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유채꽃 中

첫 번째 소설

by 변민욱


악몽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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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는 자신의 눈물밖에 모르므로, 당신의 악보를 노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누가 흘리고 간 비명일까요?”


제주도에 있는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나는 세 시간 째 책상에 앉아, 글을 써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랑쉬 오름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계속해서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너는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젯밤 꿈을 꾸었어요. 혹시 퍼즐을 맞추는 꿈을 꿔 본 적 있으세요?”

지하인지 통화가 잘 되지 않았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 사이사이로 그의 음성이 새어 나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퍼즐 맞추는 꿈이요? 글쎄 글을 쓰는 꿈이나 다른 꿈들은 꾼 적이 있지만 퍼즐을 맞추는 꿈을 꾸었던 적은 없네요.”

“퍼즐을 맞추는 꿈을 보통 편집증이나 집착으로 풀이를 하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내가 모르던 사실이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꿈에서조차 무언가를 맞추기 위해서 끙끙 앓는 모습이 썩 길몽일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 퍼즐을 맞추는 꿈을요. ······ 사실 제주도에선 매일 밤마다 꾸곤 해요.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을요. 보통 좋은 꿈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깨어나도 그 느낌을 가지고 일어나잖아요. 근데····· 이 악몽은 느낌도 장면들도 너무 생생해서 매번 같은 꿈을 꾸는데도 매번 꿈인 줄 내가 몰라요.”


너는 검고도 흰 비석이 나오는 자신의 악몽을 설명했다. 네가 꾸게 될 악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꿈에서 매번 퍼즐을 맞추려고 하는데 마지막 한 조각을 찾지 못해서 매번 완성을 하지 못해요. 정신없이 맞추느라 이게 무엇에 관한 퍼즐인지도 모르다가 그 한 조각 때문에 아쉬워하며 퍼즐을 바라봐요.


퍼즐을 멀리서 보면 비석이 서 있어요. 내가 맞추는 퍼즐 조각에는 이름들이, 나이가, 각각의 사연들이 적혀 있던 거예요.


나는 눈꺼풀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바라봐요.” ‘김ㅇㅇ 남 8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살해당함’ ‘김ㅇㅇ 여 9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살해당함’ ‘김ㅇㅇ자(子) 남 3세 1949년 5월 13일 함덕리 모래사장에서 토벌대에게 살해당함’*


“한 조각을 마저 찾아서 맞춰야 하는데······제가 주저앉아서 울어버려요. 한심하게····· 빨리 완성해야 비석도 비명을 그만 내지를 수 있을 텐데······”


그 말을 떠올리며 네 작업실 모습을 떠올린다. 네가 졸업작품을 고민하고 그 오름을 그리겠다고 결정을 내렸던 날 밤. 12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 복도를 걸어가던 나는 멈칫한다. 너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도 열어 논 채로 너는 가만히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아있다. 손에는 연필을 꽉 쥐고서.


그 앞에는 그 오름에서 할머니와 함께 찍은 너의 유년시절 사진이 걸려 있다. 하루 종일 그래 왔던 것처럼. 너는 멍하니 하얀 캔버스만 바라보고 있다. 한시도 떠나지 않고 상주가 그 자리를 지키듯이


네가 그리려고 바라보는 오름은 70년 전 4월의 그 오름이 아니다. 그로부터 70여 년을 견뎌낸 오름이다. 더 이상 총성이 들리고 비명이 만개하는 오름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찰칵 소리와 웃음꽃이 핀 사람들을 바라봐야 하는 오름이다. 이 모든 세월을 바라보고 있을 오름을, 세월의 고색(古色)을 너는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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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당신이오?”

“아니오. 당신들이 그린 그림이지” **



사람들과 너조차 지나서 너는 꿈속에서 그 오름을 오른다. 그리려면 몇 번이고 올랐던 오름이지만 다시 한번 더 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름이 400미터 정도 되는 구멍이 거기에 있다. 너는 내려보다 그만 고개를 돌린다. 너를 만나고서부터는 모든 구멍이 나를 빨아들이려 했다. 이것을 그려야 한다. 아니 그려내야 한다.


