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그쳤다. 그러니 함부로 울지는 말 것
요 며칠 사이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또 잠잠해졌다가 꼭 매번 내가 집을 나설 때면 억수 같이 쏟아 내리곤 했다. 불평했었고 불편했으며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 여느 날처럼 핸드폰 알람을 끄다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잠금 버튼을 쉽사리 누를 수 없는 숫자가 거기 적혀있었다. '오늘 수업의 전주곡은 모두 이 진혼곡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건할 것까지는 없었다. 이 생각도 금방 정리하고 평소 때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을 나왔다.
그런데 어젯밤까지만 해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세차게 내렸던 비가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는 점점 분명히 옅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학교까지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의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늦어서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양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위에서의 사고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아세안 지역의 경제에 관한 글을 썼다. 어제 한-아세안센터에 가서 들었던 강좌를 기반으로 해서 적었다. 강좌의 내용 중에서도 말레이시아의 경제에 관한 글을 썼다.
최근 말레이시아는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총리 나집(Najib Razak)의 부패 스캔들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부인의 사치와 더불어 그 또한 수천억 원대의 부패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상대는 나집 총리 이전에 집권당을 이끌었던 마하티르 모하메드 (Mahathir Mohamad)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집 총리가 이 마하티르의 정치적 후계자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다. 전례가 없다는 것은 언제나 큰 부담이다. 이에 더해 집권당도 야당에 대항해 총력을 다했다. 선거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는, 흔히 말하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다.
물론 나집 이전 집권당의 실세이자 총리였던 마하티르가 야당을 이끌어 승리하면서 정말 정권교체가 맞느냐라는 논란이 있지만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혁명의 성공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혁명이 이루어졌던 바로 그 순간에 혁명이 인간들에게 부여했던 울림들, 어루어짐, 떨림들에 있다.” 선거 결과와 관련된 기사를 내리 보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다. 항상 이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도 이들은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 순간엔 이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굳이 오늘 왜 말레이시아를 이야기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오늘 같은 날에 말이다.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에게는 후술 할 글이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다. 며칠 사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내일은 비가 안 내렸으면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요 며칠 사이 미리 울어놓은 듯했다. 아마 3일 전부터 비가 내렸었다.
3일 전부터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하늘도 눈물을 그쳤다. 뚝 그쳤다기보다는 오늘만큼은 자신 또한 함부로 세차게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듯했다. 때때로 우리는 살면서 배운다.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위해 기꺼이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함부로 울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더욱이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두 번째로 쓴 글에서 '말하는 것'에 관련한 글을 썼었다. 그때도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너무 쉽게 글을 쓰고 또한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슬프지만 나 또한 거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함부로 쓰지 않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아로새겨 기억하려고 한다.
어느 순간 쉬이 쓰이는 글을 쓰려할 때마다 이것들을 꺼내보며 끙끙 앓을 것이다. 써야 할 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읽고 써야 한다. 자부할 일은 아니다. 잘 쓰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버리지 못한다. 쉬이 잊어버린 것에 대한 글로 시작하지는 못했으나 나의 마지막 글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