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다른 [북리뷰]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고,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 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p.205, 불자동차 中)
며칠 전 우연히 본 크리스마스 씰 디자인에 내 관심이 쏠렸다. 주제는 '우리의 영웅 소방관'이었다. 최근 '몸짱 소방관 달력'이 제작되어 판매된 것과 같이 놓고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일련의 사회현상들은 소방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이 증대됐음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지난 21일 소방청이 개청 후 119일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7일 서울 용산 소방서를 찾아 일선에 있는 소방관들의 여러 고충을 듣고 이들을 격려했다. 방문의 슬로건은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였다. 이후 여야 간 협의를 거친 끝에 7월 25일 정부조직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국민안전처 산하에 있던 중앙소방본부가 소방청으로 발돋움했다. 이로써 1975년 내무부 소속 소방국으로 조직이 시작됐던 이래 42년 만에 염원했던 독립 조직을 갖게 되었다. 또한 현재 지방직-국가직으로 이원화된 조직도 국가직으로의 일원화를 논의 중에 있다. 이는 일선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더불어 인력과 장비면에서 지자체 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26일 전남 여수 세계박람회장에서 열렸던 '제2차 시도지사 간담회' 이후 지속적으로 시·도지사들과 이를 논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방 공무원 중 4만 5천 명에 달하는 지방 소방공무원들이 국가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정부에서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소방청은 119간 여전히 재난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했고 잔불 확인이 끝난 후 가장 나중에 떠났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기억나는 대형사고만 하더라도 지난 8월 20일에 있었던 창원 STX 조선해양 폭발사고, 9월 21일에는 소방관 3명 포함 21명이 다친 경기 광주 포장공장 화재가 있었다. 11월 들어서도 창원 터널 앞 화물차 폭발사고가 발생했었다.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은 인력(人力)으론 불가능한 영역이었을지도 모른다. 뉴스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화재(火災)이겠으나 그들이 현장에서 진압하는 것은 화재보다는 화마(火魔)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강릉 석란정에서 발생했던 화재를 진압하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에 매몰돼 두 소방관이 순직했다. 한 분은 정년 퇴임을 앞둔 최고참 소방경, 또 한 분은 임용된 지 8개월 된 새내기 소방교였다고 한다.
화재 진압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상 후 발생하는 스트레스 장애도 문제다. 10명 중 1명이 이를 앓고 있고 39.7%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소방관들의 평균수명은 58.8세라고 한다. 국민 평균 연령이 80세를 넘어서는 시점에서 이 같은 통계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일반인들이 헤아리지 못할 고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를 해결코자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3일 소방청으로는 처음 맞이한 ‘제55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소방관들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복합치유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소방병원 신설도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119는 긴급번호 중에서 11X번 대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보루다. 그 번호 대에서는 그 뒤에 누구도 버티고 있지 않다. 무거운 책임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번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그 번호에 절박한 신뢰를 갖고 있으며 매일매일 도심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그들을 보며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함을 체감(體感)한다.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가냘픈 외침까지 들을 수 있게 하시고, 화재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압하게 하소서" 소방관의 기도다. 그들은 신에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요청한 뒤에는 자신(自身)을 기도 속에서 지운다. 다만 위험에 처한 가냘픈 목소리를 들어 생명을 구할 수 있길, 화재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압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을 보며 "전쟁사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토록 많은 빚을 이토록 적은 사람에게 진 적이 없다."(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has so much been owned by so many to so few)라고 말했다. 그가 느낀 감정을 화재 현장에서 우리가 소방관에게 느끼는 감정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섣부른 영웅화까지 가서는 안 되겠으나 증대되는 대중과 정부의 관심 속에서 이젠 세월이 지나도 감가상각(減價償却) 되지 않는 빚을 갚아할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매 정부마다 노후장비 개선과 함께 처우개선과 인력 확충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예산이라는 경제적 장벽에 부딪혀 무산됐다. 포퓰리즘성 공약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당연히 반대해야겠으나, 장갑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장갑을 자비로 사서 쓰고 화재진압과 구급구조 임무를 맡은 현장인력도 실정법에 정한 기준에 비해 1만 9천여 명이나 부족한 실정인 그들을 그 반대의 대상에 올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부에 미약한 납세자겠지만 그만큼의 발언권이라도 내게 주어진다면 내 세금의 일부는 그들을 위해서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리라.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말 그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성과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이 역설(逆說)이 부디 이른 시일 내에 끝나길 바란다.
어린아이들이 질주하는 소방차에 열광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 어린아이들처럼, 우리 사회가 소방대원들의 사명이 고귀함을 인식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 (p.214, 불자동차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