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그들이어야 했습니까
저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대학교 새내기 첫 학기를 꽤나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강의실에 있기보단 견문 쌓는다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매일 수업도 '째'가면서 벚꽃을 보러 다니고 안주 삼아 술을 먹으며 낭만적(?)으로 살았고 이게 바로 새내기의 특권이라 말하고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또 하루가 끝난 기념으로 마셨습니다. 그 외에도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벚꽃이 지는 게 아쉬워서 등 마셔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없었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한 학생인 터라 매일 이슬(?)만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 술은 표면적으론 이슬이었지만 실상 입시 지옥으로부터 벗어났다는·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좌절감,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인 곳은 아니었다는 괴리감 등을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섞어 마신 칵테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는 아침까지 과방에서 마시다 기숙사로 가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버리고 가려는데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님을 다가왔습니다. '그냥 버리고 갈까' 아니면 '나중에 버릴까' 고민하던 제 자아는 놀랍게도 '도와드리자'라는 기특한 묘안을 제시했습니다. 짧은 시간 도와준 제게 아주머님은 제게 "학생 밥은 잘 먹고 다녀?"라고 물으셨습니다. "네"라고 대답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돌아서니 감사하면서도 방탕하게 산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 등이 복잡하게 밀려왔습니다.
제가 도와드린 건 그날뿐이지만 그분들은 언제나 그곳을 청소하고 계셨을 겁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아침일찍과 같은 시간대에 청소를 하셨을 겁니다. 그날로 저는 대학시절 또 한 번의 사춘기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노무사를 공부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저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죄송합니다. 저는 노무사 공부를 끈기 있게 하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학을 하고 나선 다시 뵙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다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라도 답답함을 조금 토로해봅니다. 최근의 신문을 보셨다면 많이 불안해하고 계실 듯합니다. 신문을 보니 연세대, 고려대 홍익대 등이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정년 퇴임한 청소 노동자 인력을 파트타임 인력이나 무인기계로 대체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기사를 읽은 저는 리스트 중에 제가 다니는 대학이 없어서, 지금 있던 분들을 해고하는 건 아니어서(홍익대는 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4명을 해고함)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까. 이 바람이 청소하시던 아주머님과 언젠가 나에게까지 닥쳐오리라는 건 기우(杞憂)입니까?
솔직히 기우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 사태를 유발한 최저임금인상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제 생각은 너무 급격한 증가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반대의견이 주장하는 각각의 합리성을 따지며 그 사이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합니다. 경제에 대해선 제 의견을 뒷받침할 논거를 찾아내지도 못할 만큼 무지한 탓입니다. 그래서 그쪽으론 적지 않겠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양 쪽 다 그들의 옳음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논의의 형태만 건강하다면야 그러한 논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다만 묻고 싶은 건 감축의 대상이 '왜 그들이어야 합니까'입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또다시 그들이어야만 합니까' 나아가 그렇다면 내몰린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한국사회는 노동시장에서 유독 약자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이제 이런 사회의 아픈 면을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이 자행합니다. 대학교 청소근로자 문제가 보통 아파트 경비원 감원문제나 자영업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제시됩니다. 언뜻 보면 결은 같은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조심스럽게 이는 다르게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대학생이라면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인은 같다고 하더라도 '대학'과 '아파트 업체'와 '자영업자'가 각각 이 문제를 만나 굴절되어 맺히는 상의 속성에서 찾아야 하는 의미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문제를 함부로 '최저임금의 역설'에 국한해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왠지 모르게 '내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이라고 소망했던 한 청년이 떠오릅니다. 그때보단 덜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많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그들은 규탄대회를 여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을 보고 그가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뿌듯함보다는 죄송함과 부끄러움으로 글을 마칩니다. 그리고 이글이 특정 대학 전체나 대학생 분들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난으로 인해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대학의 입장에 대한 개인적 사족입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결과 홍익대는 7429억 8339만 원으로 가장 많은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어 연세대는 5307억 2246만 원으로 3위, 고려대는 3568억 5509만 원으로 4위였습니다. (보유금 관련 출처: 경향일보 1월 2일 자 기사 '청소노동자들 자리 ‘알바’로 대체… 연세·고려·홍익대 비용절감 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