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특공대와 런드리고의 사례를 중심으로
블리츠 스케일링을 읽으며, 떠올랐던 것은 (AI! AI! AI!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퍼스트 무버는 항상 유리할까?'와 더불어 '블리츠 스케일링이라는 전략이 높은 유동성의 시대에, 인프라가 잘 구축된 환경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했을 때도 앞선 두 가지에 대해서 엄청난 논의가 이어졌고 마침 다음으로 생각을 이어가 볼 수 있는 책이 조금은 결이 다른 '스타트업 웨이브'였다. '블리츠 스케일링'에 비해서 조금 다르게 스타트업의 성장과 성공 그리고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평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강한 사람이 비틀거렸는지, 어떤 게 부족했고 뭘 더 잘했어야 하는지 말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모든 영광은 전장 안에서 먼지와 땀과 피를 뒤집어쓰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사람, 노력에는 실패가 뒤따르기 마련임을 아는 사람,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는 끝까지 노력해 결국 크나큰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설령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과감히 도전하다 실패한 것이므로,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냉정하고 소심한 영혼들은 끝내 그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스타트업 하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혁신' 혹은 '창조'와 같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스페이스 X의 우주선이 정말 우주를 '왕복'해버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런 단어가 떠오릅니다. 오랜 기간 투자를 해오신 투자심사역 분들도 자신이 특화된 영역/좋아하는 영역이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차츰 이런 특화영역/취향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어떤 분야를 볼 때면 비슷한 스타트업이 많고 유사한 서비스가 이름을 달리하여 계속 나타난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의 첫 장 '창조하라'에서처럼 새로운 창조보다는 '와해(Disruption)'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장이겠죠. (제가 게을러서 그럴 수도!)
우선은 우연하게 위에 나온 단어인 '와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살펴보고 가보겠습니다. 와해의 현대적 개념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전략 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연구에서 나옵니다.
‘와해’는 일종의 프로세스이다. 이 프로세스를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을 지닌 소형 기업이 기성 기업이 형성한 기존 시장에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 (중략) 그 들은 더욱 적합한 기능을 저렴하게 제공한다.
물론 클레이튼은 책에서 테크 기업을 예시로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강 기업을 예시로 들며, 저가 시장을 공략하다가 야금야금 파이를 차지하며 큰 기업을 넘어서는 사례를 소개하죠. 창조자는 이에 대비되는 새로운 산업을 열어가는 기업입니다.
책에서는 케냐에서 모바일 금융서비스의 지평을 열었던 엠페사(M PESA)가 나옵니다. 기존에 버스기사를 통해 송금을 하던 서비스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고 늘어난 송금 안정성과 더불어 경제 활동 전반에 신뢰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송금 규모는 GDP 40%에 달하며 2만 가구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창조자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임팩트까지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창조자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창조자는 근간의 되는 일 3가지를 동시에 한다고 합니다. 창조자의 특성을 국내의 대표적인 세탁 관련 서비스업 '세탁특공대'와 '런드리고'를 통해서 알아봅시다. 우선 개괄적으로 세탁스타트업을 비교해보고 가시죱!
첫 번째, 그들은 공식 경제의 심각한 골칫거리를 해결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비공식적이거나 인가와 공인을 받지 못한 대안을 합법적이고 공식적으로 만든다.
세탁특공대(2015년 설립), 런드리고(2018년 설립)는 모두 공식 경제의 심각한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세탁서비스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심각한 골칫거리였나구요? 대부분의 서비스가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가설을 세울 때 고려되고 이용자 층을 통해 증명됩니다.
두 서비스모두 절반 이상이 1인 가구(싱글)가 사용하는 서비스입니다. 1인 가구의 특성상 물론 빨래→건조→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빨래를 하더다로 건조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건조대가 침대 위로, 책상 위로 올라가기도 하죠. 그렇다고 건조기를 사기에는 공간도 그렇지만 이사주기 때문에도 모호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세탁소에서 ‘세탁~’하면서 돌아다녔던 곳들도, 요즘은 코인세탁소 등으로 대체되며 많이 사라졌고 그러한 서비스도 매일이 아니었죠. 그렇게 두 서비스는 주기/지역 등이 분산되어 있던 서비스의 균질함을 높였습니다.
두 번째, 창조자는 대중을 위한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시한다.
두 서비스 모두, 비대면으로 세탁물을 수거해주고 가장 귀찮은 개는 과정까지 해결해줍니다. 또한 과거에는 세탁소에서 만약 돌아다니면서 수거를 해야 했다면, 거래절차와 더불어 그 사이에 의사소통과 대기하는 노력과 시간까지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대면으로 수거하고 배달하는 방식은 불필요한 시간/노력 소비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COVID-19를 기준으로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 운영)가 워시스왓(세탁특공대)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주컴퍼니의 경우 COVID-19 이후에 퍼스트 무버였던 워시스왓을 빠르게 따라잡았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투자 규모도 있겠지만 한 번 더 들어가 보면, 이러한 투자 규모의 상대적 차이는 '재구매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구매율은 '서비스업'을 볼 때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특히나 세탁과 같은 실생활과 밀접한 서비스는 겉으로보면,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한 명 한 명의 소비자의 취향이 모이고 그것이 모여 '편의성'과 '차이'를 빚어냈다는 것의 방증이며, 이런데서 발생한 격차는 오히려 따라잡기 힘듭니다. 그래서 MAU, 이와 연관된 거래금액의 증가세 등도 보지만 소비자가 늘어도 유의미하게 재구매율이 유지/증가되는지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자는 게임의 판도를 바꿀 혁신에 몰두한다.
