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유채꽃 上

첫 번째 소설

by 변민욱

몇 주 동안이나 새로운 글을 적지 못했다. '적다'와 '쓰다' 사이에서 방황을 계속했다. 이 소설을 낳기 위한 진통이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서툴러도 이해해주시길.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미리 드린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고향의 봄



art_1456276850.jpg 출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오름에는 새들이 살지 않기 때문이죠”


“오름은 왜 나무가 별로 없을까요?”라는 나의 물음에 너는 한심하다는 듯이 답을 한다


올해 장마가 시작한 날이었다. 그 날 담당 교수님의 회화전에서 너는 이 말을 홀연히 내게 남기고 졸업작품으로 낼 그림을 그리려고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했다.


“뿌리가 뽑혀서 그래요. 저 오름의 표정을 봐요. 뿌리 뽑혀질 때의 표정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폭정에 의해서, 일제가 비행장을 만들면서, 군인들의 총칼에 의해서요....... 조금 더 내려와봐요. 유채꽃이 혈흔처럼 피어 있어요. 그 옆으로 다른 오름으로 이어지는 큰 뿌리들이 있어요. 잔뿌리를 모두 잃어버린.”


“옆을 봐요. 네다섯 개의 자그마한 무덤이 있는 부분. 마을이 있었던 바로 그 부분. 원래 잔뿌리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새도 나무도. 대게는 뿌리가 뽑혔던 그 땅에, 나머지는 잘려 나갔겠죠. 그리고 불태워졌겠죠.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헤어졌을까요.”


너는 비행기에서 창가 쪽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 위로 잃어버린 것들이 일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고통스러운 순례길이 될 수 있음을 너는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행기에서부터 멈추지 않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댔다. 사람들이란 같은 곳에서 같은 공간을 보더라도 참 다르게 본다. 사진이 그런 시각차까지 담아낼 수 있을까 그림은······


비행기에서 내려서 해변가를 바라본다. 짭조름한 냄새가 나를 감싸 온다. 익숙한 향기에 잠시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왔다’라는 안도감은 잠시 뿐이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고향의 봄 가사가 너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아름다운 가사가 내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해안가에는 검게 탄 시체들이 아직도 떠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해변가에는 결코 배경으로 처리되지 못 할 유채꽃들이 즐비하게 피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닮지 못하고 나를 닮아 있었다.


버스가 다랑쉬 오름을 지나 강정마을 일대에서 한동안 지나가지 못한다. 강정마을 마을 회관 앞에서는 해군기지 찬반을 놓고 시위가 열리고 있다. 전경 대기 버스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맹수처럼 도로 곳곳을 점거하고 있다. 아예 마을을 감싸려는 것일까. 우리를 그들이 감싸고 있다. 그 생각이 나자 너는 전경으로 복무를 하고 있는 너의 친구를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를 질식시키고 있다.


누군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가, 할머니와 어머니가, 같은 반 친구였던 P와 K를 가운데 두고 깨진 거울처럼 갈라져 있다. 깨진 거울처럼······. 한 번 깨진 거울은 다시 붙일 수 없겠지.


한 동안 버스가 가지 못하자 관광객들은 바깥을 궁금해하다가 이내 의문은 짜증으로 바뀐다. “왜 길까지 막고 지랄들이야” “지금이 몇 년도인데 아직까지도 빨갱이들이 설쳐 대는지 원······” “말을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저 사람들도 다 사정이 있겠죠”


“우리나라와 민족을 지키겠다는 일인데 무슨 찬반이 있을 수 있어!” 너는 이내 귀를 막아버린다. ‘그러게 시대가 어느 때인데······제주도는 아직도······’ 너는 그날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했다.




9605_16934_4158.jpg 출처:ⓒ 연합뉴스








상상의 공동체





186941_214626_4834.jpg 출처 : ⓒ제주의소리




민족의 죽음은 특별하다. 그들은 민족이 되기 위해 ‘상상의 공동체’를 이루기 전 서로를 죽였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학기 중에 배웠던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을 떠올린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사실 꽤나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라는 것임을. ‘나’가 ‘우리’가 되었을 때 비극이 시작됐구나.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너는 아직까지도 의문이 사라지질 않는다.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에 목숨을 바치는 것일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왜 ‘우리’라는 단어를 위해 ‘나’와 ‘너’를 포기할까······’


우리라는 단어에서는 소름이 끼치도록 피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학교에서 4.3도 결국 이데올로기로 인해 일어난 우리나라의 비극이라고 배웠다. 너는 교과서 한 켠에 필기를 한다. 4.3 사건을 적고. 옆으로 화살표를 긋고. 점을 세 개 찍고. 이데올로기라 적는다.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선생님의 설명은 3분을 넘어가지 않았다.


잠시만 결국이라니······. 너무 타협의 악취가 나는 접속사가 아닌가.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와 더불어. 이후에 너는 어떤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3분이면 아니 3초면 다 설명이 되는 걸까.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라는 다섯 글자로.


그토록 생생한 삼만 명의 사람들의 시체를. 제주도 토박이는 사실 그때 다 사라졌다는 슬픈 할아버지의 자조를. 고구마 밭을 갈다 갈아도 갈아도 유골만 계속 나와 이내 포기하고 소주를 사서 뿌려주고는 흘렸던 할머니의 잃어버린 언니에 대한 숨죽인 울음을.


일전에 너는 경찰서에 잡혀갔던 적이 있다고 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 밖에 없을 것 같았던 그가 경찰서에 갔다니 그것도 제 발로 간 것이 아니라 잡혀서.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전에 그가 말을 계속 이었다.


“이끼가 붙어 있었어요. 이끼 가요.”

“네?” 너는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이끼를 떼어 주고 싶었어요. 그러려고 매번 오름에 올랐던 거예요. 무덤이 옹기종기 등산로 옆에 마을을 이루고 있었어요. 벌초야 되어 있었지만 붉은 이끼가 무덤을 지키는 돌담을 뒤덮고 있었어요. 핏빛에 가까운. 상처에 딱지가 내려앉는 듯했어요......”


네가 말하는 무덤은 나도 본 적이 있다. 너와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등산로 때 그 오름에 같이 올랐었다. 너는 그 무덤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고 그곳이 너의 정상인 듯 그걸 보고선 내려가자고 나를 재촉했다.

“그렇다고 거길 들어가서 남의 무덤에 손을 대면 어떡해요”


“..... 남의 무덤이라고요?”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그의 말이 얼굴빛만큼이나 창백해졌다.

“그게 어떻게 남의 무덤일 수 있어요?”

“.......”

“이끼를 떼어 내주고 싶었어요. 두 손으로 장갑도 없이. 딱지가 벌써 내려앉을까 봐요. 벌써.......”


그 이야기를 듣고 네가 해줬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너는 일전에 교회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며칠 잘 다니다가 이내 뛰쳐나왔고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신이 어떻게 사람의 죄를 다 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신도 믿지 않고 구원을 받겠다는 사람은 더더욱 믿지 못해요.


사람의 생애는 오히려 백지로 왔다가 얼룩 가득하고 찢어지기도 한 종이가 되어서 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나의 그림을 기나긴 타협으로 잘못 버릇들이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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