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설렐 필요가 있어_
여행이란 늘 그렇듯, 예기치 않게 또 뜻하지 않게.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 내야할지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아직은 조금 쑥스럽고 부족하게만 느껴지기에.
그래도 아직도 인생에, 또 사랑에 좌절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말해주고 싶다.
또 웃는 날이, 기대할 수 있는 날이 있기에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언제나 설렐 필요가 있다고. 이 이야기는 여행 소개 책이 아니다. 결국 여행이란 건 시간이 지나면 장소 라던지 내가 갔던 곳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인연들을 되새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내가 만났던 그 아름다운 인연에 대해서 기록하고자 했다.
"인생이란, 설렐 필요가 있으니까"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목구멍에서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뛰어나왔다.
"응. 남미에 갈 거야- 다음달에."
많은 권태로움과 여전히 아득한 미래에 이골이 났을 데로 나있던 터라 나는 어디든 머리를 식힐 만한 아니 사실은 도망 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원래 길게 생각하는 건 전혀 할수 없는 뇌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항상 무언가를 먼저 내밷고 행동에 옮기는 참으로 인생을 살기 힘든 성격을 가진 별난 30살의 여자였다.
그래, 일단은 6개월.
* * *
"잘 다녀와. 조심해서"
"그리고 이건 선물.“
남미 여행 중 필수품 중에 하나라는 시계를 깜빡하고 안 챙겨온 나를 위해 언니들은 앙증맞은 미키 마우스가 세 겨진 유아용 시계를 선물해주고는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는 나를 세상 쿨하게 배웅 해주었다. 80곡이 넘는, 장르가 전혀 다른 노래를 두어 번이나 돌려 들었지만 목적지까지는 아직 반도 도착하지 않은 듯 했다.
추웠다 더웠다 하는 비행기의 온도때문인지, 아니면 설레임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우유부단한 나의 기분탓인지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온 내 여행동반자 “올리”도 유독 지쳐보였다.
비행기는 두 번의 경유를 한 후 여행의 첫 목적지인 보고타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값싼 비행기를 찾다보니 휴스턴에서 짐을 다시 한 번 찾았다가 붙이고 경유를 해야 하는 거지같은 수속을 밟았어야만 하는 비행기를 예약 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꽤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꽤 여러 번 비행기를 놓친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비켜가는 적이 없는 것인가. 역시나. 반전없이 나는 휴스톤에서 미아가 되어버렸다.
경유 시간이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던 터였고 짐을 다 찾고 붙이기엔 두어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라는 핑계를 대보지만, 사실 정신줄을 어디다 놓았는지 알 수 없을정도로 몸은 피곤했고, 정신은 나사가 풀려있었다.) 하지만 태생이 낙천주의자였던 터라 어차피 놓친 거..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자. 라는 심산으로 느긋히 다음 비행기를 탈 게이트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한국사람 비슷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보였다.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그 청년은 나와 같은 게이트 앞에서 몇번이고 도착지를 확인해보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 보였다. 쯧쯧.. 같은 신세 구만.. 왠지 모를 반가움에 말을 걸어볼까도 했지만 왠지.. 쓸데 없는 인연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 상큼하게 그 청년을 무시한 채 집 나간 정신도 찾을 겸 쏟아지는 잠도 잡아둘겸 좋아하는 뜨끈한 카푸치노를 마시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멘탈이 붕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건 바로.. 카메라. 내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다. 카메라를 어디다 놨지 라며 멀어져 가고 있던 나의 멘탈을 간신히 붙잡고 마치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 라고 광고라도 하는 마냥 공항 이리 저리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Hey, Korean Australian."
착각이 아니었다. 뒤 돌아보니 아까 나를 세관에서 붙잡아 놓고 있던 미쿡오빠가 아닌가!
"뭐 찾고 있어?"
뭔가 모를 음흉한 미소를 짓던 그는 의기양양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말투로 "너가 찾는 물건이 혹시 네 카메라라면 그건 우리 사무실에 있어" 라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카메라와 무사히 상봉한 나는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이 나오려고했는데, 빨갛게 충혈된 내 눈을 본 Paul(아까 나를 붙잡고 있었던 미쿡오빠의 이름이 폴이었다.)이 재빨리 자신의 일이 끝났으니 비행기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커피를 사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비행기 이미 놓쳤음.. 3시간 기다려야 된대.. 너 때문이잖아.. 나 왜 잡고 있었어 아까 출국심사대에서!!!" 하며 비행기를 놓친 서러움과, 카메라를 잃어버릴 뻔 했다는 사실이 모두 폴때문인양 그에게 때 아닌 화풀이를 해댔다. 난처해하는 폴은 연신 그건 자기네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대신 맛있는 커피 사 줄 테니까 울면 안된다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것만 같은 나를 달래주었다.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Paul의 어마어마한 잘생김 때문에 나는 조금은 더 순순히 커피를 사준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 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훌쩍 거리며 Paul은 내가 왜 남미에 가게 되는지, 어떻게 호주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미국 생활에 대해 꽤나 자세히 얘기해 주었고,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누고 있던 도중, 콜롬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의 탑승 안내문이 들렸다.
