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감정의 정리

아버지

by 다온JIN

그날의 버스

초등학교 시절,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버스는 늘 애매한 지점까지만 갔다.
거기서 내려 다시 삼십 분을 걸어야 했고,
학교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 앞까지 가려면 중간 시내까지 한 번,
거기서 다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배차 간격도 길어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정확히 어떤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식이었을까, 아니면 큰 행사가 있었던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새로운 버스 노선이 생긴 날이었다.
아침 등교 시간에만,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학교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생겼다.


그날 나는 부모님과 함께 그 버스를 탔다.

새로운 노선이 처음 시행되는 날이었다.

늘 그랬듯 버스표 한 장을 내고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버스 기사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다.

“학생 내려!” 어디서 한 장을 내고 타!!"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순간 아버지와 버스 기사 아저씨가 언성을 높였다는 사실과

계속된 아버지의 언성 속에서

자리에 앉아 끝까지 학교에 갔다는 사실이다.

그 버스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타고 가야 하는 순간이 괴로웠다.

나는 서럽고,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도 내릴 수 없어서, 계속 타고 갈 수밖에 없어서, 그 현실이 너무 슬펐다.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는 건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다.


아버지의 무력함 같은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설움이 많은 사람이다.

장애를 안고 살았고, 가난했고, 삶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왔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에게 자식들의 공부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가장 큰 자랑이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절대적인 명제였다.

공부가 최고였고, 공부만이 살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애는 공부를 잘한다”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부정당하고 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모든 아이들을 서울로 학교 보내고 싶어 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며 억지로 버텼다고 했다.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힘듦’의 무게를 나는 그때는 잘 몰랐다.


지금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삶에 지쳤음에도 여전히 강한 척을 하신다.


직장이 불안한 나에게 끝없이 공무원이 되라고 말한다.

그게 안 될 것 같은 상황임에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시면서도

한탄을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취업자리를 부탁하신다.


그 사람들은 전혀 그래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아는데 아버지만 모른다.


밥 사주고 말해주고 하면 잘 들어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고

그런 상황이 너무도 괴롭고 싫고 하지 말라고 말해도

"직장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 니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 " 내 말대로 해"

하시며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자꾸만 작아진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숨이 막힌다.


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나의 위치를 인정해 주고

잘해보라고 격려를 받고 싶은데

항상 모자라고 못 믿었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신다.


아버지의 걱정과 간섭은 내가 나로 서보기도 전에 나를 무너뜨린다.


그 분노보다 더 힘든 건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아버지의 고지식한 사고방식은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 오래된 믿음을 여전히 굳게 붙잡고 있다.


그래서 서럽고,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극도의 스트레스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고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가난한 살림을 지켜내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지금의 삶을 이루어낸 것은
가장으로서 분명 존경받을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아버지의 기준은 늘 옳았고, 그 기준 앞에서는 설명도, 타협도 없었다.


그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그날의 버스 안에 있다.

“내리자. 안 탄다.”
“당신이 잘못한 거다.”


그렇게 말하고
버스를 내려 집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버스를 탔고, 나는 그 선택이 너무 싫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버스기사에게 사과받고 그냥 아무 말 없이 도착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버스를 내리면 학교에 가지 못하기에

화가 나도 끝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 같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아님을 모르시고

자꾸만 버스기사처럼 행동하신다고 생각한다.


내가 움직일 거야

내가 가라는 데로 가면 돼


버스는 아버지 것이 아닌데 말이다.




� 오늘의 감정

격한 분노

걱정

피곤함


�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

피곤함

� 왜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앞으로의 일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으니, 마음보다 먼저 몸이 지쳐버린 것 같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은 하루였는데도 어깨는 무겁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큰 피로로 돌아온 날이었어.

�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돌아갈 곳은 반드시 생길 거야.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아서 더 불안한 거지, 없어지는 건 아니야.
걱정이 되는 것도, 불안해지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야.
오늘은 애쓴 만큼 쉬어도 되는 날이야.
지금 이 피곤함이 지나가면, 다시 숨 돌릴 자리도 분명 나타날 거야.
괜찮아. 결국, 다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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