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며

2017 올해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96년 '경쟁 세대'가 읽고

by 변민욱

이 책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social epidemology) 자입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책 속에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김승섭 교수는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전합니다. '해고는 살인'이며 '세월호로 인한 상처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고용불안은 그 자체만으로 건강을 악화시킨다'등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언론사와 지식인들은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한 이 책을 2017 올해의 책으로 꼽았습니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마 당연한 일이 당연히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과 통계가 대부분인 글이었지만 그 어떤 문학보다 아픈 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수 많은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는 이 책의 사례들은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의 사례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지표와 기사 제목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ㅇㅇㅇ층 OECD 중 자살률 1위' 'ㅇㅇㅇ OECD 행복지수 꼴찌권' 오늘날 한국을 사는 나와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저기 공란에 어떤 세대를 넣어도 그럴 듯 함을요. 심지어 대부분 팩트임을 요.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기사를 보며 불편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루한 듯 넘어가거나 냉소와 자조가 섞인 웃음을 한 번 뱉어내곤 지나갑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도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도 못하는 그 상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p.22)



그러나 '녹차라떼' 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건강할 수 없듯, 이런 살인적인 사회에 사는 우리가 건강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 징후를 나는 책에 나오지 않은 사례에서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도 TV를 틀면 어디선가 하고 있을 오디션 프로그램들입니다. 작년 TV 프로그램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연 성공적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소년과 소녀에게 열광했고 그들에게 투표했습니다. 성공 비결로 시청자들을 참여시킨 마케팅을 꼽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결국 피는 못 속인 겁니다. 96년생 나는 경쟁이 후천적 형질로 내 몸을 구성하는 DNA가 되어버린 인간입니다. 초등학교만 경쟁이 없이 입학했습니다. 중학교부터는 입학시험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중에 1등 한 친구가 신입생 선서를 했습니다. '고입선발고사'를 쳤고 또 1등이 선서를 했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내신성적을 받기 위해 친구들과 분투했습니다. 이후 그렇게 얻은 내신성적과 수능, 면접과 논술까지 거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인생이란 대학에서 경쟁을 전공필수로 노력과 최선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듣고 있던 셈입니다. 대학을 오니 마침 성적 산출 방식도 상대평가로 변경됩니다. 심지어 경쟁은 국방에 의무에서도 존재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TV에 나오는 나의 자화상을 보며 열광하고 있던 겁니다.



김승섭 교수는 스웨덴 노동자와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비교하며 왜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살인일 수밖에 없는지 써내려 갑니다. 그들과 비교해 경쟁에 몰린 우리 사회의 노동자에겐 패자부활전이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조차 없었습니다. 이후 노동자들이 사지에 몰릴 때까지 '경제적 효율성'이란 미명 하에 우리는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지금도 경쟁이 낳은 괴물인 '효율성'이 유령처럼 사회에 돌아다닙니다. 작년에 노무사를 공부하며 봤던 '급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바로 그 대표적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모호한 단어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천연덕스럽게 사회를 돌아다닙니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순수하면서도 무력한 주장은 무용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경쟁의 룰과 경기장은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2018년 문재인 대통령님은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신년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선 우리가 현재 지닌 아픔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는 사회는 패자부활전이 허용되는 사회여야 합니다. 최소한 패자부활전을 꿈꿀 수 있는 사회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우리 사회는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도 비를 함께 맞겠습니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 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