"내 생각엔 이거 네 비행기 안내문 같은데? 또 놓칠라, 어여 가봐! 좋은 여행 하길 기도할게! 용감한 아가씨“
찬사 아닌 찬사와 함께 Paul은 내 이마에 입맞춤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Paul은 알까. 그가 호의를 베푸며 사주었던 고작 $2.75의 커피가 혼자 여행을 떠나와 조금은 두려워 하던 나를 시작부터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가 베풀었던 그 친절함이 무작정 떠나온 나의 이 여행이 절대 나쁠 수 가 없을 것이 라는 확신을 주었는지.
*반전이 있던, 나의 Favorite country가 되어버린 콜롬비아, 보고타
가까스로 38시간이나 걸린 모든 비행을 다 마친 후 새벽 6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에 보고타에 도착했다.
뿌연 새벽 공기와 조금은 탁한 아침 냄새로 첫인상을 뽐냈던 보고타. 낯선 곳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느라 조금은 천천히 짐을 찾고 내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강도...인가... 남미는 특히 콜롬비아는 특히나 치안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터라 나는 다가오는 인상 좋은 보이는 남미인에게 조차 경계를 풀지 않았다.
거기다가 방금 전, 엄마가 선물해 준 귀걸이 한쪽이 없어졌다는 사실까지 알아버린 나는 신경이 있는 대로 곤두서 있었다. 그 작은 귀걸이를 찾아보겠다고 공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이 무모한 일이었다.
"한국사람..이예요?"
"(뭐....뭐지..)네... 한국 사람 맞아요“
말을 걸어온 사람은 윌리엄이라는 콜롬비아 남자였다. 앳된 얼굴의 윌리엄은 아주 친절했다. 유창한 한국말에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6년 정도를 유학하고 휴가 차 콜롬비아로 돌아온 중이라는 그의 말에 나의 궁금증도 단번에 해결됐다.
남미의 치안에 대해서는 읽히 듣고, 또 보고 왔던 터라 나는 극도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그런 내 모습을 눈치 챘는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보고타가 위험한 곳임은 틀림없지만, 조심만 한다면 이 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임을, 그리고 내가 묶는 지역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되는지에 대해서 꼼꼼히 일러주고, 또 택시를 잡을때도 직접 택시 기사에서 스페인어로 무어라 무어라 얘기도 해주었고, 자신이 택시 번호를 입력해 놨으니 별일 없을거라는 기사도(?)정신 또한 발휘했다.
선한 인상도 물론 한 몫했겠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도움을 주는 윌리엄의 모습에왠지 모르게 믿음이 생겼다.
- Bogota
보고타의 첫날,
공항에서 알게 된 윌리엄과는 전화 번호를 교환했고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었다. 나는 리뷰가 나름 훌륭해 미리 예약해 두었던 백팩커에 체크인 시간보다는훨씬 이른시간에 도착했다.
젊은 엄마 요안나와 5살 남짓 한 딸이 운영을 하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가격에 비해 위치도, 잠자리도 그리고 분위기도 썩 나쁘지 않았다.
전혀 꼼꼼하지 않은 성격인 터라 나는 사실 여행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베짱이 컸던건지, 아니면 여행을 꽤 많이 다녀봤던 터라 거만해 진 탓인건지 나는 처음 딱 열흘의 숙소와 꼭 가보고 싶었던 갈라파고스섬 그리고 이스타 섬의 왕복 항공권만을 예약해 왔을 뿐이었다.
그 외는 정말 어리석을 만큼 아무런 준비도 정보도 없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내가 어느 군대와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친절한 요안나는 내게 추가비용없이 일찍 체크인 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고 그 덕에 나는 보고타에서 미아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40시간이 가까운 비행을 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처음 밟은 남미 땅의 역사적인 이 순간을 그냥 이대로 잠으로 낭비 하게 둘 순 없었다. 그래서 이미 천근만근인 몸을 간신히 끌고 나와 목적도 없이 분주하게 보고타의 거리를 걸었다.
무식 하니 용감했으리라.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휘젓고 다녔던 그곳이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보고타 지역에서도 가장 위험한 거리였다.
