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만에 되찾은 방학
인생 첫 방학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유치원 때 방학은 기억에 없어서 제가 기억하는 인생 첫 방학은 아마 초등학교 때일 텐데요.
저는 방학에는 그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학마다 학교에서 내주는 방학 숙제를 하느라 방학 마지막주를 바삐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뭐였더라?
곤충 관찰 일기 쓰기도 있었던 것 같고, 여름방학 계획표 짜기, 그림일기 쓰기, 여행 다녀와서 여행지 소개 책자 만들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씩 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런 숙제들이네요.
그때는 방학에 이런 숙제를 내주는 학교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사실 지금도 저는 방학에 따로 숙제를 내주지는 않으려고 해요.
요즘 애들 들어보니 방학에 뭐 했어? 물어보면 학원 다니느라 나오는 대답이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왔던 방학이 제 손을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생 마지막 방학은 대학 때였겠지요.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대학교 4학년 그 방학이 제 인생 마지막 방학이 될 뻔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제 손으로 다시 방학을 되찾아(?) 왔는데요.
그럼 대체 방학에 무엇을 했느냐?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혼자 풀어보는 되찾은 첫 번째 여름방학의 이야기.
같은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방학이 다가오자 묘하게 들떠 계시는 것 같았고,
이따금씩 첫 방학이라 설레겠네~ 첫 방학에 뭐 할 거야~ 이렇게 물어봐주시는 분도 계셨고,
저 역시도 학기 중에는 만나지 못했던 주변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바빴던 것 같아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성적을 마감하고 수행평가를 확인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며
선생님들이 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하며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던 7월 중순,
방학 전에 기필코 다 마무리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매일 늦은 퇴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방학식이 끝나고 아이들과 교실 청소를 하고 난 후였답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여름 방학은 짧아서 무엇을 하기에는 아쉬워!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인생 첫 방학을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게 보냈습니다.
제 첫 방학의 목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자!'였어요.
왜냐하면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학교로 오기까지 제게 여유라고는 단 하루도 없었거든요.
정말 금요일까지 꽉꽉 채워 회사에 출근하고 토요일, 일요일 주말 쉬고 새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낯선 환경과 업무, 서로 어색함 가득한 교실의 공기, 충분하지 못한 교재 연구까지...
한 학기를 버텨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어요.
정말 이제 그만해야 할까? 싶을 시점에 찾아온 마법 같은 여름 방학 덕분에
방학 첫 주에는 느긋하게 자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미리 예매해 두었던 보고 싶었던 공연도 보았고요.
가족끼리 여행도 다녀오고 체력 이슈(ㅠㅠ)로 학기 중에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도 잔뜩 만났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는 게 이렇게나 큰 행복이었다니!
회사를 다니며 잃어버렸던 방학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어요.
물론 2학기 수업에 대한 걱정도 한아름 늘어가기는 했어요.
저와 같은 학년 같은 수업을 맡고 계시는 선생님은 경력도 어마무시, 실력도 어마무시, 아이들에게 인기도 좋은 우리 학교 최강 멤버이신데 그런 그분에 비해 저는 경력 없음, 실력 없음, 아이들은 제가 누군지도 아직 잘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
1학기는 어찌어찌 끌고 갔지만 2학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내가 할 줄 아는 에듀테크가 무엇이 있더라... 아이들을 덜 재우는 방법은 뭘까... 하면서 선배 선생님들의 수업 노하우를 찾으러 유목민 생활을 하기도 하고 (물론 인터넷에서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연수도 몇 개 들어봤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방학 마지막 주가 되니 슬슬 밖에 나가고 싶어지더라고요!
저는 제가 우주 1티어 집순이인 줄 알았는데 집이 좋은 건 맞지만 나태한 제 모습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 회사에서 가끔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는데 이 재택근무가 길어진 느낌이랄까요.
어느 날은 우리 반 아이들과 와글와글 떠들던 순간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교무실 선생님들과 수다 떨며 와르르 웃던 장면에 다시 들어가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걸 느낀다면 아직 풋풋해서 그랬던 것이겠지요? ^___ㅠ)
그렇게 짧다면 짧고 또 적당하다면 적당한 여름방학이 흘러갔습니다.
막상 개학해 보니 방학이 정말 너무 짧았다... 싶기는 했는데요.
잘 쉬고 나니 정말 2학기를 살아갈 힘이 다시 나는 것 같았습니다.
1학기보다는 조금 낫게, 조금 여유 있게, 조금 노련하게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 을까요?
선배 선생님들, 후배 선생님들, 동기 선생님들의 첫 방학은 어떠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