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감정의 정리

바리깡은 어렵다.

by 다온JIN

2023년 엄마가 대추를 따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다.

수술을 준비하며 찍은 CT와 MRI에서
뜻밖에도 신장암이 발견되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부모님의 부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돌봄이 ‘언젠가’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라는 걸 느꼈다.

겉으론 담담한 척했지만, 마음은 닿지 않을 만큼 무너졌고, 두려움은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귀에서 이명이 멈추지 않았고, 정신은 쉬지 않고 흔들렸다


돌봄이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2026년부터 시행될 돌봄 통합정책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제 돌봄과 의료, 복지가 함께 움직이는 시대가 온다.


사회복지사의 업무도 의료적 지식이 필요해지고, 방문 현장은 더욱 다층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내가 현장에서 느꼈던 어르신들도 의료적 욕구가 가장 컸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암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도 의료적 지식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간호조무사 과정을 배우고

사후에 대한 대비를 위해 장례지도사도 배웠다.
무엇이든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부모님의 마지막과 내 마지막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사실 그 공부들은 두려움에 대한 답장이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지식이라는 벽이라도 쌓아야 버틸 수 있었다.

모든 변화가 통제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
배움은 나에게 남아 있는 단 한 가지 가능성이었다.



이번 주에는 호스피스표준 교육 및 추가교육까지 마치게 되었다.

말기 환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 가족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일.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상담사가 함께 움직이는 다학제 팀.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가장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해

그 죽음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새로운 삶의 마지막 복지 분야였다.


아름다운 일이었다. 필요한 일이었다. 존엄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현장은 동시에 벅찼다.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업무량은 벽처럼 쌓여 있었으며, 병실은 모자랐고, 정신적 소진은 깊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내가 예전에 일하던 사회복지 현장을 떠올렸다.
보람과 소진이 같이 흐르던 시간들로 마음이 답답해졌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직을 결정했던 시기도 떠올랐다.
지쳐 있었고, 탈출하고 싶었고, 새로운 환경이라면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니
그 선택이 현명했는지, 혹은 무모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지나온 날들이 결국 나를 이런 곳까지 데려왔다.


헤어커트를 배운 것도 돌봄과 연결된다.

나중에 부모님이 누워 계시면 머리라도 깎아드리고 싶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도 조금 더 단정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이유였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돌봄이었다.


너무 피곤했고, 가끔은 허무했다.

“나는 왜 이런 길만 선택하는 걸까?”
“왜 필요한 일을 미루고 다른 일을 붙들고 있을까?”


공무원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길이라는 것쯤은 안다.
부모님도, 주변도, 나도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무원 공부만 빼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말,

“왜 꼭 어려운 길만 가냐”는 말, 그 말들이 마음에 박혔다.


그 감각은 죄책감을 만들고, 죄책감은 우울을 만들고, 우울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질문한다.

“왜 나는 이런 사람일까?”


나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


머리를 자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조금만 실수해도 어색하게 잘리고, 잘못될까 봐 무서워서 손이 떨렸다.

연습할 대상도 없고 열정도 넘치지는 않았다.

단지 부모님 머리를 잘라드릴 수 있을 정도, 그리고… GM의 머리를 정리해 줄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한데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돌봄과 의료, 호스피스와 장례, 자격증과 실습, 공부와 두려움, 탈출과 선택, 그리고 바리깡.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닐까.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도망치듯 보일 수도,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길 위에서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닐까.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다듬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 아닐까.


나는 아직 어색하고,
서툴고,
불안하고,
많이 지쳤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배우고 있다.

돌봄의 손길로,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으로, 그리고 삶을 붙잡는 나 자신으로.

바리깡을 든 이유는 결국 그 마음 때문이다.



오늘의 감정 정리

� 오늘 느낀 감정 세 가지

불안감

걱정

무기력감

� 지금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

불안감

� 불안한 이유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 같아

앞으로 돌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도 삶이 힘든데 부모님 돌봄을 떠올리니 부담이 커짐

�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지금 네가 느끼는 불안과 부담은 당연한 감정이야. 나 또한 아직 내 삶을 다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데 부모님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겹치니 앞날이 깜깜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 정말 이해해.

하지만 네 삶도 네가 살아냈고, 그 안에 부모님의 응원과 사랑이 있었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길어야 10~20년일지도 몰라. 그 시간 동안 모든 부담을 너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야. 언니들도 있고, 혼자가 아니야.

그러니 지금은 너무 앞서 걱정하기보다
네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도 괜찮아.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시간을 네 마음에 만들어 줘.

부담 내려놓아도 돼.
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삶이 아니야.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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