그런 걸 알 리가 없던 나는 무던히도 신기한 "Tourist"의 얼굴을 하고 이리 저리 잘도 거리를 휘졌고 다녔다. 차가운 공기와는 전혀 다르게 보고타의, 아니 조금 거짓을 보태자면 콜롬비아의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다. 이리저리 어리바리 하게 걸어 다니고 있자니, 한 청년이 다가와 혹시 길을 잃은 거냐며 친절한 얼굴로 물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할리 없던 나는 "sorry, can you speak english"하고 되물었고 청년은 멋쩍은 얼굴로 "No.."라며 되려 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려면 적어도 그 나라의 인사 정도는 그 나라 어로 말할 줄 알아야한다고 늘 생각해 왔던 터라 나는 조금은 버벅 거리며 "anyway-Gracias.." 하고 밝게 웃어 보였더니 그 청년도 조금은 안심한 눈치였다. 콜롬비아는 참 신기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모두가 삶에 고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면서 그들은 친절했고 또 낯선 이에게 선함을 조건없이 베풀었다.
윌리엄 또한 그랬다. 아침부터 무리를 해가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터라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예고편도 없이 잠에 빠져들 찰라, 메세지를 알리는 알림 소리에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윌리엄에게서 온 문자였다.
"윈디, 나야 윌리엄. 우리 아까 공항에서 만났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지? 혹시 내일 뭐할거야?.“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쏟아지는 잠에 제대로 생각 할 틈도 없었던 나는 "nothing."하고 짧은 답변을 보냈고 윌리엄은 내일모레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콜롬비아 특히나 보고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윌리엄과는 내일모레 만날 약속을 정하고 언제 잠든지도 모른 채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었다.
서울을 떠난지 50시간이 넘는 시간만에 누워보는 침대는 구름 속에서 잠이 든다면 이런기분이겠지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달콤했고, 황홀했다.
얼마나 잠이 들었던 걸까. 나는 분명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어제보다는 훨씬 밝은 햇살 탓인지 기분까지 덩달아 설레였다. 분명 어제까지 비행기 안에서 똑같은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었는데.. 내가 콜롬비아에 와 있다니..
‘내가 정말 떠나왔구나..’ 여전히 얼떨떨해 하고 잇는 나를 사방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라틴어들만이 다시한번 이곳이 ‘남미’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줄 뿐이었다.
조금은 멍하니 이 기분좋은 낯설음을 즐기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천천히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묶은 숙소는 아침을 제공해 주었는데, 시리얼과 삶은 달걀, 그리고 식빵과 커피, 쥬스가 식탁 위에 놓여있고, 사람들은 본인이 먹고 싶은 양의 음식을 자신의 접시에 덜어 가져가는 나름 부페식의 아침이었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지만, 여행을 떠나와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삶은 달걀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세개나 먹어 치울만큼 맛이 좋게 느껴졌다.
아침을 먹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보고타의 자랑, Museo Betero를 가기로 결정했다. 무세오(박물관) 보테로에는 정말 많은 보테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무료였다. 우스꽝스럽기도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보테로의 작품들을 나는 굉장히 좋아했다.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전시회를 연 적이 있었고, 또한 그의 작품들이 여러 많은 상품들에 사용되어 보테로의 작품들은 먼 타지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굉장히 친근했다.
떠나지 않는 미소를 머금고 숙소를 나섰다. 보테로 박물관은 내가 묶은 숙소에서 대략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하지만 나는 1시간이 더 넘게 보테로 박물관을 찾을 수 있었다. 저주 받은 길치의 운명이란...ㅠㅠ).
무세오 보테로는 보고타의 만남의 광장이라 불리는 볼리바르 광장을 조금 지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보기에도 한 눈에 박물관 스러운 외관은 이곳이 보테로 박물관 이라는 것을 더 잘 알려주기 위해 입구 앞에는 보테로의 작품을 상징하는 커다랗고 뚱뚱한 손가락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스꽝스러웠지만 왠지 너무 나도 페르난도 보테로 스러운 조형물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났다.
이 모든 게 무료라니.. 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리저리 셀카도 찍고, 밖으로 나와서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감자칩도 750원이 안되는 가격에 구입을 하고는 여행 다닐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중에 하나인 "무작정 걷기"를 행동에 옮겼다.
세상 맛있어 보이는 감자칩은 세상 무엇보다 짠 맛의 반전을 선 보이며 나를 놀라게 했다. 하나를 입에 베어 물었을 뿐인데 곧바로 탄산음료가 생각나는 정말이지 놀라온 맛이었다.
삶은 달걀 조차 특별한 맛으로 변화시켰던 이 남미에서조차 이 감자칩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온갖 웃긴 표정을 다 짓고 나의 이 짠맛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꽤 낯이 익은 한 청년과 마주쳤다.
그 사람이 왠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나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 한국 사람 뒤로 보이는 동네 슈퍼 비슷한 것을 보고는 전력 질주를 다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보고타를 떠올리면, 보테로 박물관이 아닌 저 감자칩이 더 생각난다. 가끔은 그 짠맛이 그립기까지 한 걸 보면.. 그래도 그 감자칩 가게가 어떻게 계속 장사를 할까 했던 나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된 것 같다.
