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같은 층을 쓰는 우리 회사 사람, 유관부서(대체로 회계팀이나 마케팅팀 같은), 회사 바깥 협력업체 담당자 정도이다. 아, 회사 근처 카페에서 보게 되는 옆 회사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 있겠다.
그럼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먼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학생들, 급식실 조리실무사님들, 행정실 주무관님들, 배움터지킴이 선생님, 화장실 청소 여사님,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직장 동료 잘 만나야 삶이 편하다.’는 이 작은 학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교라는 조직의 동료 관계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조직(?)과 이 학교라는 곳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수평적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사원-대리-과장-부장이라는 대외적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사내에서는 ‘수평 수평’을 외치느라 직급을 떼버린 명함을 주곤 한다. 그렇지만 내가 속했던 조직에서는 명함에 야광으로 글자를 인쇄라도 해놓은 건지, 일직선의 직급 체계는 그대로 존재했다. 하위자는 상위자에게 의견을 낼 수 없다, 하위자는 상위자가 시키는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해야 한다, 상위자는 해도 되지만 하위자는 하면 안 된다… 하는 상황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누가 동그라미라고 하면 (그것이 객관적인 사각형일지라도) 동그라미가 맞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지만 이런 나조차도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들이 몇 가지는 있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연차가 꽤 쌓였음에도 조직 문화 개선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지 못했던 내가 아쉬울 뿐이다.
어쨌거나 그런 곳에서 사회생활을 배운 내가 학교라는 조직에 와서 느낀 것은, 정말 수평적이다! 하는 느낌이었다. 제일 먼저 그 누구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나와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이라 나쁠 것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이에서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종종 나를 존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내 이름 뒤에 항상 ‘선생님’이 붙어서일까?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훨씬 많은 선배 선생님들도 나를 ‘내가 가르쳐야 하는 나이 어리고 경력 없는 신입’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허둥지둥 얼렁뚱땅 우당탕탕 신입인 것은 숨길 수 없기에 다들 흐린 눈을 해주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은 딱 3가지로 나뉜다. 관리자, 부장, 그리고 평교사. 이 셋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 굳이 비교하자면 그마저도 놀라울 만큼 수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리자는 내가 가까이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부장-평교사 사이는 비교적 유연하기 때문이다. 부장이었다가 평교사가 될 수도 있고 (이런 경우 여전히 부장님이라는 호칭은 유지되는 것 같기는 하다.) 평교사도 특별한 진급 절차 없이 1급 연수받고 연차가 쌓이면 부장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듣기로 예전에는 부장을 달고 싶어서 알게 모르게 경쟁도 했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더불어 부장님들도 똑같이 수업에 들어가고 수행평가 채점하고 시험문제 내고, 거기에 부장님 일-그러니까 빠릿빠릿(?)하게 결재해 주시고 부서의 일을 책임져주시고-을 더하시는 것 빼면 평교사와 그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내가 아직 학교를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부장님들 중에는 본인의 일을 저연차 교사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듣기는 했다.
의사소통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줄곧 받았는데 그건 아마 연차에 상관없이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만큼은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은 누가 부장이고 누가 고연차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에게는 그저 좀 더 늙은 중국어 선생님과 좀 어려 보이는 중국어 선생님 정도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저연차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회의에서 제외되고 업무 상황을 통보받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에 한해서는 내 자율성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를테면 수업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담임 학급 경영을 어떻게 할지, 어떤 제재를 사용할지 등.
그런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회사<<<<학교’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이 조직이라고 단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위에 적은 것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 학교라는 곳도 관료제 조직이기 때문에 상명하복의 문화가 존재하고 더불어 하위자의 목소리가 상위자와 동등한 힘을 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 체득한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상대적으로 이 조직에서의 문화가 수평적이라고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애매한(?) 수평 조직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은… 바로 사수-부사수의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는 갓 입사한 신입에게 1인분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0.3인분 정도만 해도 칭찬받고, 연차가 쌓이면 업무의 스코프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책임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회사에 직급이 있는 것이고 상위권자가 결재권을 갖고 있는 것. 직급과 업무 능력에 맞는 일을 배당받고 자신의 역량을 펼쳐 회사 내에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커리어패스를 꾸려가는 것, 이것이 회사원으로서의 이상적인 궤적이다.
하지만 학교는 3월 2일 입사하자마자 1인분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학급 경영이 뭔지, 아이들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리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이스 시스템은 어떤 것인지 그 어느 것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신규 교사 연수 때에는 요즘 교육청에서 주력하고 있는 신규 사업과 수업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고, 여러분은 임용고시를 통과했으니 지금 당장 학교 현장에 투입해도 되는 역량을 검증받은 것입니다!라는 듣기 좋은 멘트만 윙윙댄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해본 적 없는 생짜 신입의 입장에서 정작 배워야 할 것들에는 빈틈이 많다. 이중 가장 힘든 것은 신입 교사 티 내지 않기라고 할 수 있다. 3월 2일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학생들에게 ‘너희가 내 첫 제자야.’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신입 교육이 정말 부족하다. 수습 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당혹스러운 지점이었다. 다행히 나는 좋은 짝꿍을 만나 많이 배우고 많이 따라 하며 첫 1년을 무사히 보냈지만 이건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회사에서 보낸 시간만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후에 과연 오늘의 생각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미래의 나를 지켜볼 예정이다. 그때의 나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