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투자에서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앞선 문장이 많은 투자자의 공감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매수 단계에서는 손익이 확정되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시점은 보인다. 다만, 매도의 영역은 상승과 하락 모두 시점을 잡기 쉽지 않으며 특히나 손익이 나에게 확정되기 때문에 객관적이나 데이터 기반으로 바라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나 역시 그렇지만 주위에, 생각보다 손실은 견디지만 수익을 견디지 못하는(?)분들도 있다.
올 상반기, 전통적인 Marco지표만 중시 여기는 투자자 분들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패턴들이 엇나갔기 때문이다. 증시의 큰 흐름은 데이터와 흐름을 따를 수 있더라도, 매번 거시 경제상황, 참여자들의 심리, 자금 상황, 산업의 발전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결국 오늘 다루려 하는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무질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서일 뿐"이며, 시장을 부인하는 투자자는 가장 먼저 도태될 것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계(complex system) 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이 투자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수요-공급, 혹은 멀티플(Mutiple)이라고 부르는 정가치(Fair Value)로만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의 마이너스 유가, 지난해 천연가스 가격 등 통계적으로 5 시그마의 범주에 가까운 현상들과 상반기 해외에서 빅테크 기업의 생성형(Generative) AI와 국내 2차 전지의 상승은 투자에서 세상의 다양한 영역과 참여자들을 통합된 전체의 한 부분이며, 커다란 지식체계의 일부분으로 능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천연가스의 수요(경제학),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과 보급률에 따른 대체제 간의 경쟁(종의 기원-생물학),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이라는 세계 질서(사회과학), 선물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베팅하는 참여자들의 심리(심리학)까지 짧게 생각해 봐도 투자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산더미이다.
내가 종사하는 액샐러레이터와 VC에서 특히 나타나지만, 투자만 공부한 사람이 투자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위와 같이 재무적 관점에서 FV의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FV도 솔직히 우리 하우스의 FV 아닌가?)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 멍거는 1990년대 행한 연설에서, 결정을 내리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격자틀 인식 모형을 소개했다. 이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정리하여, 현신세계에서 마주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자틀 인식 모형을 진행하는 순서는 가급적 다양한 학문의 이론적 모형을 이해한다 -> 각 분야의 이론적 모형을 격자 형태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분야의 이론적 모형을 참고하거나 응용한다의 과정을 거치는데, 본 책을 이를 진행하기 위한 첫째 순서에 포함되는 다양한 학문의 주요 이론적 모형들을 제시해주는 책이었다. 이에 가장 인상 깊었던 3가지 학문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
물리학은 균형의 학문이 아닐까?(필자는 문과이다. 반박 시 여러분의 말이 옳습니다) 또라이 보존의 질량 보존의 법칙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의 근간 중 하나인 우주의 정보의 총량은 일정하다까지. 힘이라는 변화와 세상 간의 균형을 찾는 듯한 학문이다.
그렇다면, 위의 균형의 관점에서 투자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균형 혹은 어떤 법칙을 찾기보다는 바로 뉴턴,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의 정신을 이어 세상을 기꺼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주식 시장은 매년 예측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정보에 비해 여전히 정보가 비대칭적이며, 참여자의 성격도 모두 상이하다. 최근 AI 트레이딩 등으로 점점 시장이 효율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지만 이와 동시에 더욱 다양한 참여자가 들어오며, 효율적 시장보다는 비효율적 시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의 끓는점은 100도 씨이지만, 물을 끓이지 않는 사람도, 압력이 1 기압이 아닌 곳에서 끓이는 사람도, 지구가 아닌 것 같은 시장 환경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초과 수익을 노릴 수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분야이다. 생물학에서의 격자 모형의 기반이 되는 이론의 틀은 다윈 이론이다. 앞선 이론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자연선택설'로, 생존 투쟁이 종들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 내의 개체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는 이론이다.
이를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이론과 이어서 생각해 보면 산업 분석 시에 무척 재미있다. 슘페터가 평생 걸쳐 연구한 작업의 핵심주제는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지는 진화 과정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Moat를 구축하는 기업을 분석했을 때 -> 주식시장에 적용해보면-주도산업 혹은 기업이 될 것이며, 스타트업에서는 유니콘이 될 것이다.
투자 생태계도 그렇지만, 산업계는 '시장 선택설'이 적용된다. 아무리 뛰어난 종도 자연을 이기지 못하듯, 기업 역시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반도체에서 삼성이 경쟁자를 제치며 이룩해 온 역사와 토스와 뱅크샐러드 모두 유사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였으나 현재 수익률 등을 살펴보면 무척 상이하다.
