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보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러나 한강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급급해하지 않는다. 그 무게를 이겨내고 나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질의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이 자격은 당연히 부여받는 것인지.
내가 이 사건을 설명해야 합니까?
······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김진수가 어떤 이유로 이 사진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왜 유서 곁에 이 사진이 놓여 있었는지 내가 이제 추측해야 합니까?
여기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있는 아이들에 대해 선생에게 말해야 합니까?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같은 책, 132쪽)
우리는 종종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한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으론 만족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스스로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질문에도 자격과 지켜야 할 윤리가 있지 않을까. 이는 상처를 해부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법의학자도 아니면서 수많은 시체와 상처를 해부해왔다. 또한 우리는 수많은 문학을 만나면서 무수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뱉어냈었다. 표면상 도덕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실상 이는 위선적인 책임회피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말을 뱉는 동시에 안도했다. 현대 시민으로서 자신의 도덕적 책무를 다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물음을 던져본 적은 없다. 우리는 질의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한강은 우리에게 '질의할 자격'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 이 '질의에 대한 질문'을 통해 서정의 부활에 윤리적 층위를 논한다. 한강은 소설을 쓰며 충분히 알고 있음을 자신하지 않았다. 더욱이 충분히 아파하고 있음에도 자신하지 않았다. 이 고독과 고통의 순례길을 걸어낸 그녀는 드디어 교양을 성취한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화려하고 허위에 가득 찬 현대인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문학의 교양은 오히려 허름하고 날 것에 가깝다.
성희 언니는 나와 달라.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 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
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나는 믿을 수 없었어.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과 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같은 책, 151쪽)
순례길을 힘겹게 걸으며 작가는는 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위 글에서 종교보다는 종교가 내포한 용서의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 용서는 그 논리 내부에 일부 타협의 논리가 담겨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과는 도저히 타협할 수가 없다. 타협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그녀는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서정을 다시 시작 할 수 있게 된다. 무신론에까지 이른 그녀는 비로소 처절하게 서정을 시작한다. 문장을 써내려가면서 그녀는 치열하고 치밀한 문장을 통해서 서사를 되살렸다. 이후 그 서사는 질의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물으며 윤리를 끌어들였고 마침내 그 윤리는 무신론에 이르러 회의(懷疑)의 끝을 맺는다.
그렇게 힘겹게 서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얻은 서정의 기회이건만 그녀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서정은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설 말미의 동호의 어머니의 이야기다. 또한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제되었던 문장은 가차 없이 그리고 미련 없이 무너진다. 지옥을 담담하게 그려냈던 그녀의 문장이 그동안 참아왔던 통곡을 시작한다. 사투리라는 현실성을 더하는 장치까지 사용해가며 비애(獻花)를 헌화하고 설움을 분향(焚香)한다.
어머니는 동호의 장례식에서 계속해서 토를 한다.
그때 내가 울지도 않고 뗏장 옆에 풀을 한 움큼 끊어서 삼켰다든지, 삼키고는 쪼그려 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 움큼 끊어다 씹었다든지. 근디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야. (같은 책, 181쪽)
왜 풀과 토인가. 자신의 아들 동호는 죽고 동호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그 자는 똑똑히 살아있는 현실이 울음이 터지기보다는 메스껍다. 메스꺼운 이 현실을 게워내고만 싶다. 그래서 그녀는 곧 이 무덤을 덮을 풀을 한 움큼 뜯어 삼킨다. 원망스럽다. 마지막 장에서 한강은 이렇게 어머니의 '비애'나 '아픔'과 같은 두 글자의 단어로는 도저히 형용이 불가능한 그 감정을 충분히 애도하며 써 내려간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니.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볼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같은 책, 192쪽)
나와 당신에게 비애와 억울함을 아느냐고 묻는 듯하다. 그 정권이 끌어내려지고,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트라우마는 지속된다. 동호의 빈자리에 양아들처럼.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숨겨둔 죄인을 면회하듯 아들의 사진을 보며 읊조린다. "동호야". 위와 같은 문장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은 독자는 몇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확실히 한강이란 작가는 서정을 능히 해낼 수 있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야만'이 아니기 위해서 머나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연대표 위 점 하나로 표시하는 방식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으며 반듯하게 자를 대어 그려내는 행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편의를 위한 요식행위이긴 하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굴곡진'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표현한다. 그러니 역사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삐뚤삐둘하더라도 손으로 차분히 그려내야 한다. 그리고 사건들을 선이 되어야 한다. 그 선의 시작점은 존재하나 종점은 없다.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발생하기보다는 동시적이자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정맥처럼 미세한 사건들의 선이 빚어낸 면위에 우리는 살아간다.
인간은 그 좁은 면 위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계속한다. 권력과 폭력이 이 싸움의 동맥이다. 아니. 인간의 동맥일런지도 모르겠다. 한강은 '2009년 1월 용산'을 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이 사회 시스템에서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이 물어왔다. "무엇이 체제의 도움이 되는 길인가". 권력과 폭력은 이를 통해 수많은 날조된 합리화를 집단적으로 정당화시켰다. 이 불행한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광주의 종언을 고할 날은 묘연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이 인간적이고 윤리적인가." 이 질문이 사회적 동의를 얻을 때 서정은 비로소 다시 부활할 수 있다.
(독자님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