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잊은 테이레시아스여

「땅의 예찬」을 읽고,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에 앞서

by 변민욱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보아라
그것들이 가르쳐줄 것이다.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보아라
그것들이 알려줄 것이다
땅에게 물어보아라. 땅이 가르쳐줄 것이다.
바다의 고기들도 일러줄 것이다.
주님께서 손수 이렇게 하신 것을,
이것들 가운데서 그 무엇이 모르겠느냐?
「욥기」 12장 7-9절




땅의 예찬은 한병철 교수의 신작이다. 그는 이미 ‘피로 사회’를 통해 한국에 없음으로 더 정확하게 한국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한국 독자들에게 보여준 바가 있다. 그는 들어가는 말에 다음과 같이 적으며 이번 저작에서는 ‘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느 날 땅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동경을, 아니 날카로운 욕구를 느꼈다. 그래서 매일 정원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8쪽)’ 이러한 감정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그리움이다. 이 동경이 고질적인 만큼 기이한 점 중 하나는 땅의 감촉을 모르며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 또한 빠져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단순한 그리움과 동경이기보다는 향수가 아닐까. 인간은 본디 모두 땅을 딛고 태어나며 살아가고 결국 언젠가 그 속으로 돌아갈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땅과 소통하지 못한다. 대화 능력은 퇴화(退化)되다 못해 사라졌으며 말이 통하지 않자 인간은 땅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은 기적과 이야기를 잃고 보편성과 불신을 얻었다. 동시에 인간은 너무나도 근시안적인 동물로 변모했다. 자신의 정원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스마트폰과 모니터로 자신의 세계를 한정시켰다. 효율을 추구하면서도 늘 바쁨 속에 취해서 살았다. 취기에 빠져 우리는 매일 숫자 속에서 표류한다. 떠내려가면서도 +인지 –인지 항상 계산한다. 그렇다면 땅과의 소통 잃은 인간이 교환한 교활한 이 거래는 흑자인가 적자인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요, 「고향의 봄」 中


어릴 적 집에 텃밭이 있었음을 이 책은 나에게 상기시켜주었다. 나의 정원에서는 저자처럼 다양한 꽃을 키우진 않았지만 제법 다양한 꽃과 나무를 키웠다. 가끔 유년 시절의 나는 정원의 흙으로 장난을 치고 해가 기울어가도록 개미 떼에게 눈을 거두지 못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오히려 컴퓨터 게임을 하는 또래 애들이 부러웠지만, 돌이켜 보니 유년시절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음을 절절히 느낀다. 서울에 올라온 나는 종종 그 보드라운 흙의 감촉과 줄지어 가던 개미떼를 그리워한다. 가끔 나를 놀라게 했던 방아깨비는 덤이다. 그 모든 작은 코스모스의 행성들을 나는 그리워한다.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 아래 제대로 된 흙 한 줌 보기가 어려운 땅 위로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말이다.



땅은 인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너그럽고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다. 심지어는 한겨울에도 땅은 장엄하게 피어나는 생명을 내보내 준다. (60쪽)




책의 내용 중에서도 아네모네와 같은 겨울 꽃에 대한 구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자연은 착취당하면서도 인간에게 교훈을 주고 있었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항상 약동하는 생명력을 우리에게 증명하면서. 그러나 인간은 항상 눈 앞의 기적을 외면했다. 항상 하늘을 보면서 기적을 기원하기만 했다. 동시에 디지털 세계에서 수많은 현재를 보면서도 현실과 실재를 보진 못했다. 대중 속에서도 고독했으며 부유해졌으나 항상 빈곤했다. 그 과정에서 고유명사인 그 또는 그녀의 이름을 잃고 취준생, 백수, 직장인, 아기 엄마로 호칭이 보통 명사화되며 그 존엄성도 함께 잃어갔다. 그러니 이젠 기약 없는 그 동경을 마칠 시간이다. 정원으로,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눈이 멀어버린 테이레시아스여. 위에서 물었던 거래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흑자라고 이야기하지 못하지 않는가.




땅을 보호하라는 명령, 곧 땅을 아름답게 대하라는 명령이 땅에서 나온다. '보호하다(schonen)'라는 낱말은 어원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dem schonen)이라는 말과 친척이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호할 의무, 아니 명령을 내린다. 아름다운 것은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옳다.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 뛰어난 것이니 말이다. (10쪽)


그러한 측면에서 나무는 참 부러운 존재다. 힘들게 피워낸 잎사귀와 꽃을 다 떨구어 버리는 가을이 오더라도, 그 상실감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겪더라도 마치 약속된 땅으로 들어서 듯 항상 봄을 틔우기 때문이다. 나무는 이 계절의 순환이자 윤회(輪廻)의 수레를 깨달은 것일까. 우매한 사견이지만 나는 알고 있을 듯하다. 그러니 미련 없이 가진 것을 훌훌 털어내는 게 아닐까. 이러한 측면에서 알고서도 행하지 못하는 인간은 당신이 무심코 꺾었던 아름다운 그 꽃보다 조금도 더 지혜롭지 못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달았다면 이젠 땅에 대한 예찬을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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