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日記)

다섯 번째 시

by 변민욱
바늘도 없이 오늘을 파도에 흘립니다

거품이 일며 파도가 짙게 웁니다
비어 있는 방향으로 가득히
새끼손가락에 묶여있던 붉은 실이 풀려나갑니다
영원을 따라 컴컴한 바다의 그림자까지 내려나갑니다.

모든 표정을 배우면 표정을 하나씩 잃어버린단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닥에선 표정이 없는 물고기들이 살았어요
실을 볼 때면 그들은 사라진 눈의 흉터로 노래를 부르곤 하죠
눈에 있던 마지막 비늘이 사라지며 지은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실은 그들에게 묻지 않습니다

사람은 눈을 감기 위해 노래와 바다를 찾곤 합니다.

물을 따라 실타래가 감겨왔다 또다시 꼬인 채로 붉게, 파도가 치면 거품이 피어나듯

바늘처럼 내일이 걸린 낚싯줄이 내게 돌아왔습니다




'홍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시를 썼습니다. 너무 무겁게 써버린 듯합니다.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눈물진 나의 뺨을 쓰담아 주면서도
다른 손은 칼을 거두지 않네
또 다시 사라져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아아 아아아 아아아
고운 그대 얼굴에 피를 닦아주오

나의 모든 것들이 손대면 사라질 듯
끝도 없이 겁이 나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했죠

아픈 내 목소리에 입맞춰 주면서도
시선 끝엔 내가 있지를 않네
또 다시 사라져

아득히 멀어지는
찬란한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어
돌아올 수가 없네
다시 돌아올 수가 없네

아아 아아아 아아아
고운 그대 얼굴에 피를 닦아주오

안예은 『홍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악몽(惡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