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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 Jul 27. 2020

인간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말로

밀란 쿤데라,  < 농담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트로츠키(1879~1940) - 러시아 혁명운동가. 당시 기회주의자, 반혁명 분자로 알려졌다.     

※ 스탈린(1879~1953) - 소련의 정치가. 독재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1941년 수상에 취임하였다.     





 공산주의를 생각해보라.

평등 사회를 지향하며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한다는 모토, 그 희망으로 꽉 찬 낙관적인 세계를 말이다. ※스탈린의 강력한 간섭 아래 공산주의 이념으로 팽배했던 80년대 체코에선 세상을 바꾸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이 개인의 문제를 돌보기보단 세상의 문제에 대해 긴긴 토론을 벌였고 새롭게 도래할 세상과 꿈에 자신의 운명을 내던졌다. 회의의 주제는 단순하지 않았고 이념을 향한 의식 속에선 가벼움이란 없이 충만했다. 자신의 믿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러한 시대였기에.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산주의(낙관주의를 전제로 빈부격차를 없애려는 이념)를 인류의 아편(마약)이라 비유한 자가 있다니, 그가 반동분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청년이 있다. 

이성 친구에게 장난 삼아 보낸 엽서 속 ‘농담’이 많은 논란과 오해를 야기시킬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청년이 말이다. 

이내 그는 ‘농담’ 하나로 하루아침에 반동분자라 낙인이 찍혀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회의 이념과 자신의 생각이 달라 투쟁을 하는 운동권 학생이 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철장에 갇혀 어머니를 임종도 치르지 못하고 탄광에서 일을 하며 긴 시간 군 복무하게 된 것이다. 


이 안타까운 청년의 이름은 ‘루드비크’이다. 

 이게 다 말장난 하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어서 그는 더 억울했다. 공개재판이 열렸지만 학교의 그 누구도 루드비크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파벨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엽서를 받은 친구조차도 그를 죄인이라 말했다. 

그는 누구인가? 체코의 전통문화예술을 사랑하며 클라리넷을 연주할 줄 알았던 청년은, 작은 농담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당의 적이자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감옥에서 군에서 젊음의 시간을 잃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던 청년의 억울함과 분노는 어디에서 풀 수 있을까. 그의 가슴에는 끓어오르는 원망만이 남겨졌다. 

 그런 그에게 봄이 찾아온다. 침묵하는 여인, 순백의 하얀 도화지 같던 여인 ‘루치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인연이었다 해도 그녀는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되었다.      



  한 여인이 있다. 

열정적인 방송국 기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며 루드비크를 공산당원에서 박탈시킨 인물 - ‘파벨’의 아내인 ‘헬레나’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 푸치크 학생 가무단에서 활동했고, 그 안에서 만난 남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결혼 후 얼마 안 가 파벨은 젊은 연인을 만들고, 자주 배신했으며, 지금은 별거를 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그를 놓을 순 없었다. 이 결혼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우리의 약속이, 우리의 맹세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변했다. 시대가 바뀌어 신념을, 이념을, 사랑을 버린 것이다. 개인주의를 찬양하며 마르크스주의 교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뭐, 이젠 상관없다. 그녀에게도 자신을 열정적이게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으니. 그 남자는 파벨처럼 화려한 무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 되게 자신을 사랑해준다. 뜨겁게 그녀를 요구해준다. 그를 믿는다. 사랑한다. 이거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이자 말로 다 할 수 없는 순수. 루드비크는 자신을 보듬어준다. 사랑과 사람에 배반당했던 어두웠던 기억을 단숨에 몰아내 주는 것이다.       



 루드비크에겐 친구가 있다. 

현재 가무단의 단장이자 민속극 <왕들의 가마 행렬> 준비에 여념 없는 남자, ‘야로슬라프’이다. 

 요즘 그는 자신의 아들 ‘블라디미르’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지역 인민 의원회에서 그의 아들을 올해의 ‘왕’(<왕들의 가마 행렬>에서 말을 타고 마을을 활보할 왕 역)으로 뽑으라고 권유했는데 블라디미르가 그날 오토바이 경주를 보고 싶다며 왕을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왕 역을 맡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기도 함으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거부라니! 야로슬라프는 진심으로 블라디미르가 왕이 되길 바랐다. 소중한 과거의 전율을 회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는 나치 점령 마지막 해였다. 수많은 소년들이 손에 칼을 쥐고 기마행렬에 올랐다. 당시 왕으로 뽑힌 소년은 열다섯 살의 야로슬라프였다. 전통대로 두 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지금 아버지가 얼마나 영예롭고 자랑스러워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분신과 함께 그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감동스러운 순간이 어디 있을까?


  그에겐 체코 모라비아 민속예술만큼 재밌고 넋을 잃게 만드는 세계가 없었다. 그래서 평생을 이 민족예술 번영에 바쳤고 성서와 관련된 부분을 삭제한 채 자신의 결혼식도 모라비아 민속 풍으로 치렀다. 하지만 물밀 듯 쏟아지는 현대문명으로 민족예술은 매장되는 추세였다. 그렇기에 아들이 왕이 되는 이번 행사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보아라! 고대에서부터 전해져 온 이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과학적이기까지 한 양식을 말이다. 

