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정의 정리

독서회모임의 기억 산딸기

by 다온JIN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장면은 희미해져도, 그 순간 느꼈던 감정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들.
어쩌면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감정은 당시의 나에게 분명 아프고 불편한 감정이었다.

“왜 그때 묻지 못했을까?”
“왜 말하지 못했을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10여 년 가까운 시간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다.
이렇게 뒤끝이 길었나 싶어 스스로도 우습지만, 그만큼 나는 어릴 때부터 말보다 감정을 삼키는 쪽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2024년, 10여 년을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하며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버리지 못한 것들은 다시 안고 오다 보니, 그 안에서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활동도 했었네?”
“내가 이런 걸 만들어두었었나?”

잊고 살았던 내가 물건 속에서 조용히 나타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과거의 나를, 왜 그렇게 못난 모습만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감정의 첫 번째 정리 — ‘산딸기’


2011년, 나는 야간 독서모임 ‘책사랑 독서회’에 참여했다.
2024년에 짐을 정리하다 그때의 운영계획서, 회칙, 회원 명단 등이 다 묶여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 모임 사람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글지기 대표였던 분만은 선명하다.
이름이 대통령과 같아서 기억났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분이 나에게 작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독서회 활동 중 ‘한여름 밤,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기획이 있었고,
그때 모든 참가자가 시를 한 편씩 지어 발표하기로 했다.


나는 그 당시 느끼던 외로움과 슬픔을 ‘산딸기’라는 이미지에 담아 시를 지었다.

발표 날, 제목을 읽는 순간
그분이 키득 웃었다.

“산딸기라고 해서 놀랐어요.”

? 왜 이런 말을 하지?

뭐가 잘못된 건가?

무언가 있나?


그 말과 웃음엔 별다른 악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움츠러들었다.


그가 떠올린 ‘산딸기’가 1980년대의 선정적 영화 이미지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속상했다.

나는 그런 의도로 그 제목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깊은 숲 속에서 외롭게 피어 있는 작은 열매처럼
그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뿐인데,
그 짧은 웃음과 말 하나가 내 감정을 뒤틀어 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독서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저 한순간의 기분 나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묻지 못했던 내 성격, 단정 지어 버린 내 마음,
그리고 나를 향한 스스로의 오해가 더 아팠다.



그 시는 그때의 나였다.
슬펐고, 외로웠고, 나를 알아봐 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절의 마음이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듯했지만 결국 내 앞에서 멈추지 않고 또 떠나갔다.

늘 그래왔듯,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가 쌓여 스스로 등을 돌렸던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깊은 숲 속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마음.
누군가 와서 나를 찾아봐 달라고, 알아봐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저 그 마음을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부끄러워하며 오랜 시간을 갇혀 지냈다.

돌이켜보면, 그분에게는 아무 의도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상상 많은 내가 혼자 과하게 받아들였던 것일 수도 있다.

감정은 종종 왜곡되기 쉽고, 그 왜곡은 나를 오래 붙들어두었다.


그분의 시각과 느낌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표현이 연애나 성적인 뉘앙스로 비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했고,
그럴 수도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했다.


이성 경험이 거의 없었고, 성(性)에 관한 표현을 금기처럼 여기며 살아온 환경 속에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나를 갑작스럽게 속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그때의 나’가 가진 프레임이 만들어낸 감각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그것도 하나의 시각일 뿐이야.
존중하고 받아들여도 돼.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여러 생각들이 다시금 정리된다.



오래 간직해 온 상처는 사실
묻어두면 묻어둘수록 더 무겁게 자란다.
이 글을 쓰며 나는 그 기억을 조금은 털어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참 기특했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줄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그 기억을 떠나보내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모든 게 다 운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