저녁은 간단히 숙소 앞에 있는 현지인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 횡재를 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바로 우리나라 갈비탕이랑 비슷한 스프를 운 좋게 먹게 된 것이었다!! 비록 고기는 달랑 한덩어리 뿐이었지만 섭섭하지 않은 크기였고, 무엇보다 소고기와 감자를 오래 우려낸 그 맛은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갈비탕과 비슷해서 눈물이 날 만큼 휼륭했다. 게다가 가격은 무려 천삼백원!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ㅠㅠ 내가 보고타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라고 자부할 수 있는 맛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식당을 나온 나는 정처없이 내 발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내 눈이 보이는 곳으로 열심히 또 부지런히 목적없이 걸었다. 가끔은 누가 내 가방을 훔쳐 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다시한번 가방을 단단히 부여 잡았고 가끔은 발걸음을 멈춰, 아무것도 아닌 그 누군가의 일상을 자세히 들어다보고 그것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허름하고 낡은 리어카 안에 무엇을 가득 담아 팔고 있는 상인을, 작고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한 손에는 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바삐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면도를 하지 않고 빗질을 하지 않은 머리가 투박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내가 모르는 어떤 이의 모습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
실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유 없는 행복" 이었다. 불현 듯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는 수만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지나칠 수 잇는 평범함안에서 이유 없는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그들을 눈으로, 사진으로 담고 보니 어느 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 곳에서의 시간은 평소보다는 조금은 더 빠르게 흐르고만 있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숙소를 돌아 오는 길에 샀던 캔맥주를 땄다. 술을 거의 마시지못하는 나였지만, 여행을 떠날 때 마다 나는 유독 알콜 사치를 부리곤 했다.
*알쓰(알콜쓰레기)인 나는 유독 여행만 떠났다 하면 쓸데없이 알콜 허세를 부리곤 했는데,
그건 "낯선장소에서의 술 한잔"은 왠지 모르게 내가 더 완벽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주기때문이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알싸한 그 맛도, 빠르게 취해 알딸딸해 지는 몽롱한 상태도, 낯설음이 주는 불안한 설레임도 좋았다. 캬아...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이 맥주 맛은 정말이지 내 인생 최고의 맥주 맛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부터 맥주까지, 정말이지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는 없을 것만 같았다.
떠나올 때 가졌던 무거운 마음이 알콜의 힘인지, 혹은 남미의 알 수 없는 오묘한 기운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착각이 드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6시부터 윌리엄은 내가 묵는 숙소 앞으로 나를 태우러 왔다. 어제의 술 때문이지도 아직도 헤롱거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연신 싱글벙글 나를 보고 웃는 윌리엄보다 내 눈에 들어 온 건 그가 몰고 온 유럽에서도 꽤나 가격이 나가는 고가의 차였다.
처음엔 나한테 왜 이렇게 친절하지? 내가 돈이 있어 보이나... 설마...그래서 나를 납치...라는 말도 안되는 망상으로 의심과 경계를 놓고 있지 않았지만, 윌리엄이 자신의 집으로 저녁을 초대했을 때 인자하신 부모님과 윌리엄과 다른 듯 닮은 특유의 밝은 그의 여동생을 본 순간, 드라마 뺨치는 나의 삼류보다 더한 상상력이 얼마나 민망한지 여과없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콜롬비아에서도 상위 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윌리엄은 어느 다른 부잣집 도련님들과 다름없이 티없이 맑았고 친절했으며 지나치게 솔직(?)했다.
휼륭한 부모님에서 올바르게 성정한 윌리엄은 그래서 인지 몸에 벤 매너도 남달랐다.
차 문을 열어주는 건 기본이었고, 좌석에 앉자마자 내 안전벨트를 손수 매주는가 하면, 이른 아침에 떠나는지라 아침을 못 먹었을 나를 위해 커피며 간단한 요기거리도 손수 준비해 올 정도로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콜롬비아 중심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Villa de leiva이었다. 꼭 소풍을 떠나는 느낌이어서 그랬는지 평소같았음 거슬릴만도 했을 비포장도로의 그 거친 느낌도 오늘따라 무척이나 좋았고, 예쁜 구름도, 시골에서나 느낄 수 있는 맑은 공기 또한 좋았다. 거기다가 센스 있는 윌리엄의 한국 노래 선곡까지. 여행을 떠나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한국에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Villa de leiva에서 윌리엄은 이리저리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콜롬비아의 예쁜 곳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윌리엄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콜롬비아, 그것도 첫 여행지였던 보고타의 여행은 어떤 식으로 변했었을까.
