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공강이 있다
교무실에서 가장 즐거울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연 나만 공강일 때이다.
교실 반 칸 정도 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운이 좋으면 일주일에 1시간 정도는 모든 선생님들이 다 수업하러 가시고 나 혼자 교무실을 지키게 되는 때가 있다.
특별한 일탈(?)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한순간도 혼자 있는 순간이 없었다.
가끔 윗분들이 외근과 출장이 있어 사무실을 비우실 때면 우리끼리 '어린이날'이라고 칭하며 즐거워하고는 했지만 사무실은 내 앞뒤 그리고 옆이 모두 선배, 동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자리를 오래 비우는지, 누가 화장실에 갔는지, 누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는지 훤히 보이는 구조가 된다.
그 사람이 15분씩 편의점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온다고 해도 내게 손해 끼칠 것은 거의 없는데도 그때는 자리를 오래 비우는 사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나는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일이 없나 보지?' 하는 억울한 마음,
혹은 지금 당장 같이 업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을 계속 기다려야 하는 답답함 때문일지도.
그런데 학교에 오니 그런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학교는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농땡이(?)를 치고 싶어도 쉬는 시간 10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모든 선생님들이 동일하게 수업 시간에는 각자의 교실로,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 혹은 그 외 등등... 의 일로 자리를 비울 때가 많기 때문에 누가 자리에 오래 앉아서 일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서로 협업해서 업무를 할 필요-예를 들어 과장님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대리, 사원급의 서포트를 하는 일-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도 여전히 공문으로 내려오는 수많은 업무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회사와 똑같지만 그 업무를 처리하는 환경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학기 교무실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
감동적인 사제 간 대화? 아니면 학부모님과의 가슴 따뜻한 통화? 그것도 아니면 학생의 놀라운 성장?
... 이면 좋겠지만 그 인상 깊었던 순간은 바로 비 오는 날의 교무실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공강이 있는 날이었는데 그날은 비가 아침부터 우수수 쏟아졌다.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문에 붙어 있는 내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고 있었다.
비가 오는 데다 월요일 오전이어서인지 아이들도 차분했던 그 시간, 물을 머금은 초록의 풍경을 쳐다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했다.
비록 집에 조금 늦게 가더라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여유를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먹고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은 내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신데,-늘 여유롭고 상냥하신 데다 무척 귀여우시다- 내가 비 오는 풍경을 보며 좋다고 말씀드리자 동의하시며 평안한 월요일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 선생님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때 회사에선 느낄 수 없었던 여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회사에서는 자리를 비우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것도, 빗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업무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의 짤막한 공강에 낯선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