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소설. 끝.
그래서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너의 그림을 보고 나서 한 영화감독이 떠올랐다. ‘지슬’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 일전에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를 만들어서 지난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원금이 끊겨 사정이 많이 어려워지셨다는. 그러자 시나리오 한 편만 완성하겠다고 다짐하고 너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에서 너는 침몰했던 배 하나를 그려낸다. 파미르 고원에서. 오히려 쉽게 안다고 자신하지 않고, 그려낼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그려내야 할 무엇이 있었다고 그 영화는 내게 말해왔다.
“학부생 수준을 넘어 거의 예술 작품에 가깝더군.” 교수님은 네 그림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네?”
“그 다랑쉬 오름을 그린 그림 말일세”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풍경화지만 초상화 같기도 하고······”
다시 한번 더 너의 작품을 본다. 하루 종일 나는 네 작품 곁에 머문다. 너는 오름을 그리는 데 성공했구나. 그 날 이후 50년이 지난 그 오름을. 그러나 내가 그렸던 너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그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너는 그림을 그리다 결국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내가 너를 붙잡기도 전에······ 너는 스스로 들어가듯 그림 속으로 걸어갔다. 그림을 보니 오름을 올라가고 있었다. 목탄을 지팡이 삼아서.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다.
너는 졸업작품을 그리고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교수님께 말했다. 그렇게 너는 그림만 남기고 정상이 오른 후 그곳에서 날아가버렸다. 이후 네가 직장을 계속해서 알아보다가 번번이 떨어지고 겨우 전공을 살려서 작은 광고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가 하늘 위로 날아가더라도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적을게. 안녕. 나는 너에게 보내지 못할 문자를 보냈다.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보니 아직도 장마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는 너를 녹일 때까지 내릴 듯했다. 나는 결심한다. 이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는 네 그림을 그저 보기만 하기로. 한 걸음 뒤에서 찬찬히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너의 그림이 말을 걸어오기까지. 그래서 네 그림에 딱지가 내려앉아 봄비가 내린 후 새싹이 돋아나듯. 새 살이 돋아나기를······ 막막하더라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너를 보며, 남쪽의 한 섬을 바라보며 함부로 눈물짓지 않으며. 기다리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그런데 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가 버린걸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소설의 앞 뒤에서 스케치를 도와준 시로는 윤동주 「팔복」을 인용했다. 슬플 수 있는 동안만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