윌리엄이 데리고 갔던 Villa de leiva은 내 기대 이상으로 예뻤다. 크고 작은 성당들이며 발바닥까지 아프게 했던 하지만 너무 운치 있고 예뻤던 돌담 길도, 알록달록 꼭 동화책에서 금방 뛰어 나온 것만 같은 아기자기한 화려한 색상의 건물들까지. 보고타 시티의 차가운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흥미로웠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허기가 느껴질 무렵, 윌리엄은 나를 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고, 콜롬비아 식 순대 모르씨쟈라는 나름 꽤나 흥미진진한 메뉴를 주문해 주었다. 겉보기에는 정말 헉 소리 나게 순대 같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반대의.. 조금은 덜 익은 소시지에 향신료를 떄려 부은..맛이랄까.. 아무튼 모양만 순대와 비슷한 모르씨쟈에 적잖이 실망을 했지만, 예상 외로 맛있는 음식도 있었다.
바로 엠빠나다! 약간.. 뭐랄까.. 튀긴 만두? 느낌의 콜롬비아 정통 음식이었는데 속이 각각 다른 재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먹었던 엠빠나다는 계란이 통째로 들어가 있었고 그 주위를 양념된 소고기로 감싸져 있는 엠빠나다였는데 적당한 죠미료가 아주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식욕을 자극하는 맛이었는지 배가 고파서 였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엠빠나다 다섯 개를 해치워 윌리엄을 놀라게 했다.
여행계획 따위는 전혀 짜 오지 않았던 내가 놓치기 만무했을 그런 예쁜 곳들을 윌리엄은 나를 위해 하나하나 그리고 세세하게 다 보여주려고 노력 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두 군데의 예쁜 성당에도 들렸는데 그곳에는 기도를 하기 위해 만든 작은 공간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픈 큰언니를 위해, 우리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내 주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보고타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윌리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어떻게 한국에서 호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또 윌리엄은 어떻게 콜롬비아에서 한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때로는 진중한 이야기까지. 오히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이었다면 더 하기 또 꺼내기 어려웠을 이야기들이 윌리엄에게는 술술 쏟아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윌리엄과는 처음 한국을 떠나오는 비행기부터 쭉 동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도 나와 같이 휴스턴에서 비행기를 놓친 덜 스마트(?)한 승객 중에 한 명 이었다.
"비행기는 어떻게 왜 놓치게 된 거야?"
"그게 사실은.. 너한테 말을 한번 걸어 보고 싶었는데 네가 너무 급하게 어딜 가는 거야. 그래서 보니까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 같더라고. 나랑 같은 비행기이겠다 싶어서 따라갔는데.. 너가 비행기를 놓칠 줄은.. 몰랐어."
"아 뭐야, 그럼 나 따라 오느라고 비행기를 놓쳤다는 거야?."
"네가 너무 당당하게 걸어가길래.. 길을 다 아는 줄 알았지."
"맙소사..! 하하하하 내가 좀 길치야.. 나 사실 어제도 똑같은 길을 세번이나 돌았구 오늘은 눈앞에 정류장을 두고도.. 몇 번을 같은 길을 돌았는지 몰라! 난 길에 대해서는 정말 내가 보통 사람인지 가끔 의심이 간다니까."
하하 호호 거리며 내가 얼마나 길눈이 나쁜지, 왜 남미를 오게 되었는지, 콜롬비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윌리엄는 내 말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귀 기울여 주었고, 적당히 맞장구도 쳐 주며 부단히 나를 알아가려 노력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꽤 많은 일들이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윌리엄도 그 특별한 지나가는 인연 중에 하나인 줄 알았다.
숙소에 다다랐을 때 윌리엄이 말했다.
"내일.. 우리 집에 저녁 먹으로 오지 않을래? 우리 가족들이랑 같이.. 내가 너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말했더니 전부 너를 궁금해 하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윌리엄은 나를 "운명의 그녀" 정도로 잘 포장(?)해 가족들에게 말했고 가족 간의 사이가 굉장히 좋았던 윌리엄의 가족들은 그의 "운명의 그녀"를 퍽이나 보고 싶어 하셨다.
"진짜? 하하하 음.. 글쎄.. 내일 별다른 일이 없기는 한데..."
"내가 데리러 올게. 7시까지. 알았지?"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날 오전부터 조금 분주했다. 어젯밤 숙소에 돌아와서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당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보고타 근처의 관광지인 소금성당 Plaza del Minero 에 가기 위해서였다.
처음으로 보고타, 아니 남미에서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때는 3시간이 장거리 인줄 알았다. 3시간이면 정말 단거리 중의 단거리 여행이라는 것을 이때는 알 리가 없었다.) 여행을 가는 것이라 나는 조금은 상기되어 있었다. 길치 중의 길치인 나는 똑같은 길을 세 번이나 돌고 도는 기염을 토해 내고 가까스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버스 티켓을 사러 돌아다녔고 신이 나를 도우셨는지 7분 뒤에 소금성당 으로 떠나는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참 예뻤다.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을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림과 진짜 오늘 당장 고장이 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래된 버스조차 설렘으로 느껴지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여행을 왔구나 다시금 느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 도착한 소금 성당의 내부는 초라한 외부 와는 다르게 반전의 매력을 선사했다.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관광객을 의식한 듯이 보이는 화려한 볼거리들이 가득했던 내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천사 석고상의 정교함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사라 잡았던 건 건물 위 쪽에 설치된 보랏빛깔의 커다란 십자가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동양인 여자애가 안쓰러웠던지 가는 곳, 곳곳 마다 사람들은 친절히, 그리고 살뜰히 나를 챙겨 주었다. 그 곳에서 만났던 매튜가 그랬고, 크리스티아노와 그의 브라질 친구들(이름은 기억이 안 나서..)이 그러했다.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는 뭘 찾고 있던 거야?"