나는 항상 기업은 최선의 전략을 짰다고 생각하며, 투자를 하는 이유 역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ROI를 더 높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산을 투자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다만 그 기업의 전략이 해당 시장(=환경)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 철학 영역에서 투자를 루빅큐브 맞추기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매우 동의한다. 근데 모든 면을 맞춰야 한다. 특히나 단기간 트레이딩 목적일수록 정말 모든 면이 맞아야 수익을 얻을 수 있다. LG화학의 경우, 재무제표를 보면 2차 전지를 거의 20년 가까이 투자했다. (LG화학은 2005년에만 2차 전지 사업에서 20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석유화학 기업이 배터리를 만들고자 할 때 많은 분석가들은 의아해했다. 결과론 적인 이야기겠으나, 석유화학 기업의 '진화'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생물학은 기후위기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진다. 기후 위기로 인해서 현대의 생물 역시 적응을 위해 진화를 하거나 멸종을 할 것이다. 국가와 기업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SG 영역에서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독일의 해상풍력 기반의 재생에너지 구조와 해외 기업 유치, 석유화학 기업의 배터리 산업 진출, 옥시덴탈의 탄소포집 기술 개발 등 국가와 기업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강점을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가설로, 어떻게 진화해나갈지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로울 것 같다.
수학에서의 관점은 DCF 모델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할인'의 개념과 '평균 회귀'의 가정이었다. 전자보다는 후자에 관심이 많이 갔다. 그러나 (맞아보면서 느낀 점은) 평균 회귀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1) 평균으로의 회귀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과 2) 평균이 변한다는 것이다.
상반기 모두가 기다리던 침체는 오지 않았다. 잠시 TMI로 장단기 금리 역전 + forward PER 기준으로 높은 시장의 멀티플로 조정이 이어질 것 같았다. 금리 인상 역시 이어져 거시환경 역시 좋지 않았다. 상반기~한 주 전까지 가져갔던 가설은 깔때기 모형에 따른 아마존의 클라우드+바드 시연에 실패해서 울고 있는 구글을 LONG으로, 이를 Hedge하기 위한 수단으로 QID를 들고갔다. 만약 경기 침체에만 베팅을 하여 SQQQ등에 베팅을 크게 가져갔으면 회생 불가했을 것 같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나스닥의 평균 PER인 20배 정도를 수렴하는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등락이 심하다. 머무르는 기간은 더욱 의미가 없으며, 코로나 이후 수렴까지는 30배를 찍고 돌아오기까지 거의 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니 시장 평균을 활용하는 것은 좋으나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Hedge 수단도 들고 있는가? 가 중요하다. 그리고 상반기 인사이트 중 하나는 결국 옳은 것은 시장이기 때문에, Hedge 수단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평균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경기 상황에 따라서 기업의 EPS 전망이 상이해지기 때문에 당연히 PER도 변할 것이며, Nasdaq100과 S&P500에 속하는 종목과 산업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이에 따라 Industry PER도 상이해지기 때문에 (단순 소프트웨어 회사 -> AI로의 추가 매출이 가능한 회사 / 물류회사 -> 클라우드 회사) 평균회귀의 역설 중 하나는 평균조차 변한다는 점이다.
책을 닫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정답은 없다'이며, FV란 원피스 찾기 위한 항해와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투자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한 기업의 가치를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관점이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여러 참여자들이 위대한 항로(=차트)에서 해군(=시장)과 치열하게 싸우며 FV를 찾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이와 더불어, 투자는 감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이는 직관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에서 직관이 올바른 때가 있는데,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예측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규칙적인 환경’이어야 하고, 또 하나는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이런 규칙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시장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규칙하다.
또한, 우리의 심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시장에 영향이 큰 요인들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FOMC를 생중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지 안다면 놀랄 것 같은데, CPI, PPI도 예상치를 상회하면 -> 경기 침체가 없이 소프트랜딩이 가능하다. 경기가 강하다(긍정) vs Fed가 금리를 더 올릴 것이며, 성장주에 악영향을 준다(부정) 등으로 충분히 관점에 따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지름길을 찾지 말고, 자신의 시행착오와 학습을 반복해나가며 View를 쌓아야 한다. 책에서 나오지만 전문가들의 예측 확률은 침팬지의 다트 던지기보다 나을 게 없었다고 한다. 나의 가설과 철학으로 패배하면 손실을 입더라도 학습이 남지만, 남의 가설과 철학을 믿고 투자하면 사람도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을 통해서 생각들 간의 유사점을 알아보고 이해한 다음, 통합된 가설을 만들어내야 하며 모든 투자자가 결국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