     

 그가 공산당원이 된 것도 이 민속예술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침발롬이 있는 악단에서 단짝 친구인 루드비크와 함께 연주했다. 당시 야로슬라프는 이 민족예술을 널리 알릴 방법에 대해 골몰하는 중이었는데 홀로 존재하지 않고 주로 행사나 축제에서 보이는 민속 음악은 개인주의가 바탕이 되는 자본주의 사상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루드비크가 민족예술의 공산화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 개인보다 공동체를 말하는 이념이다. 동일한 공동이익에 연대하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 민족예술이 속하게 된다면 추수 축제나 무도회, 노동절 행사, 화합, 해방 기념일 등 수많은 날에 전통 민족 예술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우리의 예술이 탈바꿈되며 소생할 것이다! 결국 그는 바로 공산당에 입당했다. 당의 지원을 받으며 잘 될 일만 남은 것이다.

마음속에 간절히 품어온 세상이 그에게 다가왔다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향에 돌아온 루드비크가 가장 먼저 찾은 인물은 ‘코스트카’이다.

 그는 루드비크가 다녔던 학교의 조교였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에서 특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뭐가 문제냐면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코스트카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으면서 공산주의자이기에 기독교에서 배척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왜 공산주의자가 됐을까? 

당시 교회는 개인의 안락과 권력을 추구하는 불온한 그림자가 있었고 그의 아버지 또한 교회의 외면 속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가난한 이들, 모욕당하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마음을 베푸는 것이 교회의 역할 아니었나? 이 노동운동은 사회와 사람에게 모욕당한 이들의 움직임과 간절한 바람이라는 걸 교회는 진정 모르는 것인가? 기독교는 사람을 향하는 길이고 공산주의는 기독교 정신과 유사성이 많았다. 외면당하는 이 없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겠지만 말이다.


※ 2월 혁명 –1948년 2월 경제 불황의 여파로 프랑스에 일어난 혁명.

프랑스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의 삶에 전환기가 온 것은 ※2월 혁명 이후였다. 

종교적 입장을 바꾸지 않은 코스트카는 당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이 문제는 당 총회의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 루드비크의 우호적 발언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결국 루드비크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루드비크처럼 쫓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어린 아기와 아내가 있었고 전망이 좋은 교수라는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말 한마디 말 한마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종교적 신념과 현실 속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 자가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라니.. 그는 자신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고 자유를 제한받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고 자원으로 대학을 떠났다. 이후 서민적인 환경의 일자리, 국영 농단 전문 기술직을 선택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한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갈 곳 없는 떠돌이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오스트라바에서 서부 보헤미아까지 도망쳤으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가진 것도 없이 유랑하는 여인에게 일을 주었다. 여인은 수줍고 온화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어두운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감독관에게 그녀를 맡겠다고 말했다. 

떠돌이 아가씨의 이름은 ‘루치에’였다.      



 가벼운 농담조차 부자유했던 전체주의 시대 안에서 청년 ‘루드비크’와 그를 둘러싼 네 명의 남녀가 각각 1부에서 7부의 챕터를 이끌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산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 속에서 움직이는 시대의 잔상이 있으며 인물의 부주의(농담)로 인해 시작된 불행과 파괴되는 날들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나약함을 확인할 수 있는 여정을 담았다. 


 실제 밀란 쿤데라가 태어나고 자란 체코는 당시 소련군에 점령당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는 동료 작가와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고 재입당과 추방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가 살아낸 삶의 흔적과 치열함을 느낄 수 있는데 훗날 체코 민주화가 펼쳐지기 전까지 프랑스에 망명해 살았다고 한다. 

온몸으로 동포 주의와 국제주의 시대를 견뎌낸 산증인인 것이다.      


 책을 펼치면 머릿속에서 공산 단원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인물들 간의 입장의 차이와 대립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상처 주고, 후회하는 시간이 유유히 흘러간다. 

그 안에 내가 보인다. 간절히 희망하던 열매를 보지 못하고 추락하는 인물과 조류를 일며 흘러가는 시대의 모습 속에 인간의 연약함이 보인다. 


약지 못해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과거 속에 남겨진 사람들. 미숙하고 순진한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에 결백한 이들에게 더더욱 처참한 시대였다.


 저자는 책의 성격과 자신의 정치성향을 연관 짓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자신의 삶 전반을 좌우했던 이념의 말로를 두 눈으로 바라본 심경은 말로 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대는 흘러간다. 남겨둔 이들을 뒤로하고 세상은 움직인다.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어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찼고, 안타까웠다. 


 실로 대단한 작가이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친애하는 족장 어른,

 이 진실된 구혼자는 왜 이 진실된 아가씨를 신부로 맞이하려 하는지요.

 꽃을 위해서인가요, 열매를 위해서인가요?     


족장은 답했다.     


 누구나 다 알지요, 아름답고 찬란하게 꽃은 피어나고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것.

 하지만 꽃은 달아나고 열매가 오지요. 

 그러니 우리가 신부를 맞이함은 절대 꽃 때문이 아니라 열매 때문이라오.

 열매는 우리의 양식이니까.      


-전통 모라비아 결혼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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