궁금한 얼굴을 한 메튜가 나에게 물었다.
"아.. 뭘 찾고 있던 건 아니고..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찾고 있었어. 내가 좀 심각한 길치 거든."
"아.... 그래서 같은 곳을 그렇게나 돌고 있었구나.. 보통 심각한 길치가 아니네 병원은 가봤고? 하하"
어이가 없다는 매튜에게 뻐큐를 날려주고는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웅장한 교회 내부 안에는 역시나 관광객을 의식한 듯,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아주 많았다. 콜롬비아 사람들의 종교사랑은 정말 굉장했는데 거리를 걸을 때 손쉽게 볼 수 있었던 성모마리아 상이 그러했고, 윌리엄을 만났을 때도 그가 차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그러했다. 왠지 이곳에서 간절히 소원을 빈다면, 이루어 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스럽지만, 정성이 가득한 그런 예쁜 곳이었다.
전혀 꼼꼼하지 못한 성격의 내가 성당의 내부 구석구석을 잘 돌아보고 밖에 나오니 벌써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었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윌리엄과의 저녁 식사 시간에 늦을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서둘러 매튜와 브라질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보고타 시티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백지영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청승맞은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는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 주었던.. 호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호주에서의 나의 생활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개인의 행복과 사생활을 꽤나 존중해 주는, 서구 사회의 보편적인 룰을 꽤나 잘 지켜준 호주 덕분에 나는 일과 나의 생활의 균형을 잘 맞춰 갈 수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받아 볼 수 없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마음이 예쁜, 그에게 넘치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나는 이유없이 지쳐갔고, 그의 사랑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날카롭게 반응했고 이유없이 그를 상처 줬으며, 나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부패가 시작된 마음은 날이 갈수록 썩은 내가 진동했다.
우리는 아니, 나는 솔직히..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고, 모든 연인들이 한 번씩은 다 겪는 다는 그 병에 걸려버렸었다. 바로 "권태기"라는 그 지긋지긋한 병에.
익숙함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
확고함이 넘쳤던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물음표로 가득 차게 만드는 날들이 늘어갔고, 그럴수록 나는 그 사람을 힘들게 했다. 나를 안아주는 그 손길을 거부했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그 사람을 늘 밀어 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늘 얘기를 해서 풀어나가려고 했었고, 늘 기다려 주겠노라 말했었다.
6년 동안 단 한 번의 싸움도 없던 우리였는데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고, 나를 늘 그의 인생에 중심에 놓았던 그였기에 그 끝은 언제나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는 사실 헤어짐이 너무 두려웠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상처받을 용기도, 그렇다고 그 사람을 상처 줄 자신도 없었던 거다.
6년 동안 나를 본인보다 더 사랑해 주었던 그 사람은, 참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뉴질랜드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그가 2살이 채 되지 않던 해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그는 알콜중독증과 가정폭력 전과가 있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가정환경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너그러웠고, 배려심이 깊었으며, 누구보다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자랑스러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을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었는데 나의 그 사람은 이러한 나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결과물 이자, 나의 선택에 더욱더 확고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증거물(?)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좋아했다는 그의 고백에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만 치고 있는 나를 재촉 하지도, 그렇다고 왜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냐고 나무라지도 않았었다. 그저 늘 똑같은 그곳에 있어주었고, 늘 거기 있다고 그러니 서두르지 말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 불행했던 그의 어린 시절만큼 나로 인해 더 행복해 지길 바랬고, 그가 나로 인해 조금은 편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울타리에서 더 행복했던 건 나였었고, 기대고 있었던 사람 또한 나였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아프게 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신이 드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떠나기로 결심을 한 그 순간, 그에게도 이별을 고했다. 확신이 전혀 들지 않는 이별이었지만 그게 맞다는 내 결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난.. 여행이 끝나고 돌아 올 즈음이면 모든 게 조금은 명확해 지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떠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마음까지 어지러워 지고 있을 무렵, 버스는 보고타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7시 30분, 난 결국 7시가 넘은 시간에 시티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고 샤워 할 시간도 없이 땀에 그리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몰골로 윌리엄 네 집으로 향했다.