요즘 ‘혁신’이라고 하면 당연히 AI의 알고리즘을 통한 최적화~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견이지만 이러한 B2C 서비스의 혁신은 디테일을 통해 소비자에게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입은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리텐션은 CS와 서비스의 디테일에서 갈립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런드리고의 수거함인 런드렛이 짐작컨데 런드리고가 세탁특공대를 빠르게 따라잡았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리서치를 해보니, 해당 부분에서 만족감이 표출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런 후기-바이럴마케팅이 위의 감동과 더불어 B2C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 서비스의 경우, 그것이 '굳이 써야 하는 서비스인가?'라는 인식을 소비자가 공유하고 있다면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카드뉴스, 유튜브 광고보다도 하나의 후기가 더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꼭! 좋은 후기가 있다면 홈페이지나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소비자 여정을 설정하고 반대로 안 좋은 피드백이 있더라도 공개하고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액션을 통해서 피드백 루프가 작동함을 보여주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퍼스트 무버에게는 벤치마킹 할 마일스톤도, 로드맵도 없습니다. 또한 정말 선지자는 고객들의 인식까지도 바꿔야 하는 길고 고된 길을 필연적으로 걸어야 합니다. 퍼스트 무버는 항상 유리하지 않습니다. 퍼스트 무버가 시장을 와해(세분화)한 경우라면 유리하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조한 경우라면 불리하다는 내용이 책에 나옵니다.
과연 그럴까요? 잠시 세탁 시장에서 빠져나와보자. 토스의 유난한 도전을 읽어보면, ‘수수료 없이 송금을 해준다’는 것이 그 당시 얼마나 내부 개발/법적 규제/소비자의 인식면에서 어려운 도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토스를 쓰다 보니, 카카오 뱅크 등 유사한 서비스는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실물 통장도 없는 은행이, 공인 인증서도 없이 그것도 무료로 송금을 해준다는 것은 그 당시 쉽사리 믿기 힘든 서비스였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블리츠 스케일업에서 ‘퍼스트 무버의 이점’에 대해서 논의를 했지만 이는 조금 냉정하게 마한면 ‘(살아남은)퍼스트 무버’의 이점입니다. 퍼스트 무버는 어찌보면, 공포영화에서 가장 먼저 동굴 혹은 폐가로 들어가는 인물이거나 전쟁 영화에서 참호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인물이다. 비유가 너무 박한가? 간단하게 성공확률 x기대수익을 생각해본다면, 퍼스트 무버는 가끔 최고의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종종 최적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락장에서 중간중간 횡보를 할 때 지금이니!! 를 외치며 뛰어드는 퍼스트 무버를 떠올려봅시다)
그래서, 퍼스트 무버는 안 좋은 것인가? 결코 아닙니다. 생존확률이 낮아서 그렇지 산업을, 생태계를 창조해내는 위대한 기업이 되는 여정을 걸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기업은 뒤를 따르는 이들이 딛고 설 어깨를 내주는 거인입니다. 그래서 블리츠 스케일링의 관점을 조금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정말 시장의 창조자라면 경쟁을 떨쳐내기 위한 스케일링 업보다는 초기 단계에는 생태계를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파이를 크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전체의 관점에서 적절한/적합한 경쟁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기업과 경쟁을 하며, 서비스 품질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에게 인식을 바꾸는 것은 단일 서비스, 기업이 이뤄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개 혹은 복수의 업체가 제품/서비스의 수명 주기의 초기 단계인 인식 전환에 같이 뛰어드는 것이 공동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두 서비스 모두 초기에는 경쟁보다도, ‘세탁을 굳이 그렇게 어플리케이션을 써가면서 해야 돼?’ 혹은 ‘구독까지 해야 돼?’라는 인식이 가장 큰 허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투자를 유치할 때도 동일합니다. 저 역시 인스타 광고에 떴던 런드리고를 보고 나서야 세탁 특공대라는 서비스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 이런 게 있었네?’하고 찾아보기도 하고 후기를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소비자 구매의사 결정과정이 보여주듯 문제(=서비스의 존재)가 인식이 정보탐색의 선행요건입니다.
그래서 창업에 적합한 사람 역시 따로 있지만 퍼스트 무버에 적합한 사람 / 이후에 시장을 와해(disruption)할 때 적합한 창업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성공한 창업가 혹은 CEO 분들이 말할 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그 표현이 나는 창업 아이템에도 해당하지만 위 제품/서비스 주기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숙기에 있는 사업도 해보고, 제품 개발의 단계에서부터 시작해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인에게 맞는 창업 아이템과 타이밍의 조합을 찾아내야 하죠. 스티브 잡스는 어쩌면 제품 개발에서 성장기에 최적화되었던 인물이고 팀쿡은 성숙기에 기업의 이윤을 최적화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최대화하며, 자사주 매입 등으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최적화하는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한 번 전환해보면 다음처럼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창조자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실리콘 밸리보다는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아직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숙하지 않은 곳에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템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요) 물론, 언어와 문화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과포화된 서비스 사이에서 경쟁하고 더 와해와 분화를 통해서 치킨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가서 직접 부딪히고 배우며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를 빼앗겼거나 시장규모가 너무 작은 서비스를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장 자체의 선지자가 되는 것이죠.
차츰 시장별로 lagging time은 앞으로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기술과 인프라의 발전속도 중산층의 성장 속도와 같은 지표로 역설계를 해본다면 또 다른 기회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노리고 있을 수도!)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업이 실리콘밸리 이외의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확장하거나,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창업가가 성공하여 IPO하는 사례도 점차 나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