구멍을 두려워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을 것 같았다. 구멍을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 그래서 인간은 구멍을 보면 전전긍긍하며 그 구멍을 채우려 한다. 수단이 무엇이 되었든. 그러나 인간과 다르게 동물들은 구멍을 찾아다니고, 심지어는 구멍을 파내는 데 생애를 다 보내기도 한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혹은 천적으로부터 숨기 위해 구멍을 파낸다. 그러므로 구멍에서 불안을 느끼지도, 굳이 채우려 하지도 않는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너는 떠올린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유아기 성욕에서 아이들이 구강과 항문을 통해 세계와 만난다 했다. 이 구멍은 쾌락을 추구하는 구멍이기도 하며 동시에 안과 밖을 잇는 문지방이다. 어머니의 젖이나 똥, 관심 어린 시선과 목소리 같은 어린아이가 충동을 느끼는 대상의 공통점은 다 떨어져 나가 버린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며 욕망과 충동의 구멍이 된다. 프로이트는 잃어버린 것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이라고 보았다.



다랑쉬오름에 존재하는 구멍들이 떨어져 나간 뿌리들, 시간들 같다. 어느새 떨어져 버린, 멀어져 버린 너처럼 느껴진다.


너의 얼굴이 비칠 듯한 하얀 도화지에는 어렴풋한 스케치가 마치 종이에 금이 간 것처럼 새겨져 있다. 너는 앉아서 오름의 구멍을 그려보려 한다. ‘그려지지 않는다······’와 ‘그릴 수 없다······’ 사이에서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나날들이 줄을 이었다. 쓰레기통의 구멍만 메워지고 있다. ‘그려’ ‘보려’한다라······. 너는 네 작업실에 있는 시계와 달력을 내다 버린다.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눈을 아찔하게 감는다. 더 이상 종이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손에 연필을 쥔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려 나간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감은 눈 안으로 새들이 옹기종기 날아와 앉았다.



너는 내게 이제 채색만 하면 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너의 그림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인터넷에서 오름 사진을 검색하다가 바보짓이라고 생각해 그만둔다. 너는 학과에 들어왔을 때부터 사진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자신의 눈도 믿지 않고 그림도 믿지 않지만, 사진은 너에게 말을 걸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너의 그림은 그 오름이 걸어온 말에 대한 대답일까. 그걸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읽을 수 있을까······



너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 관한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지금은 너를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했다. 내가 유감을 표하기도 전에 망각은 신의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너는 말하곤 했다.



할머니는 경찰복과 군복만 보면 불안해하시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너는 초등학교 직업 탐구 시간에 ‘우리 마을의 영웅 인터뷰’를 하러 동네 파출소에 갔었다. 그날 너의 할머니는 꿈자리가 사나워서 학교까지 마중을 나가던 차였다. 파출소 앞에서 경찰 아저씨와 인터뷰를 하는 데 너를 알아본 순간부터 할머니가 신발도 벗겨진 줄 모르고 뛰어오셨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너의 손을 거칠게 붙잡고 도망가라고 말하고 “이제 내 손자까지 앗아가려고 하는가?”하며 경찰 아저씨 앞을 막아섰다고 했다.



이해하지 못해서 더 슬픈 노래가 있다. 이해했을 때 죄책감이 느껴지는 노래가 있다.



할머니는 식구끼리 저녁을 먹다가 할아버지에게 울면서 얘기하는 걸 너는 엿들었다. “내 목숨을 내가 스스로 끊지 못하도록 내 기억을 신이 가져가는 것 같수다. 하여튼 신은 무서운 놈이메······ 하나하나의 기억은 거의 다 이제 가져가도 그 기억은 끝끝내 가져가지 않으니······” 할머니는 언니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마을에서 합동 장례를 할 때라도 같이 제를 지내자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 화가 할머니를 잡아먹은 것이다. 가슴속부터 머리 속까지······




할머니 나는 당신이 나를 기억 속에서 지웠기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아요. 우리가 또다시 당신을 잊어도, 당신이 당신을 잊어도 내가 당신을 그려 드릴게요. 그러니 뒤돌아보지 말고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가세요. 당신 삶의 시간 속에서 한 번도 없었던 무게로······


가시다 흘리시는 눈물을 제가 그 위로 조심조심 걸어 갈게요. 터지지 않게 조심해서 생애 내내 당신을 겨눴던 눈물에, 내 물감을 희석해서 그림을 그려볼게요. 그림을 완성하는 날 당신이 알아보실 수 있도록 내가 오시는 길에 하얀 백지를, 그 눈물만큼이나 희고 고운 백지를 깔아 놓을게요. 그 위로 천천히 걸어 오셔요. 나를 잊으시고, 당신도 잊어버리시고 하얀 백지처럼 걸어오셔요.










*4.3 기념관 추모비에서 인용. 이런 졸고에 차마 그분들의 성함을 적을 명목도 면목도 없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전시했을 때 독일군 장교(게슈타포)가 “이 그름을 그린 화가가 당신이오?”라고 질문하자 피카소가 “아니오. 당신들이 그린 그림이지”라고 대꾸한 일화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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