"Hola, Como esque"
윌리엄의 부모님은 정말 인상이 좋은 분들 이셨고 그 인상만큼이나 품성 또한 훌륭하신 분들이었다. 스페인어를 정말 "Hola"밖에 할 수 없는 나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시는 두 분 사이에 구세주는 단연 윌리엄과 그의 여동생 마리아였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 할 줄 알았던 마리아는 분주히 나와 윌리엄 부모님 사이의 윤활제 역할을 해주었고 윌리엄 또한 영어와 한국어를 두루 사용하며 내가 그 저녁 식사에 잘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다.
참 고맙고 따듯한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는 감사의 의미로 내가 가져온 작은 선물을 건네고 (나는 한국에서 작은 동전 지갑을 20개 정도 가져왔는데 만나는 고마운 인연들에게 줄 작은 기념품 같은 것이었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윌리엄의 집을 나섰다.
"그럼 정말 내일 떠나는 거야?"
"응. 내일 Medellin으로 갈 거야."
윌리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우리 옆으로 꽃을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셨는데 윌리엄은 장미꽃 두송이를 사고는 나에게 수줍은 듯 그 꽃들을 건넸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예쁜 마음이었다.
숙소로 나를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윌리엄이 물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
"당연히 만날 수 있지! 요즘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잖아."
윌리엄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나는 애써 그 마음을 무덤덤하게 받아 치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려 애썼다.
숙소에 도착했음에도 윌리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윌리엄이 꺼낸 첫마디는 "내가 사실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였다.
윌리엄의 고백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란 상태였다. 우리가 뭘 했다고.. 거기다가 우리는 고작 5일을 알았다. 말을 섞고 만난 건 그 중에서도 사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만난 지 5일 만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꽤나 진지하게 한다. 내가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한 미인은 아닌데.."
"진심 이야. 처음에는 그냥 네가 신기했는데 너와 얘기를 나누고 나는 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졌어. 네가 웃는 모습이 좋았고, 용감한 네 모습이 좋았어. 사실.. 난 공항에서부터 너를 쭉 봐 왔어. 네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말을 걸었던 거고 네가 보고타에 있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 나도 이런 내가 믿기지 않지만 나는 네가 좋아."
글썽 거리는 그의 눈에서 나는 그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겠다 라는 것과 아마 정말 조금은 진심이 섞여 있으리라 하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고작 5초라고 하지만, 나는 눈에 띄는 미인도, 그렇다고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나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있다고.. 말 했었나..? 6년을 만나 온, 지금 아마도, 어쩌면 호주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 5일동안 정말 너무 고마웠어. 너가 없었다면 나의 보고타는 나의 남미의 시작은 정말이지 밋밋했을 거야. 나.. 살면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한테 고백을 받아 보긴 또 처음이야. 있잖아.. 사실 나는 내가 아주 부족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런 나를 누군가는 멋진 사람으로, 알아가고 싶은 그런 누군가로 보여진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또 감사해. 그런데..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게다가.. 난 내일 떠나야 되는 사람이고. 공항에서 먼저 말 걸어 줘서 고마웠어. 오늘 저녁식사도, 장미꽃도 나한테는 정말이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야."
나는 정말이지 진심을 꾹꾹 담아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받아 줄 수 없는 마음에 대한 미안함을 꾹 눌러 담아 그를 힘껏 안아주었다.
"고마워. 정말."
윌리엄도 그 마음을 읽었으리라. 한참 동안을 나를 가만히 안아주던 윌리엄이 팔을 뒤로 뻗어 뒷자석에 있던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내일.. Medellin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열어봐, 그리고 내 전화 번호 꼭 기억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연락해. 네가 어디에 있던. 알았지?"
그렇게 나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윌리엄의 차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 뒤에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아주 긴 샤워를 했다. 복잡한 감정들과 머릿속을 조금은 씻어내고도 싶었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나는 느긋이 그리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밤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조차도 온전히 나 자신을 좋아하기 어려운데.. 다른 누군가는 이런 나를 좋아한다 라니..
가끔 난, 나 자신조차 나를 좋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건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내 존재가 너무 많아서이다. 어떤 때는 뭐든지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넘치는 나와, 어떤 때는 모든 일이 두렵고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난 못해 포기야.. 하고 뒷걸음질치는, 자존감 바닥인 나.
스스로도 사랑해 줄 만큼 사랑스러운 나와 버리고 싶을 만큼 최악인 나.. 무수히 많은 내가 존재했기에 가끔은 나조차도 나를 온전히 좋아해주고 사랑해 주기 버거운 적이 많았다.. 윌리엄은 무수히 많은 나 중에 어떤 나의 모습을 보고 만난 지 5일이 채 되지 않은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올리는 나의 어떤 면을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 같이 날 사랑해준 것일까..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걸까.. 여행을 와서 이런 일이, 혹은 이런 생각들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의 물음은 좀처럼 사그라질지 몰랐다.
다음날, 밤잠을 조금 설친 탓인지 12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일어났다. 오늘은 아무 계획도 잡지 않고 일단 천천히 숙소를 나왔다. 급할 것 없이 아주 느긋하게 어제보다는 익숙해진 이 거리를 천천히, 그리고 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보고 또 보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예기치 못한 호의를, 그리고 고백을. 여행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목적 없이 걷고 또 걷고 짧다면 짧은 보고타의 여행을 정리하고자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싸고, 다시 한 번 메데진으로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를 블로그를 통해 알아보고 나는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딘가 조금.. 말도 안되는 서러운 감정을 집어 삼키며 나는 Medeline으로 가는 밤 버스를 타기위해 숙소 아줌마와 그녀의 어린 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윌리엄이 있었다.
"아.. 뭐야.. 여기 왜 있어?"라고 묻는 나의 말에 윌리엄은 대답 대신 특유의 그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주고는 나의 짐들을 자신의 차 트렁크에 넣었다.
밤 버스 터미널은 정말 위험하다며 한사코 사양하는 날, 아주 긴 설득 끝에 윌리엄은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바라다 주었다. 가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해 지는 마음이 나를 괜히 눈물 나게 했다.
"저기..어제 밤에 잠을 잘 못 잤어. 그냥 궁금해서. 우리는 5일을 만났는데 나의 어떤 점이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그냥 처음 봤을 때.. 내가 늘 그리던 이상형 이었어. 뭔가.. 그냥 그런 느낌이 있었어. 거기다가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네가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지 몰랐어. 근데 너무 잘 웃고 경계심이 없는 모습이 좋더라. 그 이후에는.. 그냥 딱히 다른 이유는 생각 못 하겠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난 조금 놀랐지만.. 그의 솔직함이, 참 고마웠다.
"조심해서 잘 가. 너를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늘 기도 할 거야"
" 마지막까지 너무 고마워.. 응.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너무너무 고마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윌리엄에게 입맞춤을 선물해주고 민망해진 마음에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윌리엄은 한동안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마운, 그리고 참으로 예쁜 마음이었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내 감정들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지 하고 끊임없이 자책 할 때도 많았으며, 가끔은 초라한 내 모습이 보기 싫어 하루 종일 거울을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윌리엄은 나조차 모르는 나의 좋은, 예쁜 모습을 잘 찾아내 주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난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줬던 고마운 사람. 나는 아주 작게 속삭이며 보고타와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안녕 나의 보고타, 안녕..윌리엄..“
끊임없이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거기다가 정말 이까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운 버스 안에서 제대로 잠을 잘 리가 만무했다. 잠자기를 포기하고 멍하니 있었는데 순간, william이 버스 안에서 열어보라던 선물이 생각났다. 쇼핑백을 열어 보니, 원숭이 인형과 아주 곱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곱게 놓인 편지도.
편지를 열어보는데 그 안에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성모 마리아의 사진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곱게 수놓인 목걸이였다. 윌리엄의 차안에 걸려있던 것인데 윌리엄과 보고타 주변으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 내가 말했었다.
"우와, 너무 예쁘다. 왠지 더 든든할 거 같아.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기도해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넌 종교가 뭐야? 천주교? 그 십자가 목걸이는 그래서 차고 다니는 거야?"
"천주교 맞아. 근데 난 완전 양아치 천주교야. 내가 급할 때 혹은 아쉬울 때만 신을 찾거든. 근데 이상하게 내가 신을 찾을 때마다 꼭 누군가를 대신 보내주는 느낌이거든. 호주에서는 내 남자친구가 그랬고, 여기선 너가 그런 거 같아. 하느님이 너무 바쁘셔서 대신.. 그 신하들을 보내주신다는 느낌? 신은 내가 너무 예쁜가 봐 하하하하 이 목걸이는.. 예전에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 준거였는데 내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날 지켜 줄 거라고 했어. 그래서 무서운(?) 남미를 여행하는데 부적이 되지 않을까 해서 차고 온 거야 날 지켜달라고"
편지 안에는 윌리엄의 진심이 빼곡히, 그리고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성모마리아 자수가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내 십자가 목걸이와 더불어 나를 지켜 줄 것이라는 말도 함께.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아주 예쁜 귀걸이 한 쌍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올리와 더불어 그의 친구가 되어 줄 자신을 꼭 닮은 귀여운 원숭이 인형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귀걸이를 찾고 있었다는 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엄마가 사준 귀걸이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내게 정말 잘 어울린 것 같다며..
과분하게.. 넘치는 사랑을, 나는 지구 반대편의 그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었다. 그것도 나를 고작 5일 알게 된 그 누군가로부터. 인생은 이렇듯,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한 그 누군가로부터 설렘을 선사해 주는 것인가 보다. 버스 안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내 마음은 이미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미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설레고 근사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