가 없었나 봐. 모이를 모아서 폭죽을 쏘거든. 오다 총을 맞았는데 의사가 살려냈어." 그는 의술의 사실에 입각해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그에게 혹자는 비판을 했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서로에게 말은 닿아도 그들이 입각한 사실은 서로에게 닿지 못합니다.
창 밖을 보니 눈이 옵니다. 세상을 눈이 덮고 있을 때 떠나겠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아쉽다가고 퍽 당신다운 선택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뒤에선 TV에서 어떤 나라의 왕이 또 다른 나라의 수도를 평화의 도시라 인정합니다. 평화의 도시에선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중엔 휠체어를 탄 사람도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그 말을 철회하라고 분노합니다. 그 반대쪽에선 그들에게 사람들이 총을 쏘아 댑니다. 평화의 도시 위로 죽음의 백조 사촌들도 날아다니며 죽음을 낳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집니다. 아이도 있고 아버지도 있습니다. 휠체어에 탄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죄목으로 죽습니다. 신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사원 옆에 우후죽순처럼 사원이 돋아납니다. 그들의 분오와 증오, 마지막 외침과 그걸 보고 들은 눈과 귀가 사원이 됩니다. 무사 귀가를 바라던 어머니는 영원히 그 사원의 장례를 치르는 신자가 될 겁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전문가들이 나와 어려운 말들을 뱉어냅니다. 역사적 요인, 지정학적 요인, 종교적 요인 별로 말을 쏟아냅니다. '그들도 이 이유들을 모두 알고 죽었을까.' 나는 고개를 젓습니다. 추상적인 언어가 유령처럼 떠돌며 사람의 생명을 꺼트릴 입김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랍니다. 한 사람의 말이 이토록 많은 생명의 불꽃을 처참히 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누군가에게 실어증은 병이 아니라 축복일 거라 나는 생각합니다. 며칠 후엔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릴 겁니다. 산타는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이 죽였습니다. 그걸 있다 없다 매년 옥신각신 하다니 그가 억울해할 듯합니다.
채널이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들으며 열광합니다. 한쪽에선 노래가 그 반대편 세계에서는 총알이 가슴을 관통합니다. 지구는 역시 평평합니다. 한쪽에선 환호와 함성, 다른 한쪽에선 분노와 증오가 양쪽 귀에 스테레오로 들려옵니다. 어지러움을 느낀 나는 TV를 끕니다. 인간의 생명도 이렇게 전원 버튼 한 번 누르면 꺼질까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지만 당신은 떠났습니다. 떠난 자리를 보고 나는 묻습니다. 눈이 오면 세상 모든 더러움과 상처를 덮어버릴 수 있는지.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답을 알 듯합니다.
붕어빵을 보니 붕어가 없습니다. 사회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회가 낳은 물고기가 붕어빵이구나'라는데 생각이 닿습니다. 달력을 다시 봅니다. '내일은 나의 생일이구나' 올해 남은 날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곧 무의미한 생각을 했음을 깨닫습니다. 시간이 낳은 과거, 현재, 미래는 붕어빵인 우애 좋은 쌍둥이입니다. 내일이란 어제가 다른 이름으로 대리 출석한 것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심코 새해는 또 밝아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