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의 늪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전투가 아니라 **죽음의 늪(Dead Marshes)**이었다.
그곳은 제2시대 말, 다고를라드 평원 전투에서 쓰러진 전사들이 묻힌 자리다.
시간이 흐르며 땅은 가라앉고 물이 차올라, 무덤은 늪이 되었다.
물 아래에는 아직 썩지 않은 얼굴들이 남아 있고,
그 눈과 마주치면 원혼에게 홀려 늪에 빠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늪이 무서운 이유는
고요한 물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사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가장 섬뜩하고 무서운 늪이었다.
늪에 빠지면 살기 위해 버둥대지만,
버둥댈수록 그 움직임은 오히려 스스로를 가라앉히는 힘이 된다.
결국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늪 말고도 보이지 않는 늪들이 존재한다.
망상의 늪,
괴로움의 늪,
자책의 늪,
중독의 늪,
등등
늪이라는 단어는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늪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발을 들이밀고 있었던 것 같다.
관계라는 늪,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의 늪,
애매한 친절과 침묵의 늪,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늪.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땅은 단단해 보이고, 한 발쯤은 괜찮을 것 같고, 조금 불편해도 지나가면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조심하지 않는다. 의심하지도 않는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뭐, 괜찮겠지” 하며 그냥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발목이 잠기고, 종아리가 잠기고, 허리까지 내려온다.
그제야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움직일수록 더 깊어지고, 말을 아낄수록 더 숨이 막힌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에야 겨우 빠져나와 진흙투성이가 된 채 바깥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늪에 들어가지 말자.
하지만 또다시 다른 이름의 늪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조금 덜 무서워 보이고,
조금 더 친절해 보이고,
조금 더 ‘배워두면 좋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발을 내딛는다.
어쩌면 내가 빠져들었던 늪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늪은 처음엔 선택처럼 보인다는 것.
도망칠 수 있었고,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발을 빼는 것도 가능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
하지만 나는 늘 가장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
망설였고, 미뤘고, 말하지 않았고,
“괜찮을 거야”라고 합리화했다.
그 결과로 나는 늘 늪 안에 서 있었다.
늪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깊이가 아니라
처음의 한 걸음인데,
나는 그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건 아닌데.’
분명히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가슴 어딘가에서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울리는 신호.
하지만 나는 그 신호에 대해
명확한 설명도, 명확한 답변도 하지 못한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아니에요”라는 단어는 목 끝에서 멈춘다. 대신 얼버무린다.
애매한 표정과 애매한 말로 상황을 흐려 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은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지점까지 흘러가 버리고,
나는 결국 도망친다.
숨어버리고, 자책하고,
마음속에서 같은 말이 반복된다.
괴롭다.
이건 내가 오래도록 반복해 온
내 삶에서 가장 좋지 않은 패턴이다.
오늘의 일도
그 패턴 중 하나의 장면일 것이다.
나는 평생학습관에서
**‘30가지 키워드로 완성하는 생애 재무설계 로드맵’**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한국은퇴설계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강의였다.
완강을 하면 권도형 대표의 저서
『은퇴재무설계 바이블』을 준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은 날도 있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함께 수강하고 있어서
강의실에서 그 사람을 피하려
괜히 동선을 바꾸고, 시선을 피하며
겨우겨우 완강을 했다.
빠지고 싶었지만
GM의 응원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끝까지 다닌 것도 있었다
마지막 날, 책을 준다고 했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개별 컨설팅을 받으러 오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또다시
개별 컨설팅을 받으러 나갔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 책 한 권을,
완강에 대한 보상으로 그냥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컨설팅을 진행해 주신 선생님은
책을 주지 않으셨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책은 중요하지 않았던 걸까?
대신 앞으로 실천하면 좋을 것들을 이야기해 주셨고,
또 한 번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제안하셨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또 그 말이 올라왔다.
‘음… 이건 아닌데.’
‘무료 컨설팅’이라는 말은 겉으로는 부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무료는
대개 공적 지원이 전제된 경우다.
이곳은 민간 회사에 가깝고,
이런 컨설팅은 보통 비용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왕복 세 시간,
그리고 한 시간 반의 상담.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말로 설명되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이건 내가 가볍게 이어갈 수 있는 만남이 아니고,
지금의 나에게는 맞지 않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연락이 오면 나는 거절을 해야 한다.
그 사실이 벌써부터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거절을 참 못한다.
그래서 늘 차단하거나, 도망치거나,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어른스럽지 못한
회피처럼 느껴진다.
“내 생각은 이렇고, 그래서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만하겠습니다.”
그 말이면 충분할 텐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망설임의 늪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와 보고 싶다.
도망치지 않고, 차단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지도 않고.
내가 느낀 ‘아님’을
내 목소리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이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패턴을 조금씩 끊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오늘의 감정 세 가지
멍함
어리둥절
이건아닌데
� 지금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
이건아닌데 하는 감정
�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은퇴설계 컨설팅을해준다고해서 다녀왔어
음 얘기하다보니 어느정도 내 계획은 세워져 있었고 그리고 크게 뭔가 할것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았어
자금도 미래도 아직 직장이란 선택이 불확실해서 어떤걸 나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
그냥 우선 내 상황을 지금은 정리하고 정돈할 차례인 것 같더라구
다음달에 연락을 준다고해서 어떻게 거절해야하나 걱정이되기 시작했어
�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솔직한 너의 입장을 얘기해
매번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생각만 하고 말 못하고 타인에게 끌려다녔잖아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두려워하지 말고
기본 컨설팅은 무료가 아니고 어떤 비용이나 요구할 것 같다 부담이 되어서 하기 싫다 이렇게 너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걸 연습하자
다음에 연락오면 꼭 그렇게 하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사람들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아니라고 생각할때는 이제 확실히 얘기하는 법을 두려워말고 실천해보자